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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20일 북경 골동시장인 판자위엔내 사진 갤러리

중국의 지나온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사진 갤러리이다. 이곳은 수만은 역사속의 사진을 걸어 놓고 판매하는 곳이다. 나도 사진을 좋아하기에 이곳에서 사진을 한 장씻 구입하는 재미 또한 솔솔한 편이다. 처음엔 차 마시는 사진을 찾기 위해서 들어왔다가, 차와 관련있는 사진을 한 장도 얻지 못했지만, 이곳은 내가 북경을 방문할 때 마다 꼭 들러는 곳이다.

중국돈으로 130위안에서 200위안(1위안 : 150원)으로 내 마음속 한 곳에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은 6번 째 방문하면서 이젠 주인과 안면이 있어서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촬영해 주었다. 중국에서 차문화와 관련한 사진 찾는 것은 포기했지만, 지난 세월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찻자리에 관한 사진들을 정리하여 차문화사에서 바른 역사를 기록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하는 것 같다.

2005. 03. 09 석우

판자웨이  중국골동시장  사진갤러리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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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그릇 연구가 박정상(75세) 선생 별세, 찻그릇(다완)을 연구하며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선생은 최근 티벳 여행을 다녀오시고 고산병으로 고생을 하셨는데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8월1일 오후 11시55분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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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에서 보낸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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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선생은 2005년 부터 동양차도구연구소(http://www.teawell.org/)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일본 다완과 한국 찻그릇에 대한 역사적 탐구 활동이 깊었으며, 차문화 관련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국내 문경 찻사발 공모전을 비롯한 여러 공모전에서 심사를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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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차(푸얼차 puer tea) 마시는 찻자리로 전국에 알려진 자연주의 마지막 찻자리는 예상된 일이었지만 수 많은 말과 풍문을 남기며 한국에서의 첫 번째 명차 순례(골동보이차 품다) 총 10회를 마지막으로 대장정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오던 이른바 전설의 차들을 앞에 두고 펼쳐 졌던 행사였으며, 특히 운영해 나가는 가운데 주인의 배려와 큰 마음이 없었다면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가의 차를 할애하여 이루어졌던 행사였다. 이에 마지막 기록을 남겨 향후 아류의 차회와 그 운영의 범례로 삼고자 한다. (회비 10만원은 마시는 차의 원가에도 미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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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인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복원창)’ 6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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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 접수 받은 찻자리다. 7시 10분전의 탁자 상태이다. 이 때 주인은 자리에 착석하면 바로 식사를할 수 있는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어 놓았다.

지난 10개월 주인의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앞으로 전설로 남을 만한 이 시대의 귀한 찻자리로 기억되고 기록될 골동보이차의 원형(진품)을 감상하고 맛을 확인하고 음미 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회에서는 그동안 참석하신 분들에게 먼저 예약 우선권을 주고 선착순 17명까지 접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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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기 전에 영양식인 잣죽과 궁중떡볶이를 겸한 음식과 와인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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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오신 분이 혼마구로(참다랑어) 옆구리 살을 가지고 왔다. 감사합니다.

오후 7시 정각 17명 참석 예정자의 중 14명이 참석을 하였다. 먼저 찻자리에 앉아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자연주의 특유의 맛을 가진 궁중 떡복기와 잣죽이다. 셀러드와 멸치조림 등으로 식사하는 가운데 부산에서 한 분이 참석하셨다. 손에는 혼마구로(참다랑어) 옆구리살을 가지고 오셨다. 비록 간단한 식사이지만, 채소, 육류, 어류를 최고급으로 육질의 깊이를 음미하면서 앞으로 마실 차에 대한 기대도 크게 가질 수 있었다. 한 시간 뒤 나머지 두 분이 참석하여 17명 전원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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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져온 녹차 신양모첨 1등급을 마시기 위한 예열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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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을 예열하는 동작

맛의 원형을 탐구하고, 그에 관련한 시간을 가진 것에 감사한다. 이 자리로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후 다른 곳에서 달근 매니아 들의 다른 차회가 생겨날 수 있으며 또 다른 새로운 차꾼들이 이루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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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모첨을 찻잔에 따른다, 옆에서 보조하는 분은 차를 우려내는 팽주와 부부이다.

주인은 시작에 앞서 '매달 개최해온 골동 보이차 품다의 찻 자리를 회향하고자 합니다. 해서 특별히 보이차의 왕으로 불려지는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를 품다하는 <回向의 찻 자리>라고'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오프닝 차로서 중국 녹차인 신양모첨을 마셨다.

녹차는 유리 숙우를 두개 사용하여 나누어 마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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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는 유리 숙우를 두개 사용하여 나누어 마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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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소타차(맛으로는 20년 정도 되었다고 할 수 있는 품성이 좋은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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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호를 감상하는 참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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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호 원편을 감상하는 손님,  경주 아사가 주인도 참석하였다.(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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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차를 가지고 있다면, 남의 차를 보게 되면 비교하는 습관이 생긴다.
           외형이 다를 수 있는 여러가지 복합된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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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호는 자사차호에 넣어 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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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주인공인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복원창)’을 61g 저울 달고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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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복원창)’를 은 탕관에 넣고 우렸다.
                  이런 대범함은 신차든 노차든 다양한 차들을 많이마시고 연구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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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다옹 주인 안재한 선생은 차 맛에 대한 좋은 말씀을 주셨다. 마주 보고 앉은 우나이찌(가게이름)선생에게 옛날 7편 한 통으로 준비하고 마신 경험담을 이야기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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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찻자리에 모인 손님 가운데 상인이 아니면서 골동보이차를 통으로 준비하고 마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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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찻집 주인인 수선행님(왼쪽 첫번째), 대단한 마음이 아니면 이런 통큰 일을 벌리지 못한다.

누가 이런 분 앞에서 골동 보이차 운운하겠는가?  보이차 한 편에 시가 500만원, 800만원, 1000만원 하는 차들을 손으로 툭 잘라 차호에 넣겠는가?

일시: 2007년 7월 21일(토) 오후 7시 - 11시 종결 / 22일 02시 최종 종결

장소: 대구 수성구 지산동 1054-1 <자연주의> 찻집

 (TBC 방송국 건너편)


한국에서 이러한 찻자리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역사다. 다시 한 번 주인 부부(죽천향, 수선행)의 배려와 큰 마음에 감사드린다. 2007년 7월22일 02시 종결, 사진 기록  /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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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마신차는 신양모첨, 동창호, 아포차,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황문흥동차

참석자는 부산, 서울, 안양, 울진, 대구, 김천에서 모인 17명이다.

나는 10번 중 9번을 참석하였다. 이 기록을 한국의 현대 찻자리에 기록을 남기고자 처음부터 사진 작업을 하기 위해 참석하게 되었다. 혹시 저의 사진 작업이 참석자에게 누가 되었다면 용서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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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차(茶)도 커피와 마찬가지로 기호 식품이다. 하지만 커피와 달리 차는 예(禮)를 갖추는 일을 중요히 여긴다. 그것은 일반적인 음식에서 예로 발전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0년 동안 차와 함께 하며 살아왔다. 부산, 대구, 서울 등의 웬만한 차인들의 행다법을 지켜봐 왔고, 때로는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회원권을 구입하며 준비된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하기도 수차례 해왔다.

각 차회의 행다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정도로 수 없이 많은 사진 촬영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이런 일에 이만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가 하는 후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그러한 시간들이 다 소중하고, 그들의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한국 차문화의 발전이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문화의 한 분야가 발전하기까지는 그 분야 관계자들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속된다.

차인의 눈으로 봤을 때도 행다 절차는 까다롭고 어렵다. 다른 사람의 진지한 행다례 발표를 보면서 ‘춤추는 것 같다’ ‘너무 외형적으로 치우친다’고 폄하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혹자는 한복 입고 폼 잡는 것 때문에 차문화 발전의 저해 요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누군가는 ‘과도기’라 이름 짓기도 한다. 하지만 과도기라 명명한다고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미래로 향한 중요한 길에 놓여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학문으로 그 깊이를 논하고, 차를 연구하는 학자는 차의 품종을 연구하여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일에 매진하면서 다 함께 가야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분명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외형적 치우침이라고 매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 긍정적 대안이 아니다. 좋은 대안을 놓고 함께 연구하고 노력한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차회의 흠집 내기 발언보다는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을 때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행다 발표에 있어서는 그 동안 수련했던 것을 자신 있게 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보자. 태권도가 세계인의 스포츠로 자리 매김 하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이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태권무(跆券舞)라는 것도 생겨났고, 한편에서는 전통 태껸을 지켜온 이도 있었다. 무엇이 원류이고, 무엇이 본질인가? 문화는 다양성의 산물이다. 문화가 물이라면 시대의 삶은 그를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변화면 물은 거기에 비추어 유연하지 않은가?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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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주에 걸쳐서 매주 점촌에 내려가서 점촌과 문경지역의 전통 장작가마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위해 현장을 방문하였다. 그 곳에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실측을 하면서 지난 2004년 <사기장이야기>를 발표하기전의 가마 구조와 조금씩 달라진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변화는 사기장들이 그만큼 연구를 한다는 입장에서 긍정적이다. 2004년 부터는 문경지역의 차도구에서는 큰 변화를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답습의 연속에서 정체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전통 흑유다완을 만들고 연구하는 사기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목다완이 아니라 천목이 완성되기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무광택에 가까운 한국의 고려흑유는 유적천목과 같이 광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질감이 투박하며 소성후 유약의 변화가 감칠 맛이 나는 것이다. 철분이 많은 분청소지로 만든 이 흑유 다완은 현재로서은 다완으로서의 성형은 미흡한 점이 있지만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온 것 중 하나인 흑유를 소재로한 찻그릇의 개발은 정체되어 가는 지역에서 활역소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사기장이 만들어 놓은 여러 점을 보면 중국의 천목 다완과 비슷한 형태는 한 눈에 의도된 것으로 보이면서 우리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 보였다. 현재 흑유로 만들어진 결과를 보면 우리 나라의 다완 형태(웅천에서 만들어진 다완)로 보이는 것에 오히려 더 정감이 갔다. 이렇게 만들어 진 것을 보면 사토질이 많은 흙으로 설익어 나온 다완을 무조건 이도다완이라고 흉내내어 만들진 것을 보다가 찻그릇의 변화와 전통을 볼 수 있는 사기장을 만났을 때 장작 가마를 조사하는 과정의 힘들고 어려운 마음에 위로가 되고 흥이 났다. 그것은 분명히 끊어졌던 전통이었다. 그런데 문경 땅 안에 숨쉬며 싹이 돋아 나고 있었다. 진정 그칠 줄 모르는 우리의 예맥을 또 한번 확인했다. - 2007년 7월 19일 석우.

  3주간 조사한 장작가마는 문경요 포암요 갈평요 황담요 월봉요 가은요 부광요 고려천목요 주월요 묵심요 백두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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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찻자리 아홉 번째, 주인은 다음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첫 번 째부터 참석하였고, 사진 기록을 해오면서 회수가 지날 수록 절대 나는 인터넷에 얼굴이 나오면 안된다는 사람이 늘어났다. 인터넷을 통해서 자연주의 찻자리를 알고 온 것이 아니고 지인을 통해서 소개로 경주에서 오신 분들은 처음부터 얼굴이 나오는 사진이 공개되기를 꺼려하시는 분들이었기에 그 분께 누가 되지 않게 하기위해서 항상 조심스럽게 촬영을 하였다. 부득히 촬영을 하게 되더라도 그 분만 제외하고 사진을 올릴 수 있었다. 문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자연주의 찻자리를 알고 자리에 참석한 분들이 사진이 공개되면 안된다고 하시기 때문에 이번 찻자리는 그런 분이 50%를 넘었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하게 된 것은 그만큼 다양한 사진을 올릴 수 없다는 것에 이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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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2600고지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대우령을 시음한 후, 동창 황기를 마시는데 자사호 2개를 사용하면서 용량의 차이가 없도록 저울에 달아서 차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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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찻자리(유료 찻자리 1회~10회 ?)는 분명 ‘한국에서 일어난 전설적인 찻자리’라고 할 수 있다. 주인 부부의 통 큰 마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고, 이러한 찻자리에 참석한 것에 감사한 마음은 세월이 지날 수록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참석자 들이 다 모일 때까지는 지난회에 마신차를 자차로 마셨다. 주인의 맛내는 솜씨에 유리잔에 담은 홍시감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참석하신 분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오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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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창황기를 따르는 주인 박창식(필명 죽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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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반을 이동하는 분이 김천에서 오신 최길동 수학 선생님, 연속 4회 참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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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에서 오신 서예가 솔뫼 정현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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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찻자리를 만들게 된 이정미(다호 수선행) 선생의 소장 차도구의 애정어린 마음을 진솔하게설명하는 자리, 이정애 선생으로 부터 받게 된 사연이 많은 다완과 숙우를 감상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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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사진이 많아서 리얼한 사진을 담아 놓고도 공개할 수 없는 필자의 마음을 이해해 주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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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茶道具의 名稱

 茶道具 名稱의 必要性

한국 차도구에 대한 명칭이 정립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국제적인 명칭에 대한 정립문제이다. 국제적인 명칭은 이미 문화적으로 많이 알려진 중국과 일본에서 국제적 명칭의 연륜을 쌓아나가고 있다.

이는 곧 세계화의 영향으로서 우리가 앞선 문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의 문물과 명칭을 알리지 않는다면 곧 국지적인 명칭으로 전락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때문에 우리는 국제적인 명칭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가장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규범이 될 수 있는 차도구의 명칭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예는 우리의 “김치”가 일본의 문화적 산물이 될 뻔한 최근의 일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역사적이며 문화의 근원을 잘 판단하여 일본의 문화상품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차도구의 면에서도 이러한 사항은 대표적인 “다완”의 문제가 남아 있다.

때문에 우리의 차문화 속에서도 차도구의 명칭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은 여실히 알 수 있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다완”이라는 명칭도 우리식의 “사발”이라고 하는 명칭에 우선되는 전래명칭이며 우리에게로 건너와 일본에 전래될 당시 한자문화와 한글문화가 뒤섞인 조선 중기에 해당하므로 어느 것이 우리가 내세워야 할 명칭인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그 후 학술적으로 공통되게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이 되어야만 외국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국내외 명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도 수많은 기존 명칭에 대해 사용빈도와 의미의 명확성 등을 고려하여 공식적인 명칭들을 정립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차도구와 관련된 명칭자료들을 다양하게 수집하여 분석, 정리할 필요가 있다.

- 동양차도구연구소 소장 박홍관 배상 -
원본 / http://teawell.org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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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대구 수성구 자연주의 찻집
일 시  : 2007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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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경원스님의 참석 그 자체였다. 나는 서울에서의 학교 수업이 있어서 2시간 지각을 하였다. 그래서 경원스님과의 차에 대한 담론에 첨여하지는 못했지만, 첫 자리에 앉는 순간 새로운 인물들과의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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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모임에서도 찻자리에서 가장 연로하신 매다옹 사장님, 새로오신 분들에게 좋은 자리를 내어 놓으시고 구석자리에 앉으셨다. 하지만 노장의 기르침은 자리가 어디에 있던 힘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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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멤버에 해당되는 한 분 가운데 율리님, 보이차에 익숙한 듯 이젠 주변의 분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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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님은 와인 전문가이다. 와인을 가까이 두는 시간 그의 밝은 얼굴이 차 마신 만큼 배가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이는 와인 시간을 기다리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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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차하는 시간은 팽주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넉넉함이 베어나오는 주인장 박선생님, 다호 가득 담긴 홍인을 꺼집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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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 100g  마신후 자차위해서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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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차를 마시기 위해 우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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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필자의 모습이 주인장의 카메라에 모습이 담겼다. 일주일전 그러니까 4월 초순에 중국 황산을 다녀왔다. 물론 녹차의 제조 방법을 연구하고 차 밭 사진을 담기위해서의 일정이었다. 그 때 3월15일 찻잎을 채취하여 만든 황산모봉을 선물로 가져왔는데 그 차를 필자가 우려내게 되었다. 마침 그 날 강의에 필요한 우리나라 찻잔 종류가 좀 있었는데, 그 찻잔으로 참석자 전원에게 신선한 녹차의 맛을 선사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새로오신 분의 보이차에 대한 정열적인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스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그 분에게 어떻게 비쳐졌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승려의 모습에서 보았다면 앞을 가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는 눈도 보는 사람의 안복이다.

요즘은 관목이나 교목차에 대한 구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빨간 줄 치면서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나, 차를 파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 그런데 너무 구분을 하고 있다.  좋은 차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까지... 보이차는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이 구분을 하고 있다. 구분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훗날 기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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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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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울림 2007.05.08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 그대로 '아름다운 찻자리'예요~


    개인적으론 혼자서 또는 지인과 함께
    햇차 우려 마시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며
    홍복으로 여깁니다만...


    이런 자리에서 느끼는 사진 속 여러분들의
    감동의 크기는 또 어느 정도일까
    싶은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름다운 찻자리가 명품의 자리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그때쯤엔 저도
    동참할 기회가 되기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