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행다(行茶)의 주체성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행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더욱 깊어진다. 내년에도 전국에서 한국차를 배우기위한 노력보다는 중국차를 배우거나 중국차와 관련된 자격증을 발급하는 사업이 사업성과 명분을 가지고 각단체가 경쟁적으로 주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일본 다도를 배우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전국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 글은 지난 2005년 10월 월간다도에 기고 한 원고이지만, 12월31일 한 해를 보내면서 2006년에는 우리의 행다법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하면서 ‘한국 行茶의 주체성’다시 한 번 올려본다.

금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국내외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마무리되고, 어떤 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진행이 되고 있다. 사건, 사고가 많은 시기에는 문화가 기를 펴지 못한다. 현대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고 급히 지나가기에 전통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높이 숭앙된다.

전통중에서도 예의를 다한 것은 그 나라 그 민족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밀레니엄도 5년을 넘기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행다는 과연 어디에 서 있을까?
이 글에서는 더할나위없이 솔직히 말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행다(行茶)와 다법(茶法)의 용어 선택에 대해서는 행다로 정하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행다 : 차를 내기 위해 정해진 동작에 의해서 행동을 모범적인 법칙에 맞게 한다.
다법 : 차를 내는 행위뿐 아니라 차 맛이나 차의 정신까지를 포함하며, 차 따는 법, 차 우리는 법, 차 마시는 법 모두를 포함한다.

주지하는 바,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우리의 행다는 참으로 묘한 형상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순 조선식도 아니고, 순 일본식도 아니었다. 수많은 차 선생의 입장은 든든한 반석이 아닌 눈총을 받는 입장인 경우가 더 많았었다. 양반 가문에서 차(茶)를 통한 전통은 미미했고, 일본식 차 마시는 법이 올바른 법도인 양 행세를 해 왔다.
 
차 마시는 일과 그 주변적 행위가 문화적인 형태이기에 평범한 가정에서는 흉내도 내지 못했고, 속칭 상류에서의 유형이 근년에 이르러서야 여러 계층이 공유할 수 있도록 범위가 확장되었다. 아는 사람만 알던 보이차의 이론이 흔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들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차인 확대의 결과라 하겠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는 역사적 배경 속에 사람들이 살아오던 정신적, 물질적, 생활적인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일본은 실생활에서의 음료로 굳혀진 중국에 비해 역사적, 지배 이념의 특수성, 계층의 분화 등 철학적, 이념적 특성을 가지고 있되, 그 근본적 외양과 형태로 중국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차 마시는 일에 굳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끌어 들이지 않더라도 한 . 중 . 일 세 나라가 가까우면서도 참으로 특성이 고유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 이념과 방식을 가지고 차 마시는 행위를 완성시켰을까? 진실로 골똘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다법을 배우고, 중국에 가서 이국적인 것에 자격증도 가지고 오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나라 이 땅의 사람들이 가지고 또 공감하는 우리네 전통 행다법은 어디에서 배워오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가? 일부 우리식으로 주체성을 가지고 발표한 것은 외면당하거나, 정통이 아니라는 식의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다법이 일본식(日本式)이라는 현실은 그러한 바탕을 정당화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주변은 확대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진실된 전통성이 있는 행다법을 보여줄 의무가 차인들에게 있다. 우리는 유가식(儒家式) 행다가 있었고, 전통 가내(家內) 행다법이 남성, 여성을 구분하여 존재 했었다. 관혼상제에 존재했으며, 그 의식의 수준과 차의 선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연습은 많이 되었다. 이젠 우리의 행다법이 나타날 차례가 아니겠는가? 외국의 형식이 모방되어 펼쳐진다 해도 그 내면에 우리의 정신이 표출될 수 있을까?

혹자는 일본식 다도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시간적인 이유를 들어 한국식 행다법을 형성케 했다고 한다. 일부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30년간 차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초창기 차인들이 일본의 전차도 및 말차 행다를 모방하면서 행다 발표를 해 왔다.

양반 문화가 소멸되다시피 한 근대화 이후 식민 산업, 그 후의 전환, 다시 산업화된 사회의 조류는 그 이전의 전통성을 까마득히 망각하게 만들었던 것의 주된 이유라 하겠다. 현재 우리의 행다법은 일본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 우리식도 아니다. 일본식 행다법에서 생략되고, 사찰에서의 선다법이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에서 표현되고 있다고나 할까?

일본에서의 전차도는 각 유파마다 국지적인 특성이 나름대로의 철저한 동작이 이미 굳혀졌고, 그 본질인 차의 맛과 사용되는 기물의 수준을 논하고 있다. 우리의 입장은 차의 맛으로까지는 접근치 아니하고 보기에 아름다운 면에 치중하고 있다. 혹여 비판받을 현실이라 할 수 있지만, 이 발전은 긍정적인 것이다. 의례라고 하는 것은 철저한 외양상의 절차와 격식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런 형식적인 면이 굳어져야만 그 후에 차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형식을 멀리한 경우에는 높은 평가의 기준이 차 맛에 있겠지만, 행다법에 있어서의 1차적 급선무는 형식의 정립임에 두말할 나위 없다. 중국에서의 선차와 불차,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련의 중국식 다예표현의 일면을 살펴보자. 생활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튀어나온 문화상품의 성격도 성격이려니와 화려한 동작은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이 전통성에 의거했지만 실제로는 근래에 만들어진 행다에 그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에 따라 행위 하는 것이 수준이다. 우리의 수준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또 외면하면 안 된다. 우리의 수준을 똑바로,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
그리고 다음 계단이 무엇인지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의 격식과 예절을 지니고 의례가 넘쳐나고,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기품 있고 잘 갖추어진 한국의 행다법을 만들고 계승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내면에 철저히 다듬어진 우리의 철학과 의식이 살아 숨 쉬고 찻잔에서도 한국차의 향과 맛이 그득히 넘쳐흐르는 한국의 행다법이 자연스레 정립이 될 것이다.

무조건 모방하고 제 것인 양 만들어 보이는 일본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과 역사적 유구함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중국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이다. 한국의 행다법이 무엇이 될까,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행(行)하고 생각(思)해야 하는 문제이다. 어렵게 베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과 몸으로 체득하여 이루어지는 생활이며, 더 나아가 전통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