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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08 73청병은 80년대 생산된 차가 아니다 (13)

 

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오늘날 인급 호급차를 제외하면 보이차 매니아에게는 아주 고급차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가격 또한 인기만큼 높다. 그런데 이 차의 출생을 두고 여러 말이 분분하다. 73청병이라는 이름을 두고 연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이들이 여러모로 말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현재 일부에서는 80년대차라고 하는 추측과 확신이 어우러진 상태이다. 여기에 김 경우 씨는 정식으로 반박하는 입장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김경우 씨의 논거에 보편적인 동의를 하고 실제 제작 연도에 대해서는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김경우씨가 정리한 자료를 석우연담에 올린다. - <석우>

 

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홍콩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이며 대만 옥호헌(玉壺軒)에서 통째로 매입하여 유통한 차이다. 옥호헌에서 수입한 차는 7542(501)이라고 한다. 다음은 옥호헌 대표 황슬금(黃瑟琴, 72)씨의 구술 내용이다. “1973년 가계 오픈 후 처음에는 자사호를 수입하여 싱가포르, 태국 등지를 역 수출하는 영업을 하였다. 자사호 때문에 중국 의흥을 가기위해 늘 홍콩을 경유하였다. 1980년을 전후하여 홍콩을 드나들 때 당시 대만은 오룡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후 발효차인 보이차가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당시는 오래된 호급이나 인급의 보이차가 창고에서 나오기 전이였기 때문에 홍콩에서는 주로 10년 전후의 세월이 지나 약간의 발효가 진행된 생차 내지는 숙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1980년 무렵부터 조금씩 가져다가 판매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8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날 의안차장에 있는 7542(501)가 눈에 들어왔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돈과 친구에게 빌린 돈을 합쳐 2000천만원(대만돈)을 투자하여 7542(501)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수입할 당시 자료가 부족하여 홍콩에서도 정확한 연도는 몰라 본인 생각과 홍콩 의안차창에서의 말을 종합하여 70년대 초반차라는 결론을 내리고 단순한 생각에서 생차 계통이니 73청병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현재 시중에서는 73청병의 생산 연대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한 때 73청병이 싸여진 바닥에 신문지가 있었는데 신문지의 날짜가 민국 73(서기 연도로는 플러스 11년을 하면 됨)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기 1984년 생산 된 차로 언급되면서 인터넷이나 단행본에서 1984년 생산된 차로 사실로 기정사실화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왜곡된 정보이다. 황슬금씨의 구술에 의하면 신문지와 민국 73년이란 말은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알 순 없으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라고 한다.

 

73청병은 대만 옥호헌에서 홍콩의 의안차창에서 나온 차를 수입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부산의 녹백다장에서 수입하였다. 녹백다장 최윤석 대표의 구술에 의하면 “73청병을 수입하기 위해 통표를 살펴보니 7542(503)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73청병은 7542(503)이며 최윤석 대표는 73청병의 발음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073청병(공칠삼청병) 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영남지역에서는 73청병을 073청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73청병을 1975년에 만든 차로 추정하는 이유로는 황슬금 대표와 최윤석 대표의 구술 내용뿐만 아니라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근거에 의해서이다.

 

내비에 표기된 글씨가 이를 뒷받침한다. 맹해차창에서 생산 된 차의 내비에는 서쌍판납태족자치주 맹해차창출품(西双版納傣族自治州 勐海茶廠出品)이라고 표기되어져 있다. 여기에서 출()자의 위쪽의 산()자가 아래쪽의 산()자 보다 좁아 뾰족하다. 이런 출자를 우리는 첨출(尖出)이라고 한다. 첨출 내비는 1970년대 생산된 차에서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위쪽의 산()자와 아래쪽의 산()자의 넓이가 같은 것을 평출(平出)이라고 하며 평출내비는 1980년대 이후 생산된 차에서 나타난다.

 

종이질감이 1970년대에 사용된 격문지(格紋紙)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격문지로 포장한 보이차의 종류가 없다.

포장지 중앙의 녹색 차()자의 인쇄 방법이 도장으로 직접 찍은 수인이다. 이렇게 직접 자를 수인으로 찍는 방법은 1980년대 차에선 볼 수 없고 오로지 1970년대에 생산된 차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73청병을 1986~1987년 무렵에 수입하였다. 당시 보이차는 10년 정도 발효된 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고 황슬금 대표 역시 이런 종류의 차를 선택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975년에 생산 된 7542(501)인 것이다. 하지만 큰돈을 투자하면서 1984년에 만든 차라면 만든 지 2~3년 밖에 안 된 차를 10년 이상 된 차와 구분하지 못하여 수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몇 가지 사실들을 근거로 73청병의 생산 연대는 1975년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7542로서는 최초로 생산된 차에 속하며 1975년 이후 7542는 계속해서 생산 되었을 것이다.

73청병은 홍콩의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로서 다른 차에 비해 높은 습도에서 보관된 차이다. 그러다보니 차에 따라 습기에 노출된 편차가 큰 차이다. 의안차장의 보관창고는 홍콩에서도 대표적으로 습도가 높은 창고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보관이 양호한 차와 습기에 노출된 차의 편차가 크고 바닥에 눌러져 있든 차는 매변이 심하게 발생한 차도 있다. -<끝>

 

1970~1980년대 생산 된 차들 대부분은 홍콩 보관창고에서 입창이 된 차들이다. 다만 입창의 정도에 따라 습기에 노출 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73청병은 대표적으로 입창이 강하게 된 차이다. 그래서 인지 습기에 노출된 차들이 많고 병면이 깨끗한 차들은 드물다. 습기에 노출됐더라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하게 거풍이 된 차는 농익은 맛으로 마시기에 편안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보관이 양호하고 병면이 깨끗한 차만 건창차로 인정되며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시장 질서이다. 체질에 따라서 마셔야 될 차가 다르고 선호하는 차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다는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10일 황슬금 대표와 김경우 대표

 

현재 보이차가 역 수출 되는 시점에서 가격 형성으로 본다면 73청병은 대표적으로 1970년대에 생산된 차가 분명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저평가된 차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현재 보이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중국 유통상인들의 이해 부족과 73청병을 마셔보지 못해 객관적으로 품질대비 가격을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접 마셔 본다면 동일한 연대에 생산 된 다른 종류의 차 보다 맛이 절대 뒤떨어지진 않고 오히려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에 따라 품질대비 가격 평가를 제대로 못하는 현실 속에서 다른 종류의 차에 비해 평가 절하된 안타까운 차이다.

 

73청병의 병면 외형 찻잎을 살펴보면 1980년대에 생산된 7542 계열의 차보다 찻잎의 크기가 작다. 오히려 7532 계열의 차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는 숫자급 보이차의 병배방식을 1974년부터 만들어 적용하였지만 생산 초창기이다 보니 기술적으로 완성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차의 무게와 찻잎의 크기가 7542라고 보기에는 작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 생산 된 7432, 7452, 7542, 7572, 7582 등등에서 대부분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며 찻잎의 크기에서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생산 10년을 전후하여 홍콩으로 들어 온 차[보이 생차, 숙차]들은 위 말처럼 당시 대만의 주요 차류로 인정받고 시장에서 판매가 되었던 것이며 그 중에서 80년 중반의 시기에 들어와 있던 7542(501)가 연도를 따져 73청병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니 지금 시중에 퍼져 있는 80년대 차라는 인식은 충분히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옥호헌 대표의 구술 내용처럼 직접적인 판매상의 증언이 있는 기록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김경우 씨의 보이차 관련 지난 기사

2015/03/25 - [인터뷰] 골동 보이차 유통의 전문가 김경우

2015/02/15 - 다미향담(155) 73청병과 97년 7542를 함께 즐기다

2015/02/02 - 다미향담(152) 황인 숙차와 1990년대 맹고의 조합

2014/02/20 - 대익보이차 영웅준마 런칭

2014/01/18 - 중국 대익보이차 서울 여의도점 오픈

2010/09/17 - 다미향담(2) 맛으로 승부하는 차

2010/08/09 - 말복에 마신 보이차와 오동단총

2010/04/15 - 혜산초당에서 만난 김경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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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보이맨  수정/삭제  댓글쓰기

    73청병에 대한 종결판을 본 것 같습니다. 예민한 사안임에도 용기있게 발표해 주신 김경우 대표에 감사드리며 석우연담 독자로서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2015.04.10 11:30 신고
    • Favicon of http://seoku.com BlogIcon 석우(石愚)  수정/삭제

      보이차에 대해서는 원천적인 자료가 중국에 있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자료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큰 거래를 하면서 뒷이야기를 듣게 되고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논거에 힘이 실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가까이에서 그런 점을 확인하고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2015.04.11 11:40 신고
  2. BlogIcon 무지개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간과하는 유통의 역사를 짚은 글이어서 공감이 됩니다.
    생산지인 중국도 중요하지만 소비와 유통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홍콩과 대만을 지나쳐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이런 뒷이야기들을 더 많이 취재,발굴하여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15.04.11 19:12 신고
  3. BlogIcon 하늘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비자로서 73청병이 어떤 진실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하는 상인에게 저는 한표 던집니다

    2015.04.12 11:01 신고
  4. BlogIcon 다담  수정/삭제  댓글쓰기

    73청병이 70년대 차인가?
    ①첨출 내비는 1970년대 생산된 차에서만 보이는 특징이 있다. --- 첨출내비가 80년대 차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석우님 글에도 있습니다.

    중국 보이차 포장의 특징이라는 글중에 尖出、平出 첨출,평출 : 맹해차창의 차품 내비에 "서쌍판납 태족자치구 맹해차창 출품"이라 적혀 있는데,
    출(出)자중 위와 아래 山자의 크기가 같으면 평출, 위의 산자가 작으면 첨출이라 한다.
    첨출은 조기 맹해 차창의 차품 특징으로 칠자황인부터 73청병이 모두 첨출로 기간은 1973~80년대 중기까지이며 후에 2001년부터 차상인들의 주문제품시 다시 출현하였다.

    ② 종이질감이 1970년대에 사용된 격문지(格紋紙)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격문지로 포장한 보이차의 종류가 없다.--- 격문지 80년대 차에서도 존재를 합니다.

    ③ 포장지 중앙의 녹색 차(茶)자의 인쇄 방법이 도장으로 직접 찍은 수인이다.
    이렇게 직접 茶자를 수인으로 찍는 방법은 1980년대 차에선 볼 수 없고 오로지 1970년대에 생산된 차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수인도 80년대 차에서도 존재합니다.

    ④ 마지막으로 73청병을 1986~1987년 무렵에 수입하였다.
    당시 보이차는 10년 정도 발효된 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고 황슬금 대표 역시 이런 종류의 차를 선택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975년에 생산 된 7542(501)인 것이다.
    하지만 큰돈을 투자하면서 1984년에 만든 차라면 만든 지 2~3년 밖에 안 된 차를 10년 이상 된 차와 구분하지 못하여 수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1,2,3번은 사실적인 근거로 가능하지만 4번은 단순 추측일뿐입니다. 73청병이 최초의 건창보관차라는 이름으로 고가에 팔았다는 사실도 생각을 해봐야 하구요.
    상인이 자신의 차를 년도를 속여 늘리는 경우는 허다해도 줄이는 경우는 희박합니다. 바로 돈과 연관이 되기때문이죠..이것 또한 저의 생각일뿐입니다.

    한가지씩 해당하는 차품은 많이 존재합니다. 3가지 모두 해당하는 80년대 차품을 하나들자면
    진지동의 책중에 80년대 청병 가운데-격자문 포장지-수공개인-첨출자-3가지 요건을 충족하는차 = 칠자소녹인 소비표준판이라는 차가 있습니다.

    2015.04.14 14:04 신고
    • 초정 김경우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다담님!
      저는 보이차 유통을 하는 서울 "명가원"의 김경우 입니다. 다담님이 아닌 일부에서는 제가 73청병을 팔기 위해서 글을 쓴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셔서 말씀 드립니다.
      제가 보이차 유통을 하지만 저는 73청병을 단 한편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73청병을 띄우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글을 쓰겠습니다.

      1번에 대한 답변은 석우연담에 80년대에도 첨출 내비가 있다는 부분은 각자의 견해이기
      하지만 첨출내비의 거의 대부분은 70년대 차임을 전문 유통인들은 인정을 합니다..
      이부분은 아래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2번에 대한 답변은 격문지는 80년대 차에서도 존재하지만 73청병에서 보이는 70년대 차의 격문지와는 종이질감에서 차이가 나며 다릅니다.(이야말로 많은 유통의 경험이 뒷받침된…)

      3번에 대한 답변은 80년대 차에서 보이는 수인과 73청병에서 보이는 수인은 엄연히 다릅니다. 73청병 수인의 특징은 차자 바깥쪽에 사각형의 테두리가 있습니다. 이점이 80년대 수인과의 차이점입니다.

      4번에 대한 답변은 단순 추측이지만 이것보다 정확한 고증은 없겟지요. 더 정확한 고증이라면 맹해차창에서 73청병에 대한 생산 기록이 있으면 누구나 인정할수 밖에 없지만 아쉽게도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또 한가지 85년 전후에 생산된 차 중에서 73청병과 엇비슷하게 발효된 차가 없습니다. 저는 유통을 하면서 많은 차를 보고 마셔봤지만 단 한가지라도 85년 전후에 생산된 차 중에서 73청병과 견줄 수 있게 발효된 차를 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결론에 대한 답변은 진지동 저 심수적칠자세계에 의하면 80년대 첨출내비로 표기된 차는 말씀하신 칠자소녹인 소비표준판은 80년대 초기로 표기되어 있지만 종이재질이나 병면 상태 차의 맛으로 보아 앞페이지에서 언급하는 70년대 차와 동일한 시기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통표에서도 503으로 되어 있는데 그럼 다담님이 생각하시는 1985년 생산품이 되는데 앞페이지에서 소개된 중비표준판도 1985년 차로 표기되거나 80년대 초기로 표기되어야 일관성이 있을것입니다. 또한 503으로 표시되어져 있으니 1975년 생산품 아니면 1985년 생산품이 되는데 실제 차 연도 소개에서는 80년대 초기로 되어 있다는 것은 오류라는 증거입니다.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때는 85년은 초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수적칠자세계에 의하면 80년대 중반까지 첨출내비로 표기된 차는 7572 소구중 두 종류입니다. 두 종류는 80년대 초기 중기로 표기되어 졌지만 이 또한 80년대 차라고 단정 내릴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당시 맹해차창에서 생산직후 바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합니다. 당시는 크게 차가 팔리지 않은 시기인지라 차를 생산하였지만 바로 포장하지 않고 이후에 포장한 차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차로 황인 계열에서 팔중황인(녹자황인, 팔중황인은 60년대 말 모차로 70년대 초반에 긴압한 차로 알고 있습니다.)도 예가 됩니다. 또한 온전한 한통속에 7572를 해체하면 대구중과 소구중이 섞여 있다는 것은 7572를 만져본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대구중은 70년대 말 차로 소구중은 80년대 차로 알려졌지만 한통속에 두 가지가 섞여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홍콩에서 재포장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맹해차창에서 처음부터 섞어서 포장했을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지동저 심수적칠자세계에 표기된 80년대 초기 소구중 7572 첨출내비는 제다법이 조수발효 시킨 차입니다. 조수발효시킨 차는 80년대 차 중에서는 이 한 종류 밖에 없습니다. 이 점이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80년대 초기 중기로 소개된 7572지만 70년대 차로 추정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을 말씀 드리면 지난달에 진지동씨와 인터뷰 하면서 본인이 했던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온지가 2005년도이다. 당시 자료가 부족했던 시기인지라 일부 오류가 있다는 점 본인이 알고 있다. 그리고 심수적칠자세계에 나오는 차를 모두 마셔본 후 결론에 따라 연도가 표기되지 않았기에 오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심수적칠자세계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차가 자신이 소장한 차가 아니기에 연도에 대한 정확한 검증은 할 수 없었다는 점 등이 서로의 대화 내용이였습니다.

      심수적칠자세계의 오류 한가지를 더 예로 들겠습니다. 심수적칠자세계 184p 칠자황인대병은 1950년대 차로 표기 되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포장지 상단에는 "운남칠자병차" 하단에는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로 표기되어져 있습니다. 이 차는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로 회사 명칭이 바뀐 1972년 이후로 봐야 맞지 않을까요?

      책을 저술하면서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류에 관한 부분을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대만이나 중국에서는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검증하지 못하고 우리 나름대로의 소신이 없다는 점이 늘 보이차를 접하면서 아쉽게 생각합니다.(참고로 90년 이전의 차를 가장 많이 소비하며 마신 나라는 한국입니다.)

      제 생각과는 견해 차이가 있는듯 하여 짧은 식견으로 몇 자 적어 보았으나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5.04.15 10:25 신고
    • 다담  수정/삭제

      김경우님 반갑습니다.
      먼저 기존의 널리 인정되는 내용도 틀린게 많다는 부분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이시라면 좀 더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어야만 기존 설을 덮을 수가 있다 봅니다.

      댓글 내용을 보면 객관적인 내용이라기 보기 어려운 부분들입니다.
      저도 주변에 10년, 20년,30년 보이차를 드신 다우분들이 존재하며 저또한 73청병을 높이 보지 않는 편입니다. 한번식 73청병 마시려면 전 말립니다. 다른 차 먹자고.... 상술에 의하여 높여진 대표적인 차중에 하나로 보는 편이죠.
      그러나 차의 진기가 70년대 차라고 하기는 어렵다는게 중론입니다.
      저 도한 70년대 중반 제품으로 보기에는 삽과 여러 미감이 맞지가 않습니다.

      서로의 의견은 다를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위의 댓글로는 73청병이 70년대 중반 차라는 것을 인지하기에는 자료나 너무 자의적이라 판단됩니다.

      진지동시 분만이 아니라 여러 책들이 잘못된 정보가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차인은 알고 잇습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틀린 건 아니죠.

      그리고 그런책도 사실 판매를 위한 상술의 하나로 보는 저에게는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제가 마셔보고 느껴보고 좋은 차가 좋은 차니까요.

      73청병, 88청병 저에겐 사실 좋다 말하기 힘든 차입니다.
      차라리 2000년 정도의 건창차 한편이 더 좋다는 입장이죠.

      40년정도 지난 좋은 이름없는 노차를 마셔보고 감탄을 연발하며 몇일식 차기를 느끼던 차와 비교하니 이건 가격도 말이 아니고...

      그냥 그들만의 리그구나 생각 합니다.

      이름 있으신분들이 한말은 건증을 통하지 않고 진실이되는 곳이 인터넷이며 무작위로 날라져 고착화 되는 곳이 이곳이죠.

      저 뿐만이 아니고 여러 다인들이 이해하기 충분한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해 주신다면 더욱 올바른 정보가 유통되는 인터넷이 될거라 봅니다.

      의견이 다르나 차를 좋아하는 마음은 같다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차 한잔 같이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요...
      저와는 상반된 의견들이 많으셔서 재미난 자리가 될거도 같습니다.

      2015.05.02 17:33 신고
  5. 초정 김경우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다담님.
    먼저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논담을 해주시는것에 감사드립니다.

    우선 73청병을 좋아하고 안하고는 개인적인 호불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여기서 논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물론 88청병도 건창차로서 가격을 너무 높게 평가시켜 놓았기 때문에
    여기서 논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되고요. 그리고 모두가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자료는 없습니다.

    첫째 가장 객관적인 자료는 맹해차창에서 나와야 하지만 맹해차창은 7542통표에서 (501), (503)나와 있을뿐 더 이상의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둘째로는 애초 차를 주문한 곳은 홍콩 의안차창인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료 추적은 어렵습니다.
    지금은 둘째 아들과 넷째 아들이 가계를 이어받아 영업하는데
    73청병이 창고에서 나왔던 당시 아들들의 나이가 열살 전후였으니
    현재의 구술은 크게 신빙성이 없습니다.

    셋째로는 73청병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유통하였던 옥호헌의 황슬금 사장의 구술 내용일것입니다.
    저는 두번째와 세번째 모두 직접 만나서 구술내용을 종합한 결과와 평소 제 소신에 따라 추론을 한 것이었습니다다.

    다담님 여기는 어디까지나 토론이기 때문에 크게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하고 몇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첫째 73청병을 몇 편이나 드셔보셨고 73청병을 몇 편이나
    만져 보셨는지 말씀해 주실수 있을까요.
    드신 차가 습기에 많이 노출된 차, 적당히 노출된 차, 습기에 노출되지 않은 차 세 종류를 골고루 드셔 보셨는지요?
    전 참고로 50편 전후의 73청병을 마셔 보았고 500편 이상의 73청병을 직접 만져버며 거래를 하였습니다.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로 객관성을 유지하자는 차원에서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맹해차창에서 처음 주문한 의안차창 가보시고 만나보시고 토론해 보셨는지요. 또 73청병 이름을 지었고 유통시킨 옥호헌 황사장님을 만나보셨는지요?

    마지막으로 다담님이 맞을 수도 제가 맞을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누가 맞든간에 왜? 라는 의문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라는 의문을 통해 관심과 연구를 통해 학문적 발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담님이 말씀하신데로 생각은 누구나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제안을 드릴까 합니다.

    첫째 제 글이 논리적이지 못하고 근거가 약하다면 이러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다담님 생각하신봐 데로 73청병이 80년대 차라는 가정하에
    누구든 이해 가능하게 근거에 의해 논리적인 글을 석우연담에 올리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아마 석우 연담에서도 반박의 글을 흔쾌히 올려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둘째 다담님이 주장하시는데로 차의 연대를 이야기 할때는 진기와 논리적 근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기를 이야기 할때는 실제 차의 발효정도가 진기를 판단하는 조건중 가장 우선인 것은 누구든 공감할겁니다.
    그래서 73청병이 80년대 차라는 가정하에 80년대 차 중에서
    73청병의 발효 정도와 견줄 수 있는 차를 한 가지만 선택하여
    같이 블라인딩 테스트를 해보면 어떨까요?
    그래서 73청병과 엇 비슷한 발효정도가 진행된 차가 있다면 저도
    80년대 차라고 인정하겠습니다.
    (저나 다담님이 인정한다고 변할것은 없지만요....)

    참고로 73청병의 현재 시장 가격은 80년대 차와 엇 비슷하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생산된 7572보다 싸고 80년대 초반에 생산된 설인보다 쌉니다. 80년대 중반에서 생산된 8582
    와는 가격이 엇 비슷합니다. 80년대 중반에 생산된 7542 보다는 조금 비싸고요. 80년대 후반에 생산된 88청병보다는 훨씬 쌉니다. 그리고 88청병이야 말로 중국사람들이 가격을 올려 놓은 차인 것은 분명합니다. 품질대비 가격면에서요.......

    2015.05.03 12:14 신고
  6. 아리랑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에서 오랜만에 좋은 글 봅니다.
    김경우 대표의 73청병에 대한 내용은 옆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관전 포이트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성의 있는 댓글에 독자는 감동합니다. 감사...

    2015.05.07 11:46 신고
  7. 쿠쿠  수정/삭제  댓글쓰기

    73청병에 대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김경우 선생님께 문의합니다. 선생님은 이 차를 많이 만져보고 유통도 많이 하셨다고 하는데 이 차는 입창한 차는 아닌가요? 7542는 입창차라고 하는데 73청병도 같은 계열입니까. 참 어렵습니다. 일일이 맛을 확인할 수도 없고. 아무튼 입창차와 습창는 조금은 다른 것 같은데요...

    2015.05.18 12:09 신고
  8. 초정 김경우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쿠쿠님
    73청병이 입창차냐 아니냐에 대한 답변을 먼저 말씀드리면 전부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유통되는 73청병 대부분의 차들은 입창이 된것이 맞습니다. 다만 차에 따라 습기에 좀 더 노출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뿐입니다.

    입창이냐 습창이냐는 시대에 따른 사용하는 용어만 변했을뿐 궁극적으로 차의 빠른 발효를 위해 창고 환경에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였다는 전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50년대에 차를 보관하든 방식은 의도하지 않고 당시 지는 집 구조의 구조에 따라 보관한 창고의 환경에서 높은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1970년대 이후로 넘어서면서는 그 동안 창고 보관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창고 환경에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이후에는 입창의 환경에서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 좋았든 단점을 보완 발전시켜 더 진보하였다고 보면 됩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입창을 시대별로 구분해보면 첫째 1950~1970년대까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입창의 조건에서 차를 보관하게 됩니다.
    둘째 1970~2000년까지는 의도한 입창으로 차를 보관하게 됩니다.
    셋째 2000년 이후에는 그 동안 경험을 통해 입창의 단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입창 보관하게 됩니다.

    73청병의 정확한 차 이름은 7542가 맞습니다. 7542지만 유통과정에서 73청병이라고도 명명이되었고 다르게는 소녹인대구중이라는 이름도 생겨난 것입니다.

    1970~80년대 사이에 생산된 대부분의 차 들은 입창이 시켰습니다.
    다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창고에서 보관된 위치에 따라 좀더 습기에 노출 된 차, 습기에 노출이 덜 된 차, 습기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차로 구분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크게 보이차가 시장에서 소비가 많지 았았든 시기인지라 홍콩의 몇몇 창고에서 대동소이하게 보관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습기에 노출되어서 맛이 부드럽게 변한것인지 아닌지는 차 병면 외형의 색상으로 구분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참고로 입창차와 습창차는 서로 맛이 다른것은 아닙니다. 차 마다 만든 연도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환경이라도 창고에 묵혀진 기간이 다르므로 습기에 노출된 편차의 차이에 따라 발효의 정도가 달라 서로 맛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예로 온도30도 습도85% 의 동일한 환경이지만 1년 있었든 차와 3년 있었든 차는 습기를 먹은 정도가 다르다 보니 발효 정도가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주셔도 됩니다. 연락처는 석우님께 물어 보시면 됩니다.

    2015.05.19 08:01 신고
  9. tiaru  수정/삭제  댓글쓰기

    73청병에 대해서는 이 이상의 내용을 만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 기고문도 좋았지만 댓글과 답변을 통해서 더 상세한 공부를 했습니다.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궁금해서 여쭙니다.
    이제 장마철이 다가오는데, 약간의 습을 먹은 차는 장마철에 어떻게 보관하면 좋은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병차의 표면에 흰곰팡이라고 할 수 있는 허연게 있어요 저는 이런 차를 많이 마셔왔기에 괜찮은데 요즘은
    좀 더 좋은 방식으로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에 문의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습을 먹은 차(90년대 후반에 만든 차) 흔히 말하기를 입창은 했는데 습이 많아서 포장지에 누른 자국이 있는 차입니다.

    2015.07.15 10:02 신고
    • 초정 김경우  수정/삭제

      흔히 입창차가 지니고 있는 습기는 너무 건조한 곳에 두어 한번에 빼낸 차는 차의 맛이 맹맹하면서 싱거워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습기를 빼내기 위해서 너무 건조한 곳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입창을 한 차들은 차가 습기를 지니고 있더라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서서히 빠져 나가면서 지니고 있는 습기에 의해 미생물이 활동하면서 발효가 진행되는 것과 습기가 빠져 나가는 시간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흔히들 이야기 하는 백상은 아직 정확히 과학적으로 규명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백상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주로 인용하는 자료는 2000년대 후반 광동에서 무작위로 샘풀 수거한 차를 검사 하였더니 아플라톡신이라는 독소 곰팡이가 검출되었다는 한가지 자료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샘풀 수거한 차의 공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정도 매변이 발생한 차인지 사진 또는 샘풀이 공개되야 하는데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기에 객관성이 결여됬다고 볼수 있습니다. 또한 아플라톡신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메주에도 검출이 되었다고 예전에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보이차 보관에서 특히 여름 장마철에 주의를 많이 기울이시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관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백상이 있는 차는 특이하게도 습한 곳에 두어도 습기를 인위적으로 공급하여도 더 이상의 매변 또는 백상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너무 빨리 습기를 빼내려고 하지 마시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서히 자연적으로 발효의 속도와 함께 습기가 빠져 나가도록 신경 써 주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5.07.15 11: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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