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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명차, 운남성 차문화 기행문

차를 향한 눈 2014.09.03 04:31 Posted by 석우(石愚)

진미호 보이차 생산기지의 사무실 건물

석가명차(대표 최해철)에서 석가명차 대리점주들과 함께 2014년 6월 운남성 차문화 기행을 다녀온 내용의 기행문을 읽게 되었다. 기행문 작성자는 최해철 대표로서 매년 봄마다 운남성 차문화 기행을 해왔다. 필자도 2013년에 함께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 운남성 보이차 생산지 탐방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허락을 얻고 석우연담 독자를 위해 올리게 되었다. 원고 내용은 가감없이 원본 그대로이다. 다만 이해를 돕고자 사진은 필자가 첨부하였다.

 

떠남이란 늘 약간의 설렘을 동반합니다. 일상에서 잠시 이탈하여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고, 새로운 충전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매년 여러분들과 함께한 차문화 기행이었지만 올해는 봄부터 준비한 일정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연 또 연기되어 6월말에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은 중국 여행..!

준비 과정이 어려우면 진행 또한 어려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김해공항에서 교수님과 오자매님들을 반갑게 만나고 탑승하여 인천공항에서 예전님, 진주님들, 목포님들, 성연님, 차예님, 회자님, 오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다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상하이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상하이 공항에서 저희 가게에 줄 물건을 내리고(아차! 깜박 차창 방문시 줄 선물도 같이 내림) 국내선으로 이동 쿤밍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해발 2000m 고원이자 꽃의 도시 곤명! 중국인들도 평생에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한다는 그곳으로 우리 일행은 머나먼 한국에서 새벽길을 나서서 날아갔습니다. 몇은 졸고, 몇은 설렘에 창밖으로 코박고 있고, 몇은 늘씬한 스튜디어서 구경하고 있고ㅎㅎ.. 세시간여를 지나 드디어 곤명 장수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 규모만큼이나 긴 이동 통로를 지나며 하관에서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금과철마 철병의 광고판을 반갑게 보았습니다. 지난번엔 대성반장 차의 광고가 새겨져 있던 자리입니다. 하관이 지난해부터 새로운 시스템으로 도약하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목격되곤 합니다. 공항에서 광조우에서 진미호와 노동지 업무를 도와주고 있는 김사장부부를 만나고, 버스가 한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여 하관 업무를 도와주고 있는 공부차를 만나서 봉경차장 곤명 사무소를 찾아 갔습니다.


사무실을 북경으로 이사중이라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두명의 차예사들이 나름 정성껏 차를 우려 주었습니다. 대리에서도 12시간을 가야하는 봉경차창을 이번 일정엔 포함 시킬 수 없었지만 지금 현제 전 세계 최고령 차나무로 인정받고 있는 향죽청 차왕수(수령3200년)가 봉경차창 차밭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언젠간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녁은 곤명에서 유명한 버섯요리 (송이버섯 등 온갖 진귀한 버섯을 한꺼번에 넣어 탕으로 우리고 각종 야채와 고기를 사브사브로 익혀먹는 요리)를 먹었습니다. 봉경차창 한국총판을 맡고 계신 예전 사장님께서 한국에 도착하면 홍차를 이번 여행에 참여한 모든 분들께 한통씩 주신다는 고마운 말씀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얼마 전 티벳의 위그루족 칼부림 난동이 있었던 쿤밍역 근처의 호텔에서 장시간의 여장을 풀고 쉬고 있는데 세창흥 차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중국에 오기 전부터 쿤밍에 오게 되면 꼭 한번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에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샘플 차만 주면 한국에서 시음해보고 답변 드리겠다고 했는데, 멀지 않은 곳이라 늦어도 좋으니 꼭 만났으면 한다기에 열두시가 넘어서 강락시장 근처의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여러 가지 차들을 꺼내놓고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는 사장님의 성의에 감탄했지만 바로 와 닿는 차가 없어서 그냥 몇 개 샘플로 사가려고 했는데 굳이 선물로 주셔서 가지고 왔습니다. 한국에서 다시 시음해보니 그때 마셨던 것 보다는 훨씬 나아보여서 구매 고려중입니다. 지나시는 길 있으면 다 같이 다시 시음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 방문 때마다 이처럼 종종 중소 차창에서 연결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격대비 품질이 아주 우수한 경우가 있어도 구입을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십년 후 이십년 후에도 공장이 남아있어야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데 불확실한 시장 상황 속에서 당장 먹을 차라면 모를까 소장, 투자용 차로는 중소 브랜드의 차들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날

아침 8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안녕의 해만차창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탔던 버스가 약간 낡아 보여서 새로운 버스로 바꾸는 과정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바쁜 마음으로 한 시간여를 달려 해만차창에 도착했습니다. 입구가 확장 공사 중이라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환하게 맞이해주시는 추병량대사님의 얼굴을 뵙게되어서 다행스러웠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건강이 좋지 않아서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해만 측의 답변에 근심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올해 나이가 76세이니, 평균 수명이 한국보다 한참 낮은 중국 측에서 보면 장수하시는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이차가 세간에 회자된 이후 한국의 여러 단체에서 초청장을 보냈지만 자신은 그저 차만드는 사람일뿐이라며 정중히 거절하시다가 2012년 저희 석가의 초대에 기꺼이 노구를 이끌고 방문하시어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각종 세미나 및 강연회에 참석하시어 부족한 저희를 한국의 대표 차상으로 키워주신 점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조그만 보답으로 집사람이 보이숙차로 염색한 옷을 선물해드렸는데, 지금도 각종 모임에 참석하실 때면 그 옷 입는 걸 즐기시고 꼭 한국 말씀을 하신답니다. 멀리서 오신 손님이라며 불편한 와중에도 굳이 나오셔서 일행을 맞이해주신 추병량대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 올립니다.

해만차창의 작년 생산량은 1400백 톤이며 중국 전역에 100여개의 1급대리상이 있고 아래로 수백 개의 전문점이 형성되었다는 현황보고를 들어며 어려운 시기에도 추병량대사님을 필두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해만차창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사님과의 간단한 질문 답변 시간을 갖고 차창 견학을 마친 후 저수지 뚝길 건너에 아담하지만 정갈한 식당에서 오골계탕 및 여러 가지 천연 재료로 만든 찬들을 먹었습니다. 음식 맛이 풍경처럼 정갈하고 신선해서 다들 맛있게 먹은 것 같습니다.

해만차창에서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받고 하관차창이 있는 대리를 향해 출발 했습니다.

하관 차창이 있는 운남성 대리(大理)는 남송, 당나라 때 남조, 대리국이 있던 곳입니다. 중원에 당나라가 있던 시절 이곳엔 태족(傣族)과 백족(白族)이 주를 이루어 세운 대리국(大理國BC 937-1252)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지금도 운남성 대리시는 백족자치구에 속해 있음) 왕의 자녀까지 일정 연령이 되면 출가하는 철저한 불교 국가였던 대리국은 군대가 없었으며 혹여 외적이 침입해오면 상인들이 앞장서서 모병을 하고 백성들이 협력하여 외적을 몰아내었다고 합니다.


무협소설 ‘영웅문’으로 유명한 김용의 또 다른 명작 ‘천룡팔부’의 무대가 바로 이곳 대리이기도 한데, 후에 김용이 이곳에 와서 “하관풍, 상관화, 창산설, 이해월(下關風, 上關花, 倉山雪, 洱海月)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하관에서 이 일화를 차용하여 풍,화,설,월이라는 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관차창은 사시사철 창산을 넘어온 깨끗한 바람이 보이차 건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는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하관차창은 공식적으로 1941년에 창립되었으나 실제 제품 생산의 역사는 백년이 넘습니다. 1902년 ‘송학패(松鶴牌)’ 타차가 생산되었는데 하관이 그 역사를 계승하여 지금도 계속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티뱃으로 연결하는 통로인 이곳은 옛날부터 차마고도로 유명한데 지금도 보염패(寶焰牌)란 상표로 티벳쪽으로 꾸준히 수출하고 있습니다.

네 시간 정도를 달려 오후 다섯시 쯤 드디어 대리에 도착했습니다. 유럽의 해안 도시만큼이나 깔끔한 시가지 풍경에 우선 놀라웠고, 해발 2000M고지에 자리한 얼하이(洱海)의 맑고 탁 트인 면적에 놀랐고, 숙소를 물어 도착한 호텔의 웅장한 규모에 놀랐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하관 왕부사장의 영접을 받으며 지난번과 달리 하관측에서 여러 가지로 손님맞이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아서 흡족한 마음으로 잠시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저녁 연회장으로 향했습니다. 대리 최고의 호텔과 연결되어있는 하관차창 전용 매장과 연회장을 둘러보며 대리 지역에서의 하관의 위상을 짐작케 했습니다.

한국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 백족의 전통요리와 하관에서 자체 주문제작한 백주의 잘 숙성된 알콜이 저녁 만찬과 곁들어 지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습니다. 특히 성연님과 하관의 어여쁜 인테리어 담당자와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는 함께하신 분들만의 안복이었습니다...ㅎㅎㅎ

즐겁고도 화려했던 저녁 만찬이 끝나고 모두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저희가 주문 제작하기로 한 제품들의 시음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슬라이드 자료로 잘 정리된 자료와, 하관의 병배 최고책임자의 설명 그리고 일급 다예사 3명이 우려 주는 차는 정성으로는 이미 합격점이었지만 사업은 사업인지라 제삼 제사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진 자리였습니다.

세째날

대리에서 맞이하는 아침 저는 하관 왕부사장과의 한국총판업무관련 회의를 하고, 일행 분들은 하관의 박물관과 공장 내부 견학을 했습니다. 병차와 전차, 타차라인이 따로 구분되어있고 한조가 하루에 생산하는 량은 약 300~500kg 정도라고 합니다.

하관차창에서 대리 공항까지는 얼하이 호수를 돌아 약30분정도의 거리입니다. 제공해준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해발 4000m 창산을 넘어온 맑은 바람과 얼하이의 수려한 풍경에 매료되어 아! 여기서 한 달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대리에서 서쌍판남의 성도인 징홍까지는 약 900km 비행기로는 한 시간이 체 안 되는 거리지만 버스로는 13시간을 달려가야 합니다. 2012년 일행 40여분을 모시고 비행기 티케팅이 안되어 버스로 밤세워 이동한 적이 있습니다. 짓굿은 일행들의 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이동했습니다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추억입니다.ㅎㅎ

징홍 공항에 도착하니 대리보다는 약간 후덥지근합니다. 해발 고도의 차이로 느껴지는 기온의 차이가 제법 큽니다. 맹해에서도 차산은 시원한편이지만 시내는 아열대 특유의 다습함이 있습니다. 진미호 고객담당 경리의 영접을 받으며 이무까지의 일정이 만만치 않아 간단하게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언젠가 징홍 시내에 있는 유일한 한국 식당인 그곳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배달도 가능하다기에 급할때면 종종 이용하고 있습니다. 대충 서서 먹는 불편한 자리였지만 며칠만에 맛보는 한국 음식이라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진미호측에서 준비한 녹색버스(19인승 차산 탐방용으로 좋음. 짐은 따로 진미호 차량에 실어 호텔로 이동함)에 올라 이무로 향하였습니다.

남나산 차산

란창강 좌우로 분포해 있는 고육대차산과 신육대차산을 가로지르며 이무까지 약 세 시간 곳곳에 ‘식물왕국’이란 팻말이 보입니다. 맹해에서 이무가는길 중간쯤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대식물원이 있습니다. 연 평균기온이 21도 전후이고 강수량이 풍부한 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열대림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900여 핵타르에 달하는 면적에 4000여종의 희귀식물들이 재배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선 일정이 빠듯하여 둘러볼 시간이 없었지만 북회귀선상의 푸른 보석지대로 알려진 이곳을 지나는 길엔 꼭 한번 들러볼만합니다.

 

길을 따라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산비탈엔 주로 바나나와 고무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청나라 때 이무의 차가 황실에 공품으로 지정되었던 시절에 이곳은 아마도 전부 차밭이었을 것입니다. 청일전쟁이후 관리를 하지 않아 황패해졌던 차밭은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경제작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타민 공급원으로서 차가 생명과 직결된 티벳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먹거리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에 차는 그저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차밭을 찾아 오지로 들어가면 새까맣게 거스른 주전자를 숯불에서 꺼내어 주변의 빈 그릇에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따라주는 토착민들의 정겨운 눈을 만나곤 합니다.

징홍에서 두 시간 정도를 달리면 이무 초입입니다. 여기서부터 꼬불꼬불한 오르막 산길을 삼십분을 올라가면 ‘이무향’이라는 대문간판을 만납니다. 잠시 내려서 기념 촬영을 하고 ‘마흑,을 지나 ’낙수동’에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는 이무천년 고차수를 친견합니다. 세월의 격랑속에 이무 길가의 고차수들은 거의 사라지고 아직도 남은 이무지역 고차수를 보려면 몇 시간씩 산을 올라야합니다. 백년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는 전부 고차수 밭이었을 겁니다. 보이차의 전성기로 알려진 청나라 시절에 이무 지역 보이차 생산량이 지금의 몇 배나 되었다고 합니다.

인구 비례로 따져보면 가히 엄청난 량이 생산 소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진미호 낙수동 초재소에 들러 간단히 올해 생산된 낙수동 고수차의 향을 음미 했습니다. 마침 집을 수리중이라서 차마을의 운치는 덜했지만 손녀뻘 되어 보이는 꼬맹이의 해맑은 눈망울이 일행을 반겨주었습니다. 이무고진으로 이동하여 차마고도 출발점이라는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잠시 머물며, 5000 ~ 8000km북경으로 티벳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동했었던 마방들의 고달팟을 생애를 반추 해 보았습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복원창, 동흥호, 차순호 등 청나라 때의 보이명가를 둘러봅니다. 지금은 유력 차창의 홍보 공간으로 내지는 탐방객들에게 기념품 정도로 몇 편씩 생산 판매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덩그러니 몇 그루 남은 이무의 고차수들과  쓰러져 가는 이무 고택을 바라보며 잠시 세월의 무상함도 함께 느낍니다. 이무 탐방을 마치고 맹해로 돌아가는 길 모두들 아침부터의 강행군에 지쳐서인지 불편한 좌석 흔들리는 차 안이었지만 대부분 주무십니다.(심지어 코를 고시는 분도...ㅎㅎ)


운남에 내리는 비는 맑습니다.

찻잎을 스친 빗방울이 원시림 속에 물길을 만들어

란창강을 돌아 들녘을 적시고

강아지 . 도야지 . 병아리 더불어 사람이 삽니다.

이무고진 소학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여전하고

주인모를 짐승들이 한가로이

아스팔트를 산책합니다.

때 되면 돌아가 주인이 남긴 음식을 먹고

때 되면 몸을 남겨 주인을 먹입니다.

언젠가 이무를 다녀오면서 남긴 부끄러운 글입니다. 빠름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갑자기 느림 속으로 들어가면 잠시 답답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처음 중국을 다닐 때 도대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이 나라의 정체성에 많이 혼돈스러웠습니다. 신용을 담보로 사업을 하는 저로서는 몇 번 손님들과의 약속 때문에 애를 태우다가, 느리지만 결국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행동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 점점 나도 느긋해지는? 경향으로 변한 것 같은 생각입니다. 때론 급할 것도 없는데 괜히 서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한 숨 되돌려보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자연은 결코 서둘지도 조급하지도 않습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이 피고, 지고, 또 열매를 맺습니다. 차산을 다니며 자연의 순리에 모든 걸 맡겨버리고 훌훌 날고 싶은 갈망들을 옮겨 보았습니다.


이무에서 맹해까지 약 세 시간 반 늦었지만 맹해차창을 들러 입구에서 간단히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작년 가을에 갔을 때도 박물관등의 수리 때문에 참관을 못했는데 아직까지 수리중입니다. 역시 중국스럽다는 생각.... 올 가을엔 꼭 완공 한다지만 그때 가봐야 압니다.ㅎㅎ


넷째날

아침 여덟시 진미호에서 제공해준 산악용 차량 네 대에 일행이 나누어 타고 포랑산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가는 길에 노반장으로 유명해진 진승차창에 들러 간단히 올해 생산된 차들을 시음 했습니다. 저희가 2009년부터 12년까지 한국총판을 했던터라 모두 익숙한 얼굴들입니다. 2008년에 시작된 진승의 역사는 비록 6년에 불과하지만 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진승하 창장(진승의 회장 지금은 아들이 창장을 맡고 있음)이 포랑산 꼭대기 마을 노반장 고수차밭에 독점 투자하고 도로를 새로 건설하면서부터 불기 시장한 고수차 열풍은 단순히 노차와 신차로 분류되던 차시장의 흐름을 고수차와 대지차로 새롭게 분리시켰습니다.


나아가 고수노차, 고수신차, 고수병배차, 고수단미차 ,고수숙차 등으로 의미를 확장시켰습니다. 2010년 저희가 진승하 회장을 한국에 초청하여 부산대학교, 백스코 등에서 강연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진승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진승 제품을 공식적으로 취급하지 않지만, 한국 방문시 해운대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을 기우리며 생선을 직접 골라 썰고 구우며 이 부위가 맛있다며! 옛날 호텔 경영을 하며 익힌 노하우들을 알려주시던 진승하 회장의 호탕 소탈한 성품과 인간적인 면모들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맹해에서 20분여를 달리면 포랑산 초입입니다. 길고도 넓게 펼쳐진 평야를 가로질러 산길로 접어드는데 이모작이 가능한 지역이라 벌써 벼가 누렇게 익었습니다. 한국인의 근면성과 부지런함이라면 이곳에서 부자 되는 건 시간문제겠다는 얘기들을 하십니다. 이렇게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강수량이라면 무엇이던 심고 가꾸면 다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길로 접어든지 20분정도 길량입니다. 이 지역은 고수차와 소수차가 혼재되어있어 순료 고수차를 구하기 어려워 진미호 차품으로는 생산하지 않는다는 진미호 구대표의 얘기가 언뜻 떠오릅니다. 지역 촌민들은 고수차와 소수차가 혼재되어있는 차밭에서 고수차만 분리해서 구매하겠다는 진미호 측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촌민들의 입장에서 다른 차창에서는 구분하지 않아도 구매하는데 그럴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할 수없이 구대표는 ‘진덕차업유한공사’를 따로 설립하여 소수차를 따로 분리하여 모차로 팔거나, 진미호 로고가 새겨진 차가 아닌 비교적 저렴한 차의 주문 제작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량을 지나 만난, 포랑향으로 가는 길 원시림 속에 조그마한 오솔길처럼 난 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절경입니다. 상큼 달콤한 공기를 그대로 씹어 꿀덕 꿀덕 삼킵니다. 차를 타고 달리지만 삼림욕을 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포랑산 고수차

정오를 지나 포랑향에 도착했습니다. 정상 부근에 자리한 포랑향은 포랑산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한국으로 보면 면 소재지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작지만 슈퍼마켓도 있고 식당도 제법 몇 군데 눈에 뜨입니다. 전망 좋은 자리에 식당을 잡고 쓰레트로 얼기설기 엮은 지붕아래 산골 시장이 열렸습니다. 손수 재배한 채소들과 약초들 그리고 갓 잡은 짐승들의 사지가 이리 저러 널부러저 있습니다. 다소 흉물스러울 수도 있지만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스스럼이 없습니다. 꾀죄죄한 도마에 무디어 보이는 칼로 툭툭 처서 비닐봉지에 담아 줍니다.

 

야생에서 자라다시피한 오골계 탕에 각종 산나물들이 곁들어진 점심을 맛있게 먹고 신반장을 지나 노만아로 접어듭니다. 흡사 우리나라의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연상케 하듯 온통 공사판입니다. 고수차 가격의 폭등으로 인한 토착민들의 소득 상승에 기인하겠지만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나무기둥에 조각기와를 올리거나 갈대로 이은 고즈넉한 옛 촌락의 아취는 사라지고 시멘트 기둥에 파란 지붕으로 일괄개량입니다. 지나는 사람 보기 좋으라고 무조건 옛것을 지키라고 할 순 없지만 좀 더 멀리 바라보고 차밭과 어우러지는 산촌의 행정적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마을을 뛰어 노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여전이 초롱초롱합니다. 지붕을 유리로 덮어 새로운 아이디어로 건설 중인 진미호 노만아 초재소로 걸어가면서 공사용으로 쌓아 놓은 모래톱위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천진무구한 표정은 여실히 들어납니다. 사탕을 하나 주니 말갛게 웃습니다. 새하얀 치아가 햇볕에 반짝입니다.


한 시간여 다시 흙탕길을 달려 드디어 노반장입니다. 마을 입구에 노반장이라는 대문 간판이 세워져 있고 바로 곁에는 진승차창에서 세운듯한 촌민들과 진승 식구들의 사진을 합성한 대형 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은행?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 산골짜기에 웬 은행인가 잠시 의아해 하다가 현재 노반장의 가구수는 126가구 정도인데 촌민들의 가구당 년 소득이 사억을 상회 한다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의 신반장, 노만아, 방분채, 허카이등의 가구까지 합친다면 고차수로인한 촌민들의 년 소득은 상상을 띄어 넘을 것 같습니다. 고수차 열풍이 광풍이 되어 오솔길과 촌민들의 지붕을 날려버리더니 머지않아 차산마져 삼켜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노반장 최고령수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차왕수’ 와 ‘여왕수’를 친견하고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마치 논란과 화제의 중심점에 도달한 느낌입니다. 경제원리로 보건데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차수의 개체수는 한정되어 있고 힐링의 가치는 날로 높아가는 시대에 순료 고수차의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어서 바람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

허카이 지방정부 4호 보로수

방분채를 지나 허카이에 도착했습니다. 군데군데 새롭게 조성한 차밭들도 보입니다. 육 칠십년대 문화혁명 시기는 타율적 경제작물로의 전환기였다면 지금은 자율적 전환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허카이 지방정부 4호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는 800년 고차수 바로 옆에 진미호 초재소가 있습니다. 해마다 4호 ‘단주’ 차라며 진미호 구대표가 조금씩 선물로 주는 차를 시음하고 있습니다. ‘보호수’ ‘천년 고차수’라고해서 다른 고차수에 비하여 특별한 향과 맛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희소가치에 의한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있다 할 순 있겠지요! 고차수의 향과 운치는 그 자체로 정말 특별하고 황홀합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차는 역시 차일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만병을 통치하는 약도 아니며, 신선이 마시는 음료도 아닙니다. 억만금을 벌어주는 재산 가치는 더더욱 아닐 것 입니다. 혹여 차업을 하는 저 자신이 광풍에 휩쓸려 본질을 망각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초재소 찬간에서 주변의 산나물과 마당에서 자란 날짐승을 요리해서 저녁을 차렸습니다. 재작년에 40여명의 한국 손님을 모시고 왔을 때 여기 이 자리 산꼭대기 초재소 잔디 깔린 마당에 전선을 연결하여 어둠을 밝혔습니다. 운남산 고급 와인에 그라스까지 챙겨 각종 야생화로 테이블 세팅을 하고 연이은 건배와 숯불 바비큐로 무르익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로서는 함께 했던 일행들과 평생 기억에 남을 만찬이었는데, 이번엔 일정상 간단히 준비한 저녁이었지만 정성스러운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저녁 여덟시 쯤 진미호 차창에 도착했습니다. 웅장하고 고풍스러우면서도 날렵한 차창입구에 ‘한국차우들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뜻의 플랜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하관에서도 그랬지만 중국인들은 환영의 표시로 플랜카드 걸기를 좋아 합니다. 은근히 먼 한국에서도 우리차창을 방문한다는 자랑을 하고 싶은 간지러운 속내도 살짝 비칩니다.ㅎㅎ


진미호는 2006년 구명충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군인 출신인 구대표는 처음 여러 가지 난관을 겪어 왔지만 맨 먼저 시작한 일이 촌민과의 유대 관계 구축이었습니다. 각 지역 산채를 일일이 방문하여 그들과 뒹굴다시피 살면서 형님 동생의 연을 맺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모차 장사를 시작했고, 조금씩 좋은 원료를 확보하여 진미호 차를 생산, 출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각종 투차대회(시음회)를 통해 차품을 인정받아 마니아층이 형성되었고,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저희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2011년 저희가 본격적으로 진미호에 투자하면서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쌍판납 아홉 개 명산의 정선된 고수차 원료와, 백프로 석모 긴압, 위조 방지를 위한 절편 내비, 경면주사로 찍은 제품표시, 풀어 헤칠수록 느껴지는 포장의 정성 등 진미호의 장점은 아주 많습니다. 무엇보다 진미호 구명충대표는 사람에 투자하자는 저의 신념에 걸맞는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동안 진미호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숙원 사업은 자체 생산 공장의 구축이었습니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자금 사정 때문에 미루고 있었는데 작년에 마오타이주 원료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인 아중이라는 분이 진미호에 거금을 투자하면서 마침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것도 운남의 보이차창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치 공원처럼 조성된 대규모의 차창입니다. 이번 대리상 회의 때 현판식도 같이 했는데, 진미호차창 간판을 걸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구대표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해마다 진미호 차의 출시 가격은 그해의 모차 수매 가격의 인상 분 만큼만 반영합니다. 공장도 이렇게 커지고 종업원도 늘었는데, 운영비를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저의 우려석인 물음에 “그래도 손해 보진 않아요!” 하고 씩 웃습니다 ..

모차 가격이 너무 올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좋은 차 못 사 먹을까봐 늘 걱정이라는 구대표의 마음 씀씀이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구대표은 해마다 봄차 출하가 끝나면 중국의 각 지역 대리상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여러 가지 문제점이나 개선 방향등을 취합하곤 합니다. 이번에도 직접 차를 몰고 빼이징까지 도착해 있을 때 우리 일행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비행기로 돌아 왔다고 합니다. 의례 있으리라 짐작하고 미리 연락 못한게 미안해서 그냥 다녀가겠다고 했는데도 멀리 한국에서 온 손님을 인사도 못하고 보낼 수 없다며 날아와 준 구대표에게서 중국 특유의 꽌시(관계 또는 의리)를 다시금 느끼고 새깁니다.


물론 진미호가 갑자기 너무도 화려하고 큰 날개를 단 형국이라 처음엔 다소 힘에 부치리라 예상합니다만 조만간 고수 보이차 업계의 진정한 리더가 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다섯째날

어제 저녁 일행님들의 여러 가지 좋은 질문과 구대표의 성실하면서도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답변으로 일정이 늦어젔어나 아쉬움이 남아 다음날 오전에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시작이라 견제 세력들이 별로 없을 수 있지만 앞으로 진미호가 크면 클수록 품질유지 측면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 할 수 있는데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진미호는 언제든 수면 아래에 두겠다고 합니다. 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의 표현으로 들렸는데, 태풍이 불어 강물이 넘처나도 바위처럼 꼼짝않고 진미호를 진정으로 믿고 구매해주는 다우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구대표의 다짐을 들으며 단순한 사업가를 넘어 진정 차를 사랑하는 차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11시쯤 일행 각자의 이름이 내비에 새겨진 진미호 차를 한편씩 선물로 받고 차창을 출발하여 징홍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내심 정말 하늘이 도운 여행이구나 싶었습니다. 십여년 운남을 다녔지만 이번처럼 포랑산의 알려진 모든 지역을 한번에 돌아 본적은 없었습니다. 날씨가 조금만 나빠도 특히 신반장 노반장 길은 오르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함께한 일행님들의 복일 것입니다. 또다시 김밥입니다.ㅎㅎ 머나먼 구름의 남쪽에서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평소 같으면 생각지도 않았을 일들을 여행을 통해 우리는 가끔 경험합니다. 공항 대기실 귀퉁이에서 눈치 봐 가며 후딱후딱 김밥을 삼킵니다. 서로 마주보며 밥알을 튕기며 웃습니다.ㅎㅎ


징홍에서 곤명을 경유하여 남경까지는 비행기로 약 세시간 반정도 거리입니다. 이 구간은 딜레이가 잦은 지역이라 특히 단체 손님을 모실 땐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한번 일정이 틀어지면 다음의 모든 일정들을 다시 조정해야 되기 때문에 티케팅 문제 등 여러 가지 난관에 부닥치게 됩니다.

다행이 이번 여행은 일정 내내 순조로워 정시에 남경에 도착하여 의흥을 안내할 최선생을 만났습니다. 자사호 수집 전문가로 알려진 최선생을 우연히 알게되어 이번 일정 안내를 부탁드렸습니다.


남경에서 의흥까지 버스로 약 한시간! 버스에 오르자마자 최선생의 열정적인 자사호 예찬론이 솟아집니다. 순간 약간은 뜨악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정에 참여한 님들에게 괜한 부담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멀리서 오신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자기가 알고 있는 의흥의 자사 제작 친구들을 소개하고, 더불어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는 최선생의 순수한 의도를 모르지 않지만, 오히려 장사꾼이 아니기에 덜 세련된 어투들이 듣기 나름으로는 삼류 약장수의 멘트 같아서 ㅎㅎ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최선생의 철저한? 준비 덕분에 일정을 알차게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의흥 시내에 새로 생긴 5성급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여섯째날

아침 8시 호텔을 출발하여 북송시대 소동파가 유생들을 가르쳤던 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동파서원 둘러보고, 시내에서 그리 멀지않은 황룡산으로 갔습니다. 칠 팔십년대 왕성했을 자사 광석 채굴 현장은 거대한 연못으로 변해 있습니다. 지금은 자원보호 차원에서 채굴이 금지 되었지만 이미 채굴하여 노적되어 있는 량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사박물관으로 이동하여 박물관 부속 건물에 작업장을 가지고 있는 허시연(국가급공예미술사)작가의 안내를 받으며 각층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는 명작들을 감상하였습니다. 올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전시되어 있는 모든 작품들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 시대적 가치로서의 작품이 있고 최근 작품이지만 정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국가급 대사의 작품에서부터 조리 공예사의 작품까지 차업을 하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났습니다. 때론 직급에 짖눌린 생각 때론 형태에, 니료에 천착하면서 과연 실용을 넘어 예술로서의 자사호는 어떤 것인지 아직도 깜깜합니다. 그저 이름에 끄달리지 말고 적당한 니료에 원만한 형태를 갖춘 호를 골라서 내가 아끼고 다듬은 세월이 나만의 명품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우리가 묵었던 호텔로 갔습니다. 단체로 움직일 땐 시간 관계로 여러 곳을 방문하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나기 위해 호텔 전시실에 허시연, 왕안봉, 주건표 작가등 6명의 작가들이 작은 전시회 겸 시연 발표회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한 곳에서 여러 작가들의 면면과 작품을 둘러보고 제작 과정까지 볼 수 있어서 뜻 깊은 자리였다고 생각됩니다. 프로가 아니기에 다소 서툴렀지만 우연찮은 인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저희를 안내해준 최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일곱째날

어제 저녁 상하이에 도착하여 일부는 발마사지로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 일부는 호텔 근처의 야외 꼬지 집에서 맥주를 나누며 늦게까지 그동안의 소감과 회포를 나누었습니다. 다음날 홍교 공항 근처의 고완성에 있는 저희 중국 가게에 들러 주변의 각종 골동 상품들을 감상하고 상하이 가게 형님의 횟집에서 여행 마지막 오찬을 나누었습니다. 일정을 마무리 할 때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행이 이번 일정은 날씨가 좋아서 계획한 거의 모든 일정을 소화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즐거이 일정을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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