빙도노채

 

멍하이 일기 10

 

석가명차가 어떻게 윈난에서 오운산이란 상표로 유한공사를 오픈 하게 되었는지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처음 윈난 땅을 밟은 것은 2002년경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강육발교수 대구의 오상윤교수님 등과 쿤밍에서 보이차 관련 세미나에 우연히 참석하면서 부터입니다.

 

막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던 시기에 구미의 다랑무역 사장이 동행을 권유해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시장을 둘러보면서 이차 저차 닥치는 대로 시음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후에 고객들의 요구가 있어 조금씩 보이차를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징의 마렌다오, 광조우의 팡춘시장 등을 기회 닿는 데로 오가면서 따이공이라고 부르는 보따리상을 통해 제품을 들여오곤 했습니다.

 

고객들의 믿음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물량이 늘어나고 2009년 노반장으로 유명한 진승차창의 한국 총대리를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보이차업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미호’ ‘해만차창’ ‘하관차창등의 한국 총대리를 겸업하면서 자주 중국 윈난을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봄 진미호 대리상 회의에 참석차 멍하이에 왔다가 진미호에서 잡아 준 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절강상무주점이란 호텔인데 당시 봄차철이라 멍하이에서 가장 큰 호텔인 국위호텔에 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묵게 된 호텔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당시엔 몰랐습니다...호텔 1층 상가에 제법 규모가 큰 모차 판매점이 있어서 시간 있을 때마다 내려가 각 지역의 모차들을 시음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곳에서 우연히 란창고차라는 중국에서 비교적 유명한 고수차 브랜드의 심천 대리상을 운영하는 젊은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허지라는 친구인데 저희가 한국의 명은아트 은제품을 중국에 소개하면서 알게 된 사람입니다. 아직 어린 친구인데 차업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라 보여서 몇 가지 은제품을 특별 가격에 공급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마웠는지 이후 종종 연락이 와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저의 사정도 비교적 상세히 알게 되었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나이를 떠나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몇 년 만에 윈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 모차상을 운영하는 위잉빙이라는 태족 여인의 오랜 고객이었습니다. 가게에서 오랜만에 만난 정담을 나누고 다음 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다시 멍하이를 찾게 되었는데 봄에 묵었던 호텔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여전히 1층 모차 가게에 들러 이런 저런 차들을 시음 했는데 전에 왔을 때보다 대접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귀한 모차들만 골라서 우려주고 식사 대접까지 해줍니다. 아침까지 챙겨 놓고 올 때까지 안 먹고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며칠간 극진히 대접해주고 친지 결혼식에 초대까지 합니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그동안 대접 받은 것이 미안하고 고맙기도 해서 홍빠오’(좋은 날에 조금씩 돈을 넣어 전달하는 빨간 종이봉투)1000위안을 넣어서 전달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저녁 늦게 가게에서 다시 보았으면 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내려갔더니 봄에 가게에서 만났던 심천의 젊은 친구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뜸 가게를 그냥 주고 모든 원료를 제공할 테니 같이 브랜드를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정식으로 제의를 합니다. 처음엔 저의 중국어 실력이 아직 시원치 않아서 뭘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귀를 의심했습니다. 당시 곁에서 내 일을 도와주던 상하이의 형님에게 다시 묻고 나서야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호텔의 건물주이자 모차 가게의 주인이기도 한 위잉빙은 이천년 초부터 모차 장사를 시작하여 멍하이 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성공한 모차상입니다. 징마이 근처에 경익이란 차창이 있고 멍혼에는 대형 창고 그리고 징마이, 파사, 반펀, 포랑산에 초재소(찻잎을 따서 가공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민족 대부분이 그렇듯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아서 글을 잘 모릅니다.

 

돈은 어느 정도 벌었고 남들처럼 자기도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고민하던 중에 몇 년 전 대만 상인을 만나 모차를 제공하고 합작 제의를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 대만 상인이 모차만 가져가고 소식이 없답니다. 그래서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용케 제가 당첨된 것입니다...제가 어딜가나 인복이 있는 편이지만 이번일은 순전히 심천의 젊은 친구가 만든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차업을 하는 누구나의 소망일 수 있는 자기 브랜드를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현지에서 직접 경영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순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여 저의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초재소와 가게, 공장 등은 이미 준비 되어 있는 시설을 이용하기로 하고 모차도 제공 받기로 했습니다. 다만 박람회 참가비용 및 홍보비용, 홈페이지 구축 등 기타 모든 비용은 제가 부담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허가의 편리를 위해 회사의 명의는 위잉빙의 이름으로 하고 브랜드의 지분은 반반씩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운영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제가 가지기로 했습니다.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합의하고 운남의 차산을 깨닫는다는 의미로 오운산고차라는 회사를 창업하였습니다. 201510개 지역의 고수 순료로만 만든 첫 제품을 출시하고 의욕적으로 중국 대도시 대부분의 박람회에 참가하며 홍보 활동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동안 위잉빙으로부터 모차를 수매하여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던 업체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것입니다.

 

남는 모차를 조금씩 제품으로 만들어 출시하는 것은 괜찮지만 정식으로 브랜드 홍보를 하며 박람회에 참가하는 것은 자기들 하고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후로는 위잉빙의 모차를 수매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일년 모차 판매량만 한화로 백억이 훨씬 넘는 위잉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차 판매를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제품 생산에만 전념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고 그동안 다져온 세월과 고객들을 자칫 전부 잃어버리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저 또한 방관할 수만은 없는 문제라서 고민 끝에 위잉빙은 그냥 모차 판매상으로 남고 제 명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합작 제의를 위잉빙이 했고 발생한 문제도 위잉빙의 문제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위잉빙은 미안한 마음에 모든 조건을 저에게 유리하도록 결정해 주었습니다.

 

한국 석가명차 최정민 실장과 함께

 

각 지역의 초제소를 내가 필요할 땐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현제의 가게도 거의 무료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로서도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지라 합리적은 방법으로 모든 것은 정리하였습니다. 회사 이름은 한국과 같이 석가명차차업유한공사로 바꾸고 로고는 오운산으로 이미 많은 홍보를 해 왔으므로 제 명의로 이전한 다음 계속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위잉빙의 적극적인 협조아래 이 모든 과정을 정리하는데 약 2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습니다. 담당 공무원들마다 윈난성 시솽반나 멍하이 에서 한국인의 이름으로 최초로 설립되는 차업 관련 유한공사라서 모든 것이 생소한 업무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여권 공정 및 중국대사관 인증서, 은행잔고 증명서 등의 서류와 중국에서 이력서 등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60여 가지의 서류를 준비해서 영업집조’(사업자등록증)을 내려 받기까지 정말이지 험난한 과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사드문제까지 겹쳐서 될 일도 미루는 지라 속이 새까맣게 탔습니다. 멍하이 공상은행에서 한국인 명의의 회사 통장도 처음 만드는 일이라 하고 국세, 지방세 등의 처리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모든 것이 운명처럼 정리 되었고 앞으로는 오로지 저의 노력만으로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한편으로 힘은 들지만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정신을 담은 차를 만들기에는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동안의 과정을 쭉 서술하다보니 마치 한편의 단편소설을 쓰는 것 같습니다...

늘 바쁘게 살다보니 때론 장자의 호접몽처럼 현실 속의 내가 마치 꿈속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멍하이의 나른한 저녁 내일을 준비하며 오늘의 일기를 마칩니다.

 

*내일부터 한국 손님들 일곱 분을 모시고 빙도와 봉경 향죽청 차왕수 친견 등의 일정을 함께합니다. 멍하이 에서 빙도까지 자동차로 여덟시간 거리입니다. 향죽청까지 다시 세시간 손님들 잘 모시고 일주일 쯤 후에 다시 멍하이 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유우우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잘 읽고 있어요~ 화이팅입니다!

    2017.04.20 21:24 신고
  2.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7.05.29 21:14
  3.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7.07.04 08:08
  4.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7.07.07 07:23
  5. 무설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운산 브랜드를 이름만 들었는데 이렇게 창립스토리를 접하게 되는군요. ^^

    2018.01.14 21:34 신고

BLOG main image
석우연담(石愚硯談)
차(茶, tea)가 있는 곳이면,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현장 이야기. 세계의 차, 차의 세계를 전한다.
by 석우(石愚)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97)
가상화폐 (0)
茶席 다석 (1)
공지사항 (10)
차를 향한 눈 (193)
석우연담 뉴스 (261)
다미향담 (239)
차도구 (67)
차(tea, 茶) (115)
커피 (13)
향도. 침향 (43)
차문화 기행 (9)
저서 안내(BOOK) (28)
전다도(煎茶道) (5)
아름다운차도구 (7)
보이차도감 (1)
차관·티룸 (64)
차회 (14)
멍하이일기 (101)
한국향도협회 (15)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석우(石愚)'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