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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석우연담(石愚硯談)</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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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 type="html">차(茶)와 함께하는 세상이야기</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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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홍차 문화의 세계 - 홍차의 모든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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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우(石愚)</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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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3-20T02:39:33+09:00</updated>
  <published>2010-03-20T02:31:04+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21세기 초, 우리나라는 중국차 문화를 가감없이 받아드리면서 거대한 시장의 차들이 우리 생활 주변에 파고 들었다. 전국에서 차를 연구하는 대학이 생기고 차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더욱 다양한 차문화를 배우게 되었다. 과거에도 우리나라에는 홍차 문화가 들어와 있었지만 대학에서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과목이 개설되면서 유럽의 홍차 문화가 예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부산여자대학에서 홍차의 모든 것을 담은 교제용의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 프로필 정영숙 / 부산대. 창원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부산여자대학 차문화복자과 학과장&amp;nbsp;(사)한국차학회 명예회장. (사)한국다도 협회 부회장 배말순 /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부산여자대학 교양과 교수. 부산여자대학 전임 강사 임창숙 / 경북대학교 대학원 임학과 농학 박사. 부산여자대학 차문화복지과 강사. (사)한국차학회 이사. 총무간사 김문숙 /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대학원 예다학 석사. 부산여자대학 다도 강사. (사)한국차학회 이사 유혜진 /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석사. 원광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박사 과정 수료 목원대. 단국대학교 사회교육원 강사 목차 Chapter1. 홍차의 역사 Ⅰ. 유럽, 차를 만나다 1. 동양의 국경을 넘다 2. 영국, 수입이 아닌 생산의 홍차로 Ⅱ. 영국의 홍차 문화 1. 혼수용으로 건너온 홍차 2. 커피하우스에는 차도 있다. 3. 생활 속의 차 Ⅲ. 홍차와 관련된 세기의 사건들 1. 보스톤 차 사건 -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 2. 영국 아편전쟁 - 중국, 홍콩을 양보하다 3. 차 레이스(tea race)-차 운반 경쟁 Ⅳ. 홍차와 자본주의 1. 차와 마케팅 2. 유럽의 도자 회사 3. 실용을 추구하는 현대의 홍차 문화 Chapter2. 홍차의 세계 Ⅰ. 차와 홍차 1. 차의 생성 2. 차의 여행 3. 차나무(카멜리아 시네시스)는? Ⅱ. 생산지와 등급에 따른 홍차 1. 산지별 홍차 - 홍차들의 고향 2. 등급별 홍차 - 팁(Tip)에서 페코(Peko)까지 Ⅲ. 홍차의 분류 1. 우리는 방식에 따라 2. 찻잎의 배합에 따라 3. 포장과 형태에 따라 Ⅳ. 홍차의 제다 공정 1. Orthodox 공법 2. CTC 공법 Chapter3. 홍차의 매력 Ⅰ. 홍차 도구 콜렉션 1. 홍차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 2. 아름다운 홍차 그릇과 제조 회사 Ⅱ. 맛있는 홍차 우리기 1. 기본 홍차 우리기(Straight Tea) 2. 다양한 홍차 우리기(Variation Tea) Ⅲ. 계절별 홍차 찻자리 계절별 - 봄, 여름, 가을, 겨울 테마별 - 생일, 크리스마스 참고 문헌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10&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lt;div style=&quot;width: 100%;border:0; text-align: center; padding-top: 15px; padding-bottom: 5px;&quot;&gt;&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6242652&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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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꾼들의 다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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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우(石愚)</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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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3-18T00:09:23+09:00</updated>
  <published>2010-03-16T02:12:15+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자사호 애호가들은 색상이 분명한 주니(朱泥), 홍니(紅泥)에 관심을 가지지만 애호가를 넘어선 사용자의 입장이라면 다르다. 옛날 니료(泥料)가 지금처럼 귀하지 않을 때, 주니나 자니가 아니면 니료 취급을 받지 못하던 것들 가운데 병배를 잘한 튼실한 재료를 가지고 만든 호는 가끔 그러한 사용자, 즉 차꾼들의 목표가 되어 사용되어 왔음을 잘 알고 있다. 주니, 홍니로 만들어진 다호는 재료에 눈이 어두워져 이정도면 되겠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병배를 통한 좋은 재료로 만들어 다호의 역할과 형상면에서도 기가막히게 만들어진 다호들은 외면당해왔던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그러한 호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모두가 좋아하고 구하고자 했던 주니, 자니 다호만큼이나 사용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귀하고 비싼 다호가 그 능력과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얇은 것 때문에 터짐이 더하고 재료가 귀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아끼다 보니 사용치 못하는 경우도 수없이 보아온 지금, 그 당시부터 줄곧 사용을 해 오면서 어느 다호보다도 보석같이 빛나는 꾼들의 다호들을 보게되면 보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로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비싸고 귀한 몸을 가진 금황주니호, 소매요주니호들보다 영롱하게 빛나는 모습을 가진 꾼들의 다호, 그러한 재료에 급급한 구입과 소장보다 얼마든지 알차고 격조있게 즐기는 꾼들의 지혜는 지금 다시 바로보아도 멋진 선구적 안목이 돋보이지 않는가?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09&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lt;div style=&quot;width: 100%;border:0; text-align: center; padding-top: 15px; padding-bottom: 5px;&quot;&gt;&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6165730&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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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김봉건 논문, 차(茶)와 선종(禪宗)의 만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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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우(石愚)</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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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3-15T14:20:11+09:00</updated>
  <published>2010-03-14T17:52:11+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한국 차문화를 비롯한 차계의 다양한 논문이 발표되고 있는 요즘, 실질직으로 우리의 차문화가 불교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정확한 논고를 제시한 김봉건(동양차문화연구회 회장) 선생의 “차(茶)와 선종(禪宗)의 만남” 은 중요한 논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연구자의 양해를 구하고 석우연담에 올리고자 한다. 이 논문의 요지는 차와 불교의 운명적 만남에 대한 것이다. 차는 불교 선종과 만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불교의 선종 승려들은 차의 각성작용에 착안하여 마시기 시작하였으나 곧 선종 사원 내에서 구성원 상호간의 매개음료가 되었고 이어 불전에 바치는 공양구가 되고 선수행의 화두가 되기도 하고 선수행이 추구하는 최상승인 경지인 삼매와 동일시되기도 함으로써 차미와 선미가 동일한 경지라는 영예를 얻게 된다. 이러한 연고로 차는 인간의 정신경계에 있어서 곧 불교적 색채를 가장 많이 띠게 되었고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도 다선일미란 말이 보편화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그와 동시에 불교는 차가 펼쳐지는 자리에서는 그것이 설령 종교적인 자리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불교, 그것도 특히 선종의 불교사상과 연관이 됨으로써 선종은 찻자리가 펼쳐지는 그 어디에라도 찻잔을 타고 부지불식간에 스며드는 홍보효과를 누리게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차가 역사적으로 불교와 특별한 연관관계를 가지게 된 원인을 명석하게 밝혀내고 있다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 차(茶)와 선종(禪宗)의 만남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김 봉 건(동의대) 목 차 1. 들어가는 말 2. 차의 등장 3. 차와 선종의 만남 1) ‘백장청규’ 2) ‘끽다거’ 4. 맺는 말 1. 들어가는 말 차(茶)는 단순한 마실거리가 아니다. 차는 인체에 유익한 여러 가지 보건 기능을 지니고 있고. 다례 등을 통한 사회적 기능을 다하기도 하며, 고도의 정신문화와도 관계하고 있다. 차의 보건 기능은 매우 다양하다. 몇 가지 중요한 것만 들어 보더라도 혈당의 조절, 콜레스테롤 감소, 체액의 평형 유지, 신경과민의 억제, 항산화·노화방지, 항암·항돌연변이, 심신 조절, 사유(思惟) 촉진 등등....... 헤아리기 힘들다. 차가 단순한 마실거리가 아니라는 것은 이런 신체적인 보건 기능 때문만이 아니다. 차는 오랫동안 인간의 정신적 영역에 깊이 관여해 왔다. 역래로 문인아사(文人雅士)들은 차를 마시고 차를 노래했다. 당(唐)의 유정량(劉貞亮)은 ‘차의 열 가지 덕’(茶善十德)을 읊었고, 노동(盧仝)은 ‘일곱 잔의 차노래’(七碗茶歌)를 불러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그러나 차가 보다 높은 수준의 정신적 경계에 들게 된 것은 불교, 특히 선종(禪宗)과의 만남에서였다. 동시에 선종은 차를 만나 보건 기능의 도움을 받았고, 또한 간접적으로 교세의 확장에도 도움을 받았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차와 선종의 상호 관계를 주로 당대의 선승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청규(淸規)’와 조주종심(趙州從諗)의 공안 ‘끽다거(喫茶去)’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차의 등장 차의 고향은 중국 서남지역이라고 보는 것이 유력하다. 화양국지(華陽國志) 파지(巴志)의 기록에 의하면 주(周) 무왕이 주(紂)를 토벌할 때 파촉(巴蜀) 지방인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때 이미 파촉 지역에서 주 천자에게 바치는 공물 안에 찻잎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인류가 차를 마신 역사는 3,000년 이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00년 전 육우가 《다경(茶經)》을 저술할 때 이미 파산(巴山)과 협천(陜川)에는 두 사람이 함께 껴안아야 할 정도의 거목이 있었다고 하니 당대에는 차를 음용함이 이미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는 차의 학명을 ‘Camellia Sinensis&amp;#039;라고 명명했는데, 여기서의 Sinensis는 라틴어의 중국을 뜻하는 말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중국을 위시한 동북아시아가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차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뚜렷한 자료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차인들이 다성(茶聖)으로 추앙하는 육우는 인류가 차를 발견한 계기를 신농씨에다 부회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염제 신농씨는 인류의 생활을 채취경제에서 농경생활로 나아가게 한 인물이다. 그는 산야에 있는 뭇 식물들의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맛을 보다가 하루에 70여 가지의 독을 만났는데, 그때마다 차 잎을 씹어서 해독을 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차는 최초에 인류의 생활 속에서 약용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농식경(神農食經)》에서는 “차를 오래 마시면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기재하고 있는데 이 책은 물론 신농에 가탁한 위서(僞書)이므로 문자 그대로 믿을 것은 아니다. 육우가 쓴 《다경》〈칠지사(七之事)〉의 기재에 의하면 육우 이전에 씌어진 전적들에서 차의 약효를 다룬 다양한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신농의 《식경》 이외에도 화타(華陀)의 《식론(食論)》, 호거사(壺居士)의 《식기(食記)》, 도홍경(陶弘景)의 《잡록(雜錄)》, 《동군록(桐君錄)》, 《본초》의 〈목부(木部)〉, 《본초》의 〈채부(菜部)〉, 《침중방(枕中方)》, 《유자방(孺子方)》 등의 기록을 들고 있다. 차의 의료 작용에 대해서는 당대 이후에도 계속 탐구되었다. 당대에는 ‘차약(茶藥)’이라는 말을 곧잘 썼고, 송대에는 ‘차는 곧 약’(茶, 則藥也)이라고 논단했다. 당(唐)의 진장기(陳藏器)는 “차는 만병을 고치는 약”이라 강조했고, 명(明)의 우신행(于慎行)은 차를 일러 “백병을 모두 고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명의 전춘년(錢椿年)은 “사람이 진차를 마시면 갈증을 멈추게 하고, 소화를 돕고, 가래를 제거하고, 잠이 적게 오고, 소변이 쉽고, 눈을 맑게 하고, 생각을 이롭게 하고, 번뇌를 적게 하고, 기름기를 제거한다. 사람에게 하루라도 차가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비교적 총체적으로 차의 효능을 기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명청 시기에는 의학의 관점에서 차의 약리 작용을 기재한 본초류의 서적들이 많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일용본초(日用本草)》·《본초원시(本草原始)》·《식물본초(食物本草)》·《구황본초(救荒本草)》·《야채박록(野菜博錄)》·《본초경소(本草經疏)》·《본초도해(本草圖解)》·《상의본초(上醫本草)》·《본초봉원(本草逢原)》·《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식물본초회찬(食物本草會纂)》·《본초구진(本草求眞)》·《수식거음식보(隨息居飮食譜)》 등이 그것이다. 중국 역대의 대표적 의서(醫書)의 하나인 이시진(李時珍 1518~1593)의 《본초강목》에는 차의 약리 작용에 대해서 “머리와 눈이 맑지 못한 것은 열기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쓴 것으로써 그 열을 씻으면 오른 것이 맑아진다. 또 차의 체성은 가볍고 뜨는 것이라서 차의 잎이 처음으로 싹터 봄기운이 오를 때에 따야 한다. 맛이 비록 쓰더라도 기운은 엷다. 이것이 곧 음(陰) 가운데 양(陽)이라 오르게도 하고 내리게도 한다. 머리와 눈에 좋다는 것은 대개 이와 같은 데에 근본한다.”고 하여 차의 약리작용에 대해서 한의학의 시각에서 접근하였다. 현대(1983년 이래)의 의학자들은 ‘차료(茶療)’라는 새로운 단어를 내놓고 있다. 이러한 여러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중국에 있어서 차학(茶學)이란 그것이 곧 의학이요 약학이란 말과도 직통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차학에는 이 외에 또 다른 안목으로 접근한 통로가 있다. 《다경》 〈칠지사〉에는 위에서 열거한 전적들 외에도 《신이기(神異記)》, 《속수신기(續搜神記)》, 《이원(異苑)》, 《광릉기로전(廣陵耆老傳)》 등의 기록도 기재하고 있는데 여기서 차는 어느 사이엔가 기이한 고사들과 함께 신비의 색채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위진남북조 시기의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겠으나, 다른 면에서는 차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회적 덕성과도 관련된 매우 영험한 식물(食物)로 서서히 자각되어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 명확히 인간의 정신적인 세계와 결합하는 일은 불교의 선종(禪宗)과 만나고서부터이다. 선승들은 처음 차의 약리적인 각성작용에 착안하여 선 수행 시 수마(睡魔)를 이기기 위해 차를 마셨다. 그러나 차는 곧 선원 내에서 인화(人和)의 매개체가 되었고 다례의식을 통하여 장엄구(莊嚴具)가 되었다. 선종의 일상생활에서 차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고, 동시에 차는 선종을 만나 바야흐로 문화(文化)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차문화의 전파와 불교의 발전은 상호 촉진의 교호관계에 놓이게 된다. 당대(唐代) 이래로 남방의 사원에는 절마다 차를 심어 “명산이 있으면 명차가 있다”(有名山有名茶)거나, “중이 없으면 차가 없다”(無僧不茶)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선승들은 사전(寺田)에 차를 심어 스스로 가꾸고,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마시면서 차의 제조와 품음(品飮)의 방식을 강구하였고, 글을 쓰고 시를 지으며 차문화를 선양했다. 차는 초기에 약용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다. 그러나 당대에 이르러 차의 생산량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당 중엽에는 차가 민간에서도 일반적인 기호음료로 이용되고 있었다. 다성(茶聖) 육우가 “차 마시는 일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풍속에 차츰 젖어들어 당나라에 들어와 성대하게 행하여졌다. 두 국도(國都)인 장안과 낙양, 그리고 형주(荊州)와 투주(渝州) 지방에서 차는 집집마다 아끼고 즐기는 음료가 되었다.”고 한 말은 저간의 사정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기사이다. 이와 같이 민간에서도 차가 기호음료로 보편적으로 애호되는 상황에서 선풍(禪風)이 이 차문화의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일반에 전염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선종의 교세 또한 확장되었을 것으로 추론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3. 차와 선종의 만남 1) ‘백장청규(百丈淸規)’&amp;nbsp; &amp;lt;?xml:namespace prefix = o ns = &amp;quot;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amp;quot; /&amp;gt; ‘백장청규’는 당대의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 선사가 선원에서의 생활의 규정을 담은 법규집이다. 그런데 이 사찰의 법규 가운데에 매우 많은 분량이 다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선원(禪院)의 생활규정집에 이렇게 많은 다례가 언급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이례적이라 여겨질 정도이다. 백장회해는 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 등과 함께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고제 중 일인이다. 속성은 왕(王)씨이며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 장락(長樂) 출신이다. 《마조록》에 보면 어느 날 서당, 백장, 남전 세 제자가 마조스님을 모시고 달구경을 하면서 나눈 일화가 있다.&amp;nbsp;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같은 때에 무얼 했으면 좋겠는가?” 서당스님은 “공양하기에 딱 좋군요” 하였고, 백장스님은 “수행하기에 좋겠습니다”하였다. 남전스님은 소매를 뿌리치면서 그냥 가 버리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경(經)은 장(藏:서당)으로 들어가고, 선(禪)은 바다[海:백장]로 돌아가는데, 보원(普願:남전)만이 사물 밖으로 벗어났구나.” &amp;nbsp; 이 일화는 사제 간의 우연한 한 때의 대화를 소묘한 것이지만 세 사람의 성품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백장은 다른 도반들에 비해 수행에 더욱 투철하였던 것 같다. 마조스님의 세 제자에 대한 평가가 즉흥적인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후일 백장은 강서성(江西省) 홍주(洪州)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때 스님에게 귀의한 사방의 신도와 승려들이 홍주의 대웅산(大雄山)에 대지성수선사(大智聖壽禪寺)를 세워서 백장을 모셨다. 여기서 백장은 최초로 청규(淸規)를 만들어 선원에서의 대중의 생활을 규정함으로써 선종 사찰의 체계를 잡았다. 청규는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던 것 같다. 백장 스스로 대중들 보다 먼저 수고로운 일을 솔선하였고,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굶었다는(一日不作, 一日不食)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넉넉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백장이 제정한 《고청규(古淸規)》는 당말오대(唐末五代) 사이에 모두 산일(散佚)되어 버리고 지금 전해 오는 것이 없다. 그러다 북송(北宋)에 와서 자각종색(自覺宗賾)이 백장의 《고청규》 사상을 부흥하고자 당시의 여러 큰 사찰을 널리 방문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참고하여 숭녕(崇寧) 2년(1103)에 청규 10권을 찬술하였다. 이것이 《선원청규(禪苑淸規)》로서 현존하는 청규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후일 원(元) 순종(順宗) 지원(至元) 4년(1338)에 동양덕휘(東陽德輝)가 칙조(勅詔)를 받아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를 편찬하였다. 두 청규 모두 《고청규》의 정신을 되살린다는 취지하에서 지어진 것이지만 《선원청규》는 《고청규》로부터 대략 200년, 《칙수백장청규》는 《선원청규》로부터 다시 300년이라는 상거가 있기 때문에 시대적인 생활상의 변화가 반영되어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특히 차와 관련된 내용에서는 후대의 《칙수청규》쪽이 훨씬 세밀하게 분화되어 있는데 이는 차생활이 선원 생활에 더욱 보편화되었음을 반증하는 증거라 할 것이다. 아래에 두 청규의 다례의식과 관련된 사항의 목차를 비교해 보면 이 점이 매우 분명하다. 《선원청규》의 차 관련 내용 목차 禪苑淸規 第一 赴茶湯(차를 마시는 자리에 임하는 법)&amp;nbsp; 禪苑淸規 第五 堂頭煎点(住持의 煎茶를 点하는 茶禮儀式) 僧堂內煎点(승당내 다례의식) 知事頭首煎点(지사와 두수의 다례의식) 入寮臘次煎点(대중의 臘次에 의한 다례의식) 衆中特爲煎点(특인을 위한 다례의식) 衆中特爲尊長煎点(특별한 존장을 위한 다례의식) 法眷及入室弟子特爲堂頭煎点(堂頭화상을 특위한 法眷·入室弟子의 다례의식) 通衆煎点燒香法(각기의 堂宇에서 특별히 행하는 다례의식) 置食特爲(특별한 設齋) 謝茶(茶를 사례함) 《칙수백장청규》의 차 관련 내용 목차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住持章 第五 住持의 日用 告香 嗣法人의 煎點을 받음 새 住持를 請함 專使의 특별히 新命을 위한 煎點 新命의 辭衆 上堂 茶湯 專使의 특별히 受講者들을 위한 煎點 受請人들의 謝衆 陞座 茶湯 入院 山門의 특별히 新命을 위한 茶湯 &amp;nbsp; 兩序章 第六 方丈의 특별히 新舊 兩序를 위한 湯 堂司의 특별히 新舊 侍者를 위한 茶湯 方丈의 특별히 새 首座를 위한 茶 새 首座의 특별히 後堂의 大衆을 위한 茶 住持의 頭首를 垂訪하는 點茶 兩序의 交代 茶 入寮와 出寮의 茶 頭首의 僧堂에서의 點茶 &amp;nbsp; 大衆章 第七 方丈의 특별히 새 掛搭을 위한 茶 茶禮에 나아 가 임함 &amp;nbsp; 節臘章 第八 새로 掛搭된 사람의 入寮의 點茶 方丈의 小座湯 方丈의 四節에 특별히 首座大衆을 위한 茶禮 庫司의 四節에 특별히 首座大衆을 위한 茶禮 前堂의 四節에 특별히 後堂大衆을 위한 茶禮 旦望의 巡堂 茶 方丈의 行堂에서의 點茶 庫司 頭首의 行堂에서의 點茶 다례의식에 관한 두 청규의 규정을 보면 9세기 말 불교 사찰, 특히 선종의 선원에서는 차 생활이 이미 보편화되었고, 다례는 선원 내에서의 매우 중요하고도 특별한 의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송대와 원대로 내려가면서 더욱 세분, 심화되고 있음도 아울러 알 수 있다. 청규에 있어서의 다례의식은 주지(住持), 양서(兩序) 등이 임무가 바뀔 때, 새로운 사람이 오고 갈 때, 계절이 바뀔 때, 각 승당(僧堂) 단위의 다례의식이 필요할 때 등 다양한 경우에 행해졌으며, 청규의 언어로 보아 대단히 상세하고 엄격하게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선원청규》에서 맨 먼저 나오는 다례 조(條)인 ‘赴茶湯’(차를 마시는 자리에 임하는 법) 조를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amp;nbsp; &amp;nbsp; &amp;nbsp; 원문(院門)의 특위(特爲)의 차탕(茶湯)은 예수(禮數) 은중(慇重)하다. 청을 받은 사람 마땅히 만이 (慢易)하지 말라......(중략)...... 만약 당두(堂頭)의 차탕에 다다르면, 대중(大衆)이 모이며 시자(侍子)는 특위의 인에게 문신(問訊)하고 청해 들인다. 수좌(首座)를 따라 위(位)에 의하여 선다. 주지인(住持人)이 읍(揖)하면 이에 가사(袈裟)를 거두어 안상(安詳)하게 자리로 나아간다. 화(靴)를 벗되 참치(參差)하지 말라, 발(足)을 거두어 넣되 의자에 소리나게 하지 말라. 정신(正身) 단좌(端坐)하되 등(背)을 의자에 기대지 말라, 가사를 무릎에 덮으며, 좌구(坐具)를 면전에 드리워 엄연(嚴然)히 차수(叉手)하여 주인에게 조읍(朝揖)하라......(중략)...... 당두(堂頭)의 인(人), 오로지 주인을 보고 고읍(顧揖)을 마치고 연후에 상하간(上下間)에게 읍하고 차를 끽(喫)한다. 차를 불지 말라, 잔을 흔들지 말라. 호신(呼呻)하여 소리를 내지 말라, 잔탁(盞橐)을 놓으며 부딪치는 소리를 내지 말라......(중략)...... 우수(右手)는 차약(茶藥)을 청하여 이를 들어 올리되 행함이 두루함을 기다려 상읍(相揖)하고, 마치면 정히 끽한다. 입을 벌려 던져 넣지 말라. 또한 물며 소리를 내지 말라. 차 파(罷)하면 위(位)를 떠나되 안상하게 발을 내려라. 문신을 마치면 대중을 따라 나온다. 특위의 인은 모름지기 한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 문신하고서 사차(謝茶)의 예를 나타낸다. 갈 때는 모름지기 위의상서(威儀庠序)하라. 급히 가며, 큰 걸음으로 가며, 그리고 화(靴)를 끌면서 땅을 밟아 소리 나게 하는 일 말라. 주인이 배웅하면 몸을 돌려 문신(問訊)하되 공(恭)을 다하여 물러난다. 연후에 차례로 고하(庫下)와 제료(諸寮)의 차탕으로 나아간다...... (후략) 《칙수백장청규》에는 다회에 초청하는 서장의 양식까지 보이는데 예컨대 ‘方丈의 특별히 새 掛搭을 위한 茶’ 조에 보면 아래와 같이 다회를 주관하는 주체에 따라서, 초청자에 따라서 각각 다른 두 양식을 열거한다. 이외에도 각각의 다회마다 유사한 형태의 초청장의 양식이 있다. &amp;nbsp; ------------------------------------------------------------------------- 茶 狀 式 新掛搭 某甲上座列名, 當頭和尙 오늘 아침 齋座 후에 寢堂에서 點茶를 특별히 행합니다. 아무쪼록 와 주십시오. 今月 日 侍者 某 拜請 ------------------------------------------------------------------------- 茶 狀 式 新掛搭 某上座 列名 右某等, 오늘 아침 齋座 후 庫司에서 點茶를 행합니다. 아무쪼록 모두 참석해 주십시오.&amp;nbsp; 今月 日, 庫司比丘 某等 拜請 ----------------------------------------------------------------------- &amp;nbsp; 그런데 선원에서의 이와 같은 다례의 보편화는 다량의 차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차의 물량을 상당 정도 확보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백장의 스승 마조도일은 노동을 통한 자급자족식 농업생산을 장려하였는데 백장은 이를 청규를 통하여 제도로 정착시켰다. 농사를 지으면서 선 수행을 하는 이러한 생활 형태를 ‘농선(農禪)’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마조와 백장을 잇는 강서(江西)의 홍주(洪州) 선종에서 맨 먼저 이루어진 것이다. 농선은 처음 인도에서 들어온 보시(布施)에 의존하던 승려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중국불교의 하나의 특징을 형성시켰다. 또한 수행과 생산 활동을 결합함으로써 선종사원의 자급자족식 경제적 기반을 이루게 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선원에서 수요되는 차도 이와 같이 스스로 경작하여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백장이 주석하고 있던 강서 홍주의 대웅산은 북송(北宋) 시에 이미 공차(貢茶)의 반열에 오른 여산운무(廬山雲霧)차의 산지와 멀지 않아서 다례에 사용되었던 차의 질도 대단히 좋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종의 엄격한 자기 노동에 의한 자급자족식 농선(農禪)의 생활방식은 회창(會昌) 연간(841-845)의 폐불(廢佛) 사건으로 말미암아 온 불교계가 큰 타격을 받았지만, 선종은 타격을 받을 것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말에서 오대(五代)에 걸쳐 오가칠종(五家七宗)의 전성시기를 이루었다. 당(唐) 무종(武宗)의 폐불 사태에 불교계가 입었던 피해는 대사(大寺) 4천 6백, 소사(小寺) 4만 여가 파괴되었으며, 승니(僧尼) 26만 명이 환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몰수된 사전(寺田)이 수천만 경(頃), 노비 1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당대에는 역대 왕이 불교를 보호하여 사원 경제의 규모가 매우 방대하였다. 특히 왕공과 부호들의 보시에 의한 전답이 큰 규모였는데, 이와 같은 보시 성행의 이유는 자기의 현세·내세의 공덕을 얻기 위한 것이었지만, 반면 사원의 면세 특권을 이용해 자기 장원의 과세를 면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로 행해진 것도 적지 않았다. 또한 사원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장(寺莊) 점유에 급급하여 토지의 매매, 겸병, 그리고 대자본을 투자하여 개간하는 등 사원 스스로가 대지주가 되어 있었다. 당시 사원은 광대한 장원(莊園)을 소유하여 이를 노비, 혹은 객호(客戶)라는 소작인에 의하여 경작케 했으며, 이외에도 방앗간, 상품을 파는 점포의 운영, 수레의 대여, 금융 사업 등을 통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었다. 회창의 폐불사건은 도사(道士) 조귀진(趙歸眞)의 참언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기실 불교계 스스로 자초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마조 - 백장을 잇는 홍주종의 선종 사원들은 청규의 엄수와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정신으로 청정한 농선을 실천하였으므로 폐불의 이념적 표적에서 본질적으로 비켜나 있었던 셈이다. 2) ‘끽다거(喫茶去)’ ‘끽다거’는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 사용한 화두이다. 조주는 차를 화두로 하여 명실 공히 차와 선을 융합한 장본인이다. 그는 원래 조주(曹州)의 학향(郝鄕) 출신으로 속성 또한 학(郝)씨이다. 어린 나이에 고향의 용광사로 출가하여 경과 율을 익히지 않고 곧바로 참선을 하였다. 그러다 은사 스님을 따라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 스님을 참례하고 입실하였다. 그 후 남전스님이 입적하기까지 40여 년을 시봉하여 《조주록》에는 남전스님과의 대화가 많다. 조주가 남전으로부터 심인(心印)을 얻은 것은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에서였다. 《조주록》에는 당시의 대화를 이렇게 적고 있다. &amp;nbsp;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시의 마음이 도이다.” “그래도 닦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 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고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망각(妄覺)이며 모른다는 것은 무기(無記)이니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태허와 같아서 확연히 트일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느냐?” 스님께서는 이 말 끝에 깊은 뜻을 단박 깨닫고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 마조와 남전의 선을 이은 조주의 선법은 철저한 심득(心得)에 있다. 이것은 그 자신 경과 율을 공부하지 않고 대번에 선을 수행한 그의 선법의 특징이다. 《조주록》에는 심득(心得)을 표방하는 공안이 오히려 현란할 정도로 다양하다.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한 마디입니까?” “그 한 마디만 붙들고 있으면 그대는 늙고 만다.” &amp;nbsp;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담장 바깥이다.” “그것을 물은 것이 아닙니다.” “무슨 도를 물었느냐.” “대도입니다.” “큰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 &amp;nbsp;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진실한 사람의 몸입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그리 말씀하시면 저는 알기 어렵습니다.” “너는 나에게 진실한 사람의 몸을 묻지 않았느냐?” &amp;nbsp; 한 스님이 물었다. “세상 사람은 보재(寶財)를 귀하게 여기지만, 사문은 무엇을 귀하게 여깁니까?” “어서 입 다물어라.” “입만 다물면 됩니까?” “입을 다물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느냐?” &amp;nbsp; 한 스님이 물었다. “앞 구절은 이미 지났고 뒷 구절은 밝히기 어려울 때는 어찌합니까?” “무어라고 불렀다 하면 틀린다.” “스님께서 구분해 주십시오.” “자꾸 묻는구나.” &amp;nbsp;조주는 논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주 또한 삼계(三界) 안에 존재하는 까닭에 그 역시 명물도수(名物度數)를 든다. ‘뜰 앞의 잣나무’, ‘베옷의 무게가 일곱 근’, ‘차 한 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물들의 지칭은 그것들을 논리적 구조 속에서 분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시비의 마음을 끊고 평상심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이것을 본분사(本分事)라고 불렀다. 만일 학인(學人)들의 근기에 따라 일일이 논리적 설명을 통해 가르치려 한다면 3승 12분교의 지리한 점학(漸學)으로 떨어질 것을 경계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선학에 있어서의 근본 태도는 ‘끽다거(喫茶去)’의 화두에서 두드러진다.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스님께서 새로 온 두 납자에게 물었다. “스님들은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차나 한 잔 마시게.”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왔었습니다.” “차나 한 잔 마시게.” 원주(院主)가 물었다. “스님께서 우리 절에 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차나 한 잔 마시라 하시고, 왔던 사람에게도 똑 같이 차나 한 잔 마시라 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원주야!” 하고 부르니, 원주가 “예!”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네도 차나 한 잔 마시게.” 차(茶)는 조주의 ‘끽다거’에서 정신적 경계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도 일승(一乘)의 본분사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후 조주의 ‘차’가 백장의 ‘할(喝)’, 덕산의 ‘방(榜)’ 등과 함께 선종의 대표적 화두의 하나가 된 것은 실로 우연한 일사(一詞)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다. 처음 이곳에 온 사람도 차 한 잔 하고, 다시 이곳에 온 사람도 차 한 잔 하고,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른 사람도 차 한 잔 하는 일승(一乘)의 그 차(茶)는 내면에서 입증되는 것이지 문자나 언어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당하(堂下)의 나의 입 안에 있는 이 차 한 모금에 진실로 차미(茶味)가 존재함을 깨달아 지(知)·부지(不知)를 떠난 평상심에 이르면 그때에 조주와 신회(神會)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5. 맺는 말 선종의 승려들은 처음에 잠을 멀리 해 주는 각성 작용 때문에 차를 마셨다. 나중에는 차미(茶味)를 선미(禪味)와 동일시하는 ‘다선일미(茶禪一味)’의 경계를 열어보였다. 이는 특히 마조도일의 문에서 철저히 이룩되었다. 마조의 ‘농선(農禪)’과 그의 제자 백장의 ‘청규(淸規)’에서 차는 선원에서의 일상사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마조의 또 다른 제자인 남전보원 문하의 조주종심은 ‘끽다거(喫茶去)’의 공안(公案)을 펼쳐 차를 선미(禪味)의 본질과 동일시했다. 이후 백장회해의 문에서 임제의현(臨濟義玄)에 이르러 임제종(臨濟宗)을, 다시 위산영우(潙山靈佑)와 앙산혜적(仰山慧寂)에 이르러 위앙종(潙仰宗)의 2가(家)를 열었으며, 송말에 임제종에서 분리된 황룡종(黃龍宗)과 양기종(楊岐宗)의 2종(宗)이 열려 백장의 문에서 선종 오가 칠종의 2가 2종을 펼친 셈이다. 뿐만 아니라 백장이 제정한 ‘청규’는 선원 생활의 최초의 규정으로서 후일 원전이 일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것을 되살린 청규들이 수다히 제작되어 총림의 기강이 되고 있다. 또한 청규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다례의식은 대대로 사찰의 의식을 주관하는 일이 되었다. 후일 양기종의 제일인(第一人) 원오극근(圓悟克勤)은 문하의 일본 유학승에게 ‘다선일미(茶禪一味)’ 네 자를 써 주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일본 다도의 근본정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또 회창의 폐불 시 자국의 승려들은 환속시키고 타국의 승려들은 귀국을 종용하였는데 이때를 전후하여 귀국한 도의(道義 ?-?), 체징(體澄 804-880), 홍척(洪陟 ?-?), 혜철(慧徹 785-861) 등 수 많은 신라 승들은 거의 마조의 문하에서 수학한 선승들인 바 이들이 귀국하여 구산선문(九山禪門)을 열면서 선학과 다례를 함께 펼쳤을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후 우리나라의 고려조와 조선조를 내려오는 동안 이어져 온 다맥(茶脈)은 주로 마조-백장의 선맥(禪脈)과 확연히 닿아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선(禪)이 있는 곳에 차(茶)가 있고, 차가 있는 곳에 선이 있다. 이 점은 바꾸어 말하면 차와 선이 어느 찻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면서 선종 또한 찻잔에 무임승차하여 어느 찻자리든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라고도 하겠다. 이는 오랫동안 선승들이 차를 사랑하여 그 보답을 받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오늘날 많은 사찰에서 선다회(禪茶會)가 조직되어 사찰의 의례에 일조하는 모습을 본다. 조선말과 일제 강점기의 차의 공백기를 넘어 새롭게 피어나는 찻잎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자칫 내력 없는 다례들을 범람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항상 마조의 농선(農禪)과 ‘백장청규’의 절조된 다례 정신, 그리고 조주종심의 ‘끽다거’의 선미(禪味)를 늘 되새겨야 한다. 명대의 장원(張源)은 “차는 혼자 마시면 신묘하다(獨啜曰神)”고 했다. 조선말의 차승(茶僧) 초의(草衣)는 “오직 흰 구름과 밝은 달 만을 두 손님으로 허락한다(惟許白雲明月爲二客)”고 했다. 유자(儒者) 추사(秋史)도 ‘명선’(茗禪)이란 말을 썼다. 오늘 우리들의 모든 찻자리도 늘 이와 같이 선미(禪味)가 가득한 청정한 자리이고 싶다. 나무관세음보살. “차 한 잔 합시다!(喫茶來)”&amp;nbsp; [참고 문헌] 구기평 지음, 김봉건 옮김. 《다경도설》, 이른아침. 서울, 2005 동아시아선학연구소 편저, 《다선일미》, 불교춘추사, 서울, 2005 동아시아선학연구소 편저, 《조주선사와 끽다거》, 불교춘추사, 서울, 2003 백림선서간행회, 《마조록·백장록》, 장경각, 해인사백련암, 1989 백림선서간행회, 《임제록·법안록》, 장경각, 해인사백련암, 1989 백림선서간행회, 《조주록》, 장경각, 해인사백련암, 1991· 왕종인 지음, 김하림·이상호 옮김, 《중국의 차문화》, 에디터, 서울, 2005 장원규, 《中國佛敎史》, 고려원, 서울 1984 최법혜, 《고려판 선원청규 역주》,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서울, 2001 키무라 키요타카(木村淸孝) 저, 박태원 역, 《中國佛敎思想史》, 경서원, 서울, 1988 황유복·진경부 지음, 권오철 옮김, 《한-중불교문화교류사》, 까치, 서울, 1995 郭孟良, 《中國茶典》, 山西古籍出版社, 中國 太原, 2004 董建文 외, 《中國茶醫學》, 天津科學技術出版社. 中國 天津, 2002 阮浩耕·沈冬梅·于良子, 《中國古代茶葉全書》, 浙江攝影出版社, 中國 杭州, 2001 雲峰, 《品茶地圖》, 農村讀物出版社, 中國 北京, 2005 陳宗懋, 《中國茶經》, 上海文化出版社, 中國 上海, 2002 樺蘇, 《中國神話》, 國語日報出版社, 臺北, 民國71年 &amp;nbsp; &amp;nbsp;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08&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lt;div style=&quot;width: 100%;border:0; text-align: center; padding-top: 15px; padding-bottom: 5px;&quot;&gt;&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6182480&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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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홍차 문화의 세계 편집을 마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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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우(石愚)</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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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3-11T00:59:05+09:00</updated>
  <published>2010-03-10T23:21:11+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티월에서 발행하는 세번 째 책이 오늘 인쇄소에 넘겨졌다. 제목은 “홍차 문화의 세계”로 이제까지 한국에서 홍차 관련 책들이 다양하게 출간되었지만, 이번에 나오는 책은 다르다. 한국에서 다도(茶道)과목을 대학에서 처음으로 개설한 부산여자대학 차문화복지학과에서 그동안 홍차 수업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 다섯 명의 공저자는 스리랑카, 인도, 무이산 정산소종 등을 탐방해오면서 조금씩 준비해온 것이다. 티웰에서 원고를 접수하고 나오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대학에서 정규 과목에 있는 홍차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와 강사들이 공저로 만든 것이다. 홍차의 역사, 홍차의 세계, 홍차의 매력이라는 분류를 가지고 이전에 보지 못한 내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홍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내용으로는 맛있는 홍차 우리기의 5가지 법칙(Golden Rule), 다양한 홍차 우리기 (Variation Tea), 사과의 상큼함과 홍차의 독특한 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애플티, 홍차에 향신료인 생강, 정향, 계피, 후추, 겨자 등과 우유를 함께 넣고 끓이는 인도 전통 홍차인 마살라 짜이 등이 독자를 기다린다. [홍차 문화의 세계 앞 뒤 표지] 공저자는 정영숙(부산여자대학 차문화복지과 학과장, 경영학 박사), 배말순(부산여자대학 전임강사), 임창숙(경북대학교 대학원 임학과 농학 박사), 김문숙(부산여자대학 다도 강사), 윤혜진(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 박사 수료)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06&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lt;div style=&quot;width: 100%;border:0; text-align: center; padding-top: 15px; padding-bottom: 5px;&quot;&gt;&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6120098&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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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일상에서 차 향기를 즐기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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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우(石愚)</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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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3-03T18:05:38+09:00</updated>
  <published>2010-03-03T08:45:13+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차(茶, tea)에서 나는 향기는 찻잎 자체에 형성된 방향물질이다. 차의 향기 즉, 문향(聞香)을 두가지로 나누면 차를 우리기 전과 후로 구분할 수 있다. 차를 우려 내기 전에 찻잎을 감상하거나 예열한 자사호에 차를 넣고 물을 따르기 전에 나오는 향을 탕전향(湯前香)이라고 한다. 필자가 오룡차의 향기에 매료된 것도 탕전향에서 나는 향이다. 1990년 부산 창선동 속칭 깡통 시장입구에 있는 연암 찻집(현, 쌍어각 주인 박정호) 주인이 오룡차를 내어주면서 예열 시킨 다호 안에 차를 넣고 흔들어 뚜껑에 모인 향기를 맡아보게 해주었다. 그 당시에는 신비롭기도 하면서 차의 자연향을 알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요즘은 보이차 중에서도 보이 생차를 보관하며 아침마다 그 차향을 즐기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건차 상태에서 옹기 항아리나 백자 단지, 나무 상자 등의 보관 상태에 따라서 나오는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amp;nbsp; [사진, 큰 문향배로 탕후향(湯後香)을 즐기는 모습]차향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즐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것이 좋다 나쁘다의 대상이 아니다. 스스로 그 향기에 취하고 싶어 한다. 차생활에서 볼 때 탕전향을 즐기는 분들이 실제로 많지 않지만 차의 향기를 조금씩 알아갈 때 향기의 진정성이 어떤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될 때가 있다. 그럴 때 향기 하나하나를 익혀나가자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05&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lt;div style=&quot;width: 100%;border:0; text-align: center; padding-top: 15px; padding-bottom: 5px;&quot;&gt;&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6021754&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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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김석호의 신기한 비누를 만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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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우(石愚)</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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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3-03T10:07:41+09:00</updated>
  <published>2010-03-03T04:34:22+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2-3년 전부터 천연비누가 유행이다. 세안을 위해서 남자들은 클렌징보다는 비누를 사용한다. 비누도 일반비누가 있고 천연소재의 비누가 있다. 천연비누를 사용해 보면 화학성분이 전혀 없는 제품에서만 나는 고유의 향기를 경험하게 된다. 천연비누의 소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양한 향기를 즐기는 시간이 많을 수록 향기에 대한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녹차를 주성분으로 한 비누나 보이차를 이용한 천연비누도 사용해 보았다. 계속사용해야지 하는 마음 뿐이지 하나를 다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바뀌게 되었다. 왜? 계속이어지지 못할까 어떤 계기가 있을 때 까지는 손에서 멀어져만 갔다. 이것이 천연비누에 대한 나의 경험이다. 오늘 교보문고에서 조선헬스 3월호를 구입하며 무심코 받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가져왔는데 “김석호의 신기한 비누”라는 육각형의 포장을 열어 보았다. 외관에서 풍기는 담녹색이 차를 가까이 두고 있는 우리같은 사람에게는 인공미를 느낄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보였다. 자연을 담아 만든 것 같아 비누를 사용해 보고 싶었다. 비누를 사용해 보고 싶어 세안을 했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순간은 그렇게 해서 세안을 해보았다. 느낌이 좋은 비누, 숙성시켜보고 싶은 비누로 내일 아침 한 번더 만나고 싶다. 이런 기분이 든 것은 참 오랜만에 가지는 것 같다. 나이 탓일까?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04&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lt;div style=&quot;width: 100%;border:0; text-align: center; padding-top: 15px; padding-bottom: 5px;&quot;&gt;&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6020739&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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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중국차 견문록 에필로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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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우(石愚)</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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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3-02T01:17:53+09:00</updated>
  <published>2010-03-02T00:33:12+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차를 접하고 그 향기에 매료되어 22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왔다. 특히 중국 대륙의 차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사진 작업을 병행하며 연구하게 된 지도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쌓아온 중국차 생산 현장에 대한 경험이 나 혼자만의 것으로 그치기엔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나는 운이 좋았고 복도 많은 편이었다. 초행길에 일반인들이 가기 힘든 곳까지 가게 된 것도 행운이었지만, 그 속에서 차의 진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중국 대륙은 워낙 넓어서 아무리 가보아도 그 전체를 볼 수 없었다. 단순히 중국을 여행하면서 경험한 내용이 아니다. 중국차 자체를 견문하였다. 중국의 차는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유기체다.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느낌은 부분만으로 전체를 이야기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차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차의 맛과 향은 세상을 따라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그야말로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이 책을 마치며 아쉬운 점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2000년 이후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맞물려 차 소비가 확대됨은 물론, 선호하는 차의 종류도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통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점이다. 둘째는 지역마다 새로운 품종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좀더 깊게 접근하지 못한 점이다. 향후 초심의 열정으로 민북, 민남, 광동, 대만의 오룡차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펼치고자 한다. 그것은 이 책의 첫 번째 장을 ‘복건성’으로 시작한 이유이며, 집필을 마치면서 ‘발효차’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03&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lt;div style=&quot;width: 100%;border:0; text-align: center; padding-top: 15px; padding-bottom: 5px;&quot;&gt;&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6092271&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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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김동열 천목다완 전시를 알리면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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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3-01T04:32:15+09:00</updated>
  <published>2010-03-01T02:04:05+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부산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동열은 2010년 3월 9일부터 14일까지 부산 영광갤러리와 3월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경인미술관 아뜰리에서 천목 다완 전을 펼친다. 김동열의 작품은 다른 사기장들이 거의 분청작업을 하는 반면 도자기 유약 중에서도 과학적인 시유분석이 있어야만 발색과 화변의 합리성을 가지는 흑유다완 만을 고집한다. [2009년 김동열 作, 천목 다완] 특히 흑유 다완의 단순한 흑유 시유만을 통한 다완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흑적색이 혼재된 작품들은 작가의 창의적인 작품으로 가마에서 소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발색을 요변을 통하여 창조해 내었다. 따로 시유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의 그릇의 가장자리 변색은 바로 불이 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며 그에 대한 데이터 작업으로서, 작가의 정열과 고뇌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장작가마 작업이 아니면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 넌센스 속에서 현대적 기술과 감각으로 송대에 유행한 천목다완(天目茶碗)을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로 만든 김동열 사기장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들에게 전통다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안겨준다. 단순히 유약의 변화가 아니라 오로지 불을 다룰 줄 아는 작가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김동열의 천목 다완은 찻그릇을 사용하는 차인들에게 이 시대의 천목다완이 주는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02&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lt;div style=&quot;width: 100%;border:0; text-align: center; padding-top: 15px; padding-bottom: 5px;&quot;&gt;&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5995679&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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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중국다예연구소 신년 차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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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2-26T14:53:46+09:00</updated>
  <published>2010-02-26T14:33:39+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중국다예연구소 신년 차회 &amp;nbsp;부산에서 중국차문화보급에 앞장 선 중국다예연구소(이영자 원장)를 2010년 2월을 기점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전을 하기 전에 회원들과 마지막 차회를 가지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손님으로 초청한 분은 부산여자대학교 정영숙 차문화복지학과 주임교수님. &amp;nbsp; 찻자리 시작은 12시 정각이다. 그동안 이곳에서 중국차를 공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리를 만들었다. 징을 울리며 찻자리의 시작을 알리고, 사람들은 큰 테이블 두고 마주 앉는 형식으로 방에 찻상을 진설하고 자리를 잡았다. &amp;nbsp; 이영자 선생님은 오늘의 과정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녹두죽을 준비하였다. 죽을 먹고 난 뒤에 보데보테차를 각자 마셨다. 보데보테차는 죽을 다 먹고 난 후, 죽그릇에 물을 조금 넣고 죽염을 약간 넣어 솔을 젓지 않고 중심을 눌러 상부를 움직여 젓는 방식으로 거품을 내어 차처럼 마시는 것을 말한다. 식사가 약간 모자란 분들은 준비한 떡을 먹기도 하면서 메인 차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오늘의 메인 차는 육보차로 준비하였다. &amp;nbsp; [사진, 오른쪽 첫번째, 이영자 선생] 육보차는 4kg, 50kg 단위의 포장으로 되는데 이 차는 4kg 차로서 발효가 잘 된 것으로 세월이 많이 지난 차이다. 원래는 산차 형태로 담은 것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굳어져 덩어리가 형성된 것이다.&amp;nbsp; &amp;lt;?xml:namespace prefix = o ns = &amp;quot;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amp;quot; /&amp;gt; 이 차의 맛은 육보차로서의 최상급은 아니지만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흑차로서의 육보차에 대한 인식을 바꿀 만큼의 차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깔끔한 맛. 흑차임에도 입안이 시원하다고 할까...... 모두 즐겁게 마시게 되었다 오늘 참석한 분들에게는 집에서도 한 번 시음에 보시라고 15g 씩 나누어 담아 주었다. 2부에서는 대만 차를 시음하는 시간으로 백호오룡(동방미인), 아리산오룡, 금훤, 목책철관음을 시음하는 시간을 가지고 찻자리를 마치게 되었다. 찻자리의 형식은 지방마다 다르고 찻자리를 주관하는 선생님에 따라서 다양한 유형으로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amp;nbsp;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01&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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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유치원 졸업식에서의 유아 다도 시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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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2-27T19:18:03+09:00</updated>
  <published>2010-02-25T00:59:00+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 다도 교육 과정을 중요시하는 룸비니 유치원(원장 선구스님) 졸업식이 2월 20일 점촌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있었다. 메인 행사에 앞서, 대강당 무대에서 그동안 배운 생활차 내는 방법으로 부모님 앞에서 차 한 잔을 직접 우려내어 대접하였다. 찻자리 구성은 차를 내는 팽주 자리와 보조자의 위치를 정하고 맞은 편에는 부모님이 자리에 앉았다. 차는 두 어린이가 한 번씩 번갈아 시연을 하였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들 딸이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시연하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유치원에서 하는 다도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였다. 졸업생은 한복을 곱게 입고 익숙한 자세로 다포를 걷고 다호를 손에 쥐고 뚜껑을 열며 차를 떠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오른 쪽에 위치한 보온 병을 들어 물을 따르는 하나 하나의 동작은 훗날 차 마시고 즐기는 것에 대한 유년의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 룸비니 유치원의 선구 스님은 일찍이 어린이 다도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유치원 내에 다도 교실을 5년 전에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건물 지붕에는 자연광이 풍부하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어린이 다도 교육 현장으로는 모범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어린이들의 정서 함양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다. 룸비니 유치원에서 다도 교육을 담당한 교사는 문경다례원 고선희 원장으로 문경에서 ‘칠석 차문화제’ 행사와 다인소장 아름다운 다완ㆍ다관 품평 전을 주관한 차인이다. &amp;nbsp; (석우연담에서는 유치원 다도, 어린이 다도, 유아 다도에 사용하는 차도구에 대한 연구를합니다. 이에 공동 연구를 희망하는 분들의 제언을 받습니다) &amp;nbsp; 유치원 다도 교육의 또 다른 글 유치원 다도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amp;nbsp; http://seoku.com/266 유치원 다도 교육 현장 http://seoku.com/229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seoku.com/300&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lt;div style=&quot;width: 100%;border:0; text-align: center; padding-top: 15px; padding-bottom: 5px;&quot;&gt;&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5951621&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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