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하브루타 신년 차회

 

동양차도구연구소 2016년 신년 차회는 차은경 가정하브루타 원장으로부터 교육받고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22명을 초대하였다. 엄마 아빠와 함께 참석한 어린 아이들은 같은 또래들과 어울리며 차와 다식을 먹고, 차실 주인의 차생활 공간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함께 한 부모님들은 평소 궁금한 한국차와 중국차, 한국 차도구와 중국의 차문화에 대해 질문과 답변, 그리고 차은경 원장과 함께 동요부르기는 감동을 주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가정하브루타 동요부르기

 

차은경 원장의 이날 후기를 그대로 전재한다.

 

신년을 맞아 가족 차회를 다시 마련했다. 지난 첫 번째 차회를 하고 가졌던 소중한 의미와 모습들을 주춧돌 삼아 가족 차회 두 번째 이야기를 준비할 수 있게 많은 분들의 도움과 응원이 있어서 가능했다. 가족 차회라는 의미를 좀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하다보니 거리가 걱정이되었다.

 

장소는 너무나 어울리는 곳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을 동반해야할 부모님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가족들의 아쉬움은 사진과 짧은 이야기로 작게나마 갈무리 되리라 기도한다.

 

차은경 가정하브루타 원장

 

30년이상 차생활 교육을 해오신 선생님의 실제 가정은 사진 두장으로 먼저 살짝본것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진 공간이었다. 아주시는 선생님의 기품과 질서는 가정에도 그대로 공간마다 그려놓듯 놓여있는 소품하나까지도 선생님의 시간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아리랑차문화연구원 최송자 원장, 아이에게 차를 내는 모습

 

봄이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겨울 눈속에서도 피어나는 매화꽃을 거실 가득 큰 화폭에 담아 우리들을 맞아주셨다. 오랫동안 직접 기르고 계신 작은 소나무화분들이 한곁에서 매화의 붉은빛들을 더욱 화려하게 보듬어주는 전체의 세팅은 우리들의 안목에 안복을 하나 더해주는 것이었다. 자연을 품을 수 있는 아이가 행복한 아이이고 큰 꿈을 펼칠 수 있다는 뜻에서 오늘오는 아이들에게 주고 싶으신 메세지라니 그저 감사하고 엄마로서 행복했다.

 

이제 다섯살, 일곱살이 되는 아이들과 세살 아기까지 자리에 앉아 두 시간 이상의 시간을 견디어주는 대견한 모습에서 차와 하브루타를 함께 한 짧은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작은 씨앗이 되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단체 기념사진

 

늘 수업에서 엄마들이 함께했던 동요부르기를 아빠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함께하니 어린시절 고물고물부르던 그때가 진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엄마들이 쓴 시는 몇번을 읽고 들어도 눈물샘을 풍요롭게하는 힘이 있다. 우리의 어머니를 다시 추억해보고 한 움큼 쏟아내고 내 아이의 얼굴을 보며 또 다시 한 움큼을 쏟아내며 말로 다하지 않아도 서로 토닥여주고 응원해주는 모습이 아빠들과 아이들의 눈속에도 마음속에도 담겼으리라.

 

전체 동요부르기 동영상

 

우리의 차도구와 차의 역사도 간략하게 듣고 질문하는 속에서 아빠도 질문을 하는 모습에 아이들의 눈길이 머물렀으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아빠를 향한 무한 긍정의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아빠들도 이 메세지를 받으신 듯 더 자연스러워지신것같았다.

 

분위기가 자연스러워 많은 담소가 오갈때즈음이면 언제 그렇게나되었나싶게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오늘 역시도 예정한 시간보다 한참지난 시간이되어서야 아쉬움을 접을 수 있었다. 많은 공을 들여주시는 선생님들을 노고를 받고 누릴 수 있는 이런 시간들이 모여 가족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기대의 두번째 꽃망울을 달았던 날이었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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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관조에서 무진 선생

 

2개월 만에 송관조를 방문했는데 차실의 분위기가 확 바뀌어 있었다. 송관조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운찻자리를 찾기 보다는 건강한 차를 마시기에 좋은 찻자리가 준비되어 있다. 신발을 벗고 차실에 들어서는 기분은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청정함을 느꼈다.

 

어떻게 찻자리 위치와 분위기가 바뀌어 지게 되었는가 하고 질문을 하니, 좀 더 청정도량의 기운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방문하여 마주한 자리가 찻자리 위치를 바꾸고 내가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하시며 며칠전부터 경을 틀어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자리를 바꾸어 이제부터는 2-3명만이 앉을 수 있도록 하고 기운이 좋은 사람만 초청하기로 했다고 한다. 기운이 탁한 사람은 차실 방문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겪으신 사건들이 말씀하지 않아도 대강 필자에게 느껴지는 듯 했다.

 

필자에게 말한 내용을 보면

나는 차하는 사람이 아니라, 차를 즐기고 마시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차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고 금정산 아래에 송관조 무진은 차를 약으로

마시는 사람이라고 하며, 나는 개인적으로 차가 음료가 아닌 약이라고 주장을 한다.

 

무진 선생은 즐겁게 마시고 그로 인해 내 몸 안에 약도 되고 사람과의 관계도 풀어나가는 것이 바로 차라고 한다. 누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본연으로 즐기고 있음을 송관조에서 또 반갑게 보았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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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탁주 19%

 

그동안 마셔왔던 소주와 결별은 너무도 쉽게 다가왔다.

20153월 말경 경주에서 이틀간 좋은 청주를 마시고 서울에 도착해서의 일이다.

일행과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늘 해온 것처럼 소주를 시키고 일행들과 건배를 하면서 한 모금 마신 술이 순간 내 느낌으로는 식도를 타고 아주 강한 화학물질이 아래로 타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날 같이 앉은 일행들에게 느낌을 말하며 선언을 하게 되었다. 오늘 이후 소주는 마시지 않겠다고 내 몸에는 맞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하고 끊었다.

우리의 전통주가 그렇게도 강하게 내 몸을 정화시켰던 것일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현상을 느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2개월이 지나서 야생차 문화축제에 참석하고자 23일 저녁 화개에 도착했다.

먼저 온 일행들과 숙소에서 만나기 전에 녹향에 들렀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갔기에 혹시 하는 마음에 찾아갔는데 마침 자리에 있어서 차를 나누게 되었는데, 차를 마시다가 얼마 전에 소주를 끊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발효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오신옥 씨는 마침 좋은 술이 있다 하시며 이상헌 탁주를 한 병 꺼내어 왔다.

 

권주의 말씀은 이 술은 술을 못마시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것이었다. 특별한 맛에 한 잔 마시고 두 잔 마시게 되면서 탁주에도 수준이 있고, 또 그것이 이렇게 큰 차이를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농밀한 이상헌 탁주와 비교해서 알코올 농도가 8도인 다른 탁주도 비교해서 마셔보았다. 차와 술을 번갈아 마신 날이지만 탁주의 매력을 모처럼 느낀 날이다. 이상헌 탁주의 매력. 이런 일은 별로 없었는데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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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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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절강성 호주시 안길현 만무생태다원

 

석우연담에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는 대상은 유명인이 아닙니다.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분은 우리 차계에 차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시는 분들입니다.

 

석우연담에서는 인터뷰의 방을 하나 더 만듭니다.

책에 나오지 않고, 유명하지도 않으며, 많이 알려지지도 않은

우리 사회 속에서 차와 관련되어 있으면서 정말 알려져야 할 분들

한국 차계와 한국의 차인들, 그리고 차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아야만 할 그런 분들.

 

차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관심과 사랑이 가득한 분을 찾아 갑니다.

 

2015년 석우연담

석우 박홍관 배상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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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산내면 옥정호 부근 숲속 차밭

 

석우연담에서 차와 관련한 두 번째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번에는 초롱 출판사 윤여목 실장이다.

윤실장이 만든 차 이름은 홍심, 청심, 단심이다. 이날 마신 차는 홍심과 청심으로 그 구분은 찻잎을 따는 계절이라고 한다. 단심은 우전에 해당하고 청심은 세작, 홍심은 중작 정도의 잎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다른 차밭의 기준과는 차이가 많다. 일반 평지의 차는 기온이 온화하면서 잎이 올라오는 기간이 완만하다. 하지만 이 차는 추운 날씨가 지속되다가 갑자니 기온이 올라가서 찻잎이 쑥 자라는 것도 있다. 그래서 찻잎을 따는 시기로 구분하고 있는데 단심은 비장의 무기로 아직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윤 실장은 평소 차 품종을 연구해 오면서, 한국 차로 한국형 홍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강한 의지로 오랜 연구 끝에 차농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품종을 연구하며 각 품종마다 무성번식으로 차 밭을 일구어왔다.

 

홍차를 만들어 차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정읍 지역의 기후 특성을 잘 살려 만들었다. 아래 질문과 답변에서 윤실장의 차를 바라보는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 채다헌의 차 향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킵니다. 언제부터 차를만들기 위해 준비하셨는지요? 

 

: 15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제가 본래는 차 품종 연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의 과일이나 채소, 인삼이나 약초 등은 중국이나 대만보다 맛에서나 영양에서 결코 뒤지지 않거나 훨씬 더 좋은 반면, 차에 있어서는 중국이나 대만차에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을 보고 왜 그런가 깊이 생각하던 차에 원인을 찾아보았더니 제 나름의 결론이 내려지더군요.

 

삽목시 뿌리 내림의 형태

첫째,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 소위 차를 재배하거나 차를 하는 차인이라는 사람들이 차를 문화적인 면으로만 부각시키다 보니 차예절이나 다인의 입장에서 차를 받아들이고 화려한 외형에만 치중했지 정작 차의 품종이나 재배법 그리고 제다법은 도외시 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둘째, 제가 한동안 책 출판을 하며 간간히 차에 대한 논문집을 만들어 주다가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논문들 중에 너무 말이 안되는 데도 그럴듯하게 학설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 예를들어 차는 옮겨 심으면 죽는다든가 꺾꽂이를 하면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해서 동해에 약하다든지... 이러한 학설이 근간을 이루다 보니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차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후학들에게 빼앗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중국은 이미 송나라 명나라 시절에 무성번식법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책상 앞에서 펜으로만 연구했다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중국에서 공부하고 온 학인들 중에 품종이 다른 중국차를 우리땅에 심으면 강남의 귤이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의 고사성어를 인용하면서 우리의 녹차품종으로 변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럴 듯 하지요... 하물며 와인을 만들때도 품종이 중요하고 사과 배 복숭아도 품종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을 내는데 어찌 차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는지...

 

셋째, 차를 접하는 초심자들이 차의 세계에 먼저 들어온 차선배나 상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너무 현혹되다 보니 그들이 모든 차의 전문가처럼 여겨져서 그들의 말이 곧 학설처럼 굳어져 진실이 왜곡되는 점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차인이 돼서 차를 발전시켜야 할 좋은 싹들을 미리 싹뚝 자르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적응시킨 오룡차 품종

 

저는 차의 분야를 크게 다섯 가지 측면에서 보고 있습니다.

 

- 차의 품종을 연구하는 육종전문가

- 차를 재배하고 재배지의 기후나 토양의 적합성을 통찰하는 차 재배기술전문가

- 차엽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차의 제다를 연구하는 제다전문가

- 다양한 차에 대한 다기를 다루거나 만드는 다기전문가

- 잘 만들어진 차를 다인의 입장에서 차문화예술로 승화시키는 차예절전문가

물론 한 사람이 전부다 박식하게 알 수는 있으나 어디까지 차인은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지 모두다 전문가일 수 없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가 차에 어지간히 빠질 즈음 간간히 들리는 소식이 우리 녹차는 만들어야 팔리지 않고 차농가들이 차밭을 갈아엎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커피가 대세인 요즈음 차농가는 죽을맛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안이 있다고 말하고 홍차를 만드세요했더니, 평생 녹차를 가꾸고 만들어 오신 칠십대의 지인이신데 우리차는 홍차를 만들 수 없는 품종이라는 것입니다. 차를 연구하는 저로서는 머리가 띵 했습니다.

 

중국의 소종홍이나 특히 기문홍은 우리 차와 맛이 비슷하던데 어찌 이렇게 연구와 노력도 안해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시나... 그 분은 저에게 품종을 달랍니다. 홍차를 만들게... 홍차는 세계 차시장의 75~80%의 유통량을 자랑하는 찬데 아이러니 하게 우리나라는 이렇다 할 홍차를 내놓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기후가 이렇게도 좋은데... 대만은 청향과 맛을 얻기 위해 2,000미터나 3,000미터의 산 위에서 차 재배를 하는데 다행히 우리는 위도가 높아서 지리산이나 남도는 그냥 있어도 그들이 재배하고자 하는 기후보다 더 좋은 기훈데... 겨울에 조금만 신경쓰면...

 

한 삼년 됐는데요. 한번은 후배가 정읍에는 시에서 지원해서 2002년도에서부터 차를 심기 시작했는데, 녹차가 안 팔리니까 다들 차밭을 버리고 떠나거나 그나마 몇 안남은 차농가도 지리멸렬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읍 농업기술센터에 들러 제일 큰 차농가를 수배해서 둘러보았습니다. 차밭은 그야말로 그림 같았습니다. 너무 정갈하게 관리해서 영화를 찍어도 아름다울 만큼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원의 다실에 들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차밭은 그렇게 훌륭하게 가꾸어 놓고 정작 뽕잎차나 개똥쑥차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읍은 내장산 단풍도 있고 하니 정읍미인이라는 부랜드와도 맞는 홍차를 하셔야죠라고 했더니... 잘 와 닿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홍차를 잘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원의 찻잎을 사서 홍차를 만들어서 그분들께 맛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차를 만드는 기계도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걸 알리 없지만 차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다만 차를 연구하는 저로서는 차가 갖추고 있는 향과 표현되지 않은 맛이지만 우리차도 홍차를 만들면 맛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제가 직접 그 지역으로 내려가서 홍차제다의 가능성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제 주소도 옮기고 다원을 빌려서 홍차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지만 노력하면 좋은 홍차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읍시 현암다원

 

2. 정읍에서 채엽한 우리 녹차 잎인데도 찻잎이 큰 것은 이유가 있나요?

 

: 제가 홍차를 만든 다원은 정읍시 산내면 옥정호 기슭인데, 지대가 높고 산속이라 정읍의 다른 지역보다 한 보름 늦게 차엽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숲속이라서 차싹이 길쭉길쭉 합니다. 차품종도 중엽종입니다. 지리산지역이나 남쪽의 기후와 달리 4월 중순까지는 춥다가 갑자기 더워지는 날씨라 차엽이 빨리 자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잎은 크지만 부드럽습니다.

 

위조시설

다양한 빛깔의 차싹

 

3. 직업은 도서출판 초롱 편집자 인데 어떻게 해서 차 농사를 지을려고 했습니까?

 

: 제가 차를 접한지는 이십대 중 후반이었습니다. 한 이십 오륙년쯤 되는군요. 저희는 불교출판사라서 그런지 많은 스님들이 방문하셨지요. 특히 선방 스님들은 차를 좋아해서 늘 가지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연스레 차 매니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차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고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나도 좋고 세상 사람들도 이로운 일이 최상의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이 직업이면 오죽 좋겠습니까. 세상에 선연을 쌓는 일이겠지요...

 

4. 현재 보유하고 있는 품종의 종류와 출시할 차를 알려주십시오.

 

: 우리 차는 다양한 품종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차엽의 빛깔로만 봐도 녹색, 미색, 홍색, 자색 등등 색이 있다는 것은 다양한 향이 있겠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저는 그래서 차엽의 맛과 색과 향과 형태 등등을 가지고 분류했습니다. 많게는 이십여종 그 중에서 상품으로 개발하면 좋겠다 생각하는게 십 여종 됩니다. 그동안 실험만 했으므로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어떤 품종은 백도향이 좋고 어떤 품종은 꽃향기 같은 화향이 좋습니다. 청향이 담백한 것은 녹차로 과향이나 화향이 좋은 차는 홍차나 기타 중국의 봉황단총이나 대만의 동방미인과 견줄 수 있는 차를 만들려고 합니다. 참고로 제가 10여년 전에 차씨를 들여와 토착화시킨 오룡차 품종이 있습니다. 그 것을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청향이 아주 좋습니다. 오룡차는 녹차로 변하지 않더군요.

 

태백산 녹차품종

태박산 녹차 품종

 

5. 홍차를 완성하면서 가열하지 않고 만드는 것이 이 차의 장점이라고 하셨는데, 차의 선진국 중국에서 생산되는 기문홍차나 정산소종 등과 어떤 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까?

 

: 지금 우리나라는 홍차를 만든다면서 황차방식으로 홍차를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식혜로 술을 만드는 격입니다. 홍차는 엄연히 산화해서 발효시키는 차입니다. 그래서 오미가 살아있습니다. 아니 오미가 살아 있어야 홍차입니다. 황차는 만드시는 분들이 많아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중국의 기문홍이나 정산소종은 발효후에 홍배를 강하게 합니다. 요즈음 만드는 무이암차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향이 강합니다. 그것을 일부는 암향이라고 말하지만 제가 느끼기엔 홍배를 강하게한 불맛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마시면 속이 메스꺼워집니다. 화기가 빠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봅니다.

 

물론 옛날에 마셔봤던 대홍포나 암차는 불맛이 그렇게 강하지 않고 오미가 강했습니다. 쓴맛이 강해서 처음 마실 때 얼굴을 찡그리고 마셨으나 조금 있으면 목안에서 달달하게 느껴집니다. 고진감래지요. 이게 암차지요. 처음 마실 때 강한 향이 나므로 그렇게 차를 배운 분들은 그래야 암차인줄 압니다. 그러나 차를 오래 하신 분들은 대번에 압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홍차가 향은 강하나 홍차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발효후 열처리를 적당하게 한 차는 일정기간 지나면 화기가 빠져나가 흡수력과 맛이 좋아집니다. 자연스러운 차가 되는 것이죠. 자극적이지 않고 순수한...

 

태백산에서 차 밭을 일구는 모습

 

6. 차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차를 만든다기 보다 육종을 먼저 택했습니다. 바탕이 중요하니까요. 저는 제가 길러낸 품종으로 우리차도 훌륭한 차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차의 미래를 가꾸어 나갈 겁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태백산 차연구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야 세대가 지나도 연구는 끊임없겠죠. 우수한 품종을 끊임없이 소비자 욕구에 맞추어 길러 내야 차산업이 발전하겠지요. 품종에 따른 제다법도 연구해야 하고 다양한 차, 녹차는 기본이고 청차 홍차 백차등등 품종이 많은 만큼 다양한 차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저를 격려 내지 응원하시는 분들께도 좋은 차를 선보일 것이고, 그동안 저를 쓸데없는 짓 한다고 했던 분들께도 다시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모든 분들께 맛있는 차를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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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감정가 김경우

 

보이차 시장에서 2007100년에 한 번 온다는 호경기를 한국과 중국이 경험을 했다. 이후 2-3년간의 침체기를 겪고 새로운 판이 형성되고 있다. 그것은 과거 보이차 시장은 홍콩과 대만 중국 본토였다면, 2010년을 기점으로 한국이 골동 보이차의 거래에 한 축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필자가 그간의 취재 경험에서 알 수 있었다.

 

홍콩이나 대만의 보이차 상인들이 한국을 드나들면서 과거 자신들에게 구매해간 보이차를 거두어 들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 점은 한국이 골동 보이차 시장에서의 위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전후 상황에서 김경우 씨가 한국 소장가들이 가지고 있는 인급, 호급 보이차를 대만과 중국의 상인들에게 판매하는 국제적인 거래를 성사시키는 회수가 많아지면서 골동보이차의 시장에서 명성이 나게 되었다. 차의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하는 가운데 거래하는 차를 시음하면서 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면서 오직 차의 외형으로 판단하는 시점이 되었다. 이런 경우 사고파는 당사자의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람인 한 통을 열어보는 모습

 

차를 시음하지 않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보이차의 외형과 포장, 내비의 종류 등등이 하나하나 빅데이터로 집약되면서 그동안 몰랐던 사실까지도 알게 된다. 큰 시장에서의 흐름을 잡게 되었다. 지식이 쌓이고 거래 규모가 확대되면서 보이차의 종류와 시장에서 요구하는 차들을 감정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게 되었다.

 

한국에서 보이차를 감정하는 직업은 없다. 유사하게 중국 노동부에서 발급하는 품평사, 평차사 라는 직업은 있다. 이런 품평사가 보이차를 품평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골동이라고 할 만큼의 큰 금액이 오가는 일에 거래하는 차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거래가 성공할 수 있을까? 보이차에 대한 거래는 자신이 모르면 절대로 할 수 없다. 특히나 보이차에 관계된 일을 초창기부터 해 왔던 경우라면 이제는 포장만 보고도 판별이 가능하고 그것을 거래가 성사되게끔 한다는 점은 일반 차인, 차꾼을 넘어선 것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의 인급 호급 골동보이에 대한 큰 거래를 성사시켜 왔던 사람.

판별하는 능력과 그에 대한 거래능력까지 한국과 중국에 널리 알려진 사람.

 

그런 점에서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거래를 성공시킨 김경우 씨는 골동보이차를 감정할 수 있는 국내 몇 안되는 전문가. 그의 지나온 이야기를 듣고자 석우연담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람표 복원창호

홍표 복원창호

 

질문: 보이차의 거래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는 무엇인가,

답변: 현재 중국, 홍콩, 대만, 유통 상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는 전통방식에 따라 발효시키지 않고 긴압한 종류의 호급차, 인급차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예로 호자급 보이차는 복원창호, 홍표, 람표송빙호, 동흥호, 쌍사동경호, 황금당동창호, 경창호, 강성호등이 인기가 있습니다. 인자급 보이차는 홍인, 홍인철병, 무지홍인, 람인, 람인철병등을 선호라고 있습니다.

홍인철병

 

질문: 보이차를 매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답변: 골동급차의 가격 형성 원칙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비가 온전하게 있어야 하며 둘째는 내비가 병면 속에 파묻혀 있어야 하고, 셋째는 외형의 형태가 온전해야하며 넷째는 무게가 320g 이상이어야 한다. 다섯째는 차의 외형이 습기에 노출되지 않고 병면이 깨끗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가격의 편차가 존재합니다. 예로 홍인의 경우에는 반드시 내비가 병면속에 파 묻혀 잇는 것을 현재는 인정하는 추세이며 병면위에 내비가 있는 것과는 가격에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

 

홍인철병

 

질문: 골동급 보이차를 소장하신 분들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답변: 현재의 시장 추세는 2년 전이 가장 활황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향후 앞으로3~5년 사이에는 중국 경제 상황이 특별히 좋아지지 않는 이상 가격 상승은 힘들 걸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 상황이 안 좋아 질수록 상태가 좋은 A급 차는 가격에서 현 상태로 유지 내지는 상승할 걸로 예상할 수 있으나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한 B급 차의 경우 가격이 하락 내지는 구매자가 없을걸 로 예상됩니다. 현재 시장 상황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고요.

 

질문: 아직도 인급차나 호급차가 가격을 잘 받을 수 있을까요?

답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차의 상태에 따라 가격의 질서가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판매하고자 할 때는 골동급차의 유통 경험이 풍부한 상인에게 자문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우리나라에서 소장가끼리 거래라면 시장 가격보다 10~20% 정도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향후3~5년 사이에는 특별한 가격 변화가 없을 걸로 예상되기 때문에 5년 이상의 장기간 소장이라면 또 한 번의 가격 상승은 기대해 볼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예상입니다. 항상 골동급 보이차의 시장 상황은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골동급차는 호급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거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을급 람인

 

질문: 골동급차는 진년차에서 저 평가된 차는 무엇인가요?

답변: 보이차는 신차든 노차든 마찬가지로 소장용과 소비용을 구별하여 소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장용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전통방식에 따라 발효시키지 않고 긴압한 A급 차를 소장하는 것이 중요하며 소비용이라면 브랜드 가치와 상관없이 맛이 좋은 차를 선택해야 합니다. 1930년대에 만든 정흥호, 1950년대 전후에 만든 송빙호, 사보공명, 맹경호, 동창황기등은 웬만한 1970년대 만든 차와 가격이 비슷한 추세입니다. 소비용이라면 이런 차를 소비하는 것이 품질대비 가격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장에서 저평가된 차와 향후 가격 상승을 기대해볼 차는 1970년대에 만든 대람인, 대황인, 소황인, 73청병,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7542등이 현재 저평가된 대표적인 차의 종류입니다. 잘 발효된 1970년대 숙차도 가격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동흥호의 통을 열어볼 때

 

질문: 오늘 날과 같이 골동보이차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답변: 특별한 계기보다는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차를 감정할 수 있는 안목과 홍콩, 대만, 중국의 인맥을 바탕으로 골동차를 역 수출 할 수 있는 토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질문: 국내에서 2000년대 초 보이차가 한 창 붐을 불 때 골동보이차는 대부분이 가짜라고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10년 전후에 한국에 골동보이차가 많이 들어왔는데, 그 당시에 한국에 들어온 보이차를 대만이나 중국 차 상인들에게 판매할 때 그 과정에서 가짜 보이차가 많았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과정에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답변: 우리나라에 들어온 보이차는 대부분 가짜가 없었습니다. 다만 상태에 따라 A급과 B급으로 구분되어 가격면에서 차이가 존재할 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짜가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홍콩이나 대만에서 직접 구입한 차들은 재현 차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지 않고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따라 구입한 차는 가짜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차의 상태 차이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예로 홍인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현재 시장에서는 중국 유통 상인들은 골동급차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새로운 기준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로들면 내비가 병면 속에 파 묻혀 있어야 진품으로 인정하는 추세인데 이는 당시 작업 상황을 생각하며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입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내비가 파묻혀 있을 수도 병면위에 얹어져 있을 수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는 찻잎의 외형적 형태에 따른 찻잎의 구조를 참고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람인과, 무지홍인등은 홍인의 찻잎 구조와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야기 했든 것처럼 대부분 가짜라고 하면 홍콩, 대만, 중국 상인들이 비싼 가격을 주고 가짜차를 사겠습니까. 그들도 바보가 아닌데요.

 

후지 동흥호 내비

 

질문: 골동보이차를 감정하는 곳이 국내외 적으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외국에서는 어떻게 감정하고 거래를 하는지, 그리고 한국에서는 보이차를 감정하는 곳이 있는지? 김경우 씨는 보이차를 감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선행되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답변: 현재 보이차 시장에서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감정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 중국, 대만, 홍콩의 경매 시장에서 나온 도록을 살펴보면 오류가 있는 것이 그러한 예입니다. 경매 시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100% 믿으면 안 됩니다. 보이차는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실제 보이차를 많이 만져보고 마셔 본 사람이 가장 정확합니다. 그동안 제가 선택한 차를 가짜라고 판명되어 거래에서 실패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나름대로 국제적인 신뢰를 축적하게 된 것 같습니다. 현재 보이차 시장에서 감정하는 곳은 없으며 유통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감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동경호 내비

 

질문: 보이차 전문가로서 향후 계획은 무엇이 있나요?

답변: 올 연말 출간 예정으로 보이차에 관한 단행본을 집필중입니다. 보이차를 알기위해서는 문화사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보이차의 실체에 관한 유통 부분에서 실제적인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도 중요합니다. 근대 보이차는 중국은 보이차의 생산지였으며 골동급 보이차가 출현한 곳은 홍콩입니다. 현재 소비자는 홍콩을 무시하거나 악덕 상술이 난무하는 것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홍콩에서 바라본 보이차에 대한 시각으로 원고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현재 많은 분들이 보이 신차를 제작하고 있지만 정작 골동급의 보이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러면서 세월이 지난 후 좋은 보이차가 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 생각됩니다. 세월이 지난 후 좋은 보이차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더 과거 보이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점은 받아드리고 나쁜 점은 고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보치차에 관한 책을 준비하는 이유도 생산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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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27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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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다례원 이정희 원장/ 입점하기 전 잔에 남은 차향을 단전까지 깊히 들이켜 심호흡하는 동작

 선은다례원 이정희 선생 만의 은근하고 청정한 생활이 선생의 성품을 잘 드러내 준다. 숙우회를 통해 선차 공부의 맥을 살려 선차 다법을 보여 주는 그 모습은 선차를 잘 살려내는 대표적인 차인의 모습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한국현대차인 개정판 작업을 마치면서 이 사진 한 장을 올린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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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유동훈(柳東勳)
출생 : 1969년 7월 4일
학력 : 국립목포대학교 대학원 국제차문화학협동과정 석사과정 졸업
         국립목포대학교 대학원 국제차문화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졸업
현재 : 국립목포대학교 국제차문화 · 산업연구소 연구원
         국립목포대학교 대학원 국제차문화학협동과정 출강
논문 : 茶山 黃茶의 特徵과 傳承 考察 (韓國茶文化 제2집)
         文緯世의 茶賦를 통해 본 장흥지역 음다풍속 고찰 - 固形茶를 중심으로 - (韓國 茶文化 제3집)
         東醫寶鑑을 통해 본 조선시대 음다풍속 고찰 - 藥用을 중심으로 - (韓國茶文化 제5집)
         조선시대 황차(黃茶)의 음용 양상과 전승 연구 (석사학위논문)
        조선시대 文獻에 나타난 茶의 약리적 활용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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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文獻에 나타난 茶의 약리적
활용에 관한 연구 
유 동 훈

목포대학교 대학원 국제차문화학 협동과정 (지도교수 조 기 정) 

<국문초록>

차(茶)는 중국에서 처음 음용되면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밀접한 위치로 인하여 동시대의 차문화가 직접 전래되었다. 중국 차문화의 영향으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까지는 중국과 유사하게 발전하였지만 조선시대 음다문화는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명대에 들어와서 주원장의 단차폐지령으로 인해 주로 산차를 중심으로 음용되고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동시대였던 조선시대 음다문화는 중국과 달리 산차(散茶)와 고형차(固形茶)가 공존하면서 전개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 음다문화에서 나타나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차를 약용으로도 음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조선시대에 저술된 많은 문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차를 소재로 창작된 시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고형차와 약용으로 음용하는 음다풍속은 조선시대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조선시대의 특징적인 음다문화를 조선시대에 저술된 문헌을 고찰하여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먼저 중국 명대에 저술된 다서(茶書)를 통해서 제다법과 음다법의 변화를 살펴본 후에 조선시대 차와 관련된 문헌을 중심으로 고찰하여 중국 음다문화와 구별되는 조선시대 음다문화의 특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중국은 명대에 들어와서 초청법(炒靑法)으로 산차가 만들어 지면서 음다법도 산차를 원형 그대로 우려마시는 포차법(泡茶法)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중국과는 달리 여전히 증청법(蒸靑法)으로 고형차가 만들어지고 음용되었다.

조선시대 차를 소재로 한 시문가운데 고형차의 음다풍속을 알 수 있는 시문들을 수집하여 분석한 결과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서 고형차의 음다풍속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후기에는 ‘만불차(萬佛茶)’, ‘죽로차(竹露茶)’, ‘보림백모(寶林白茅)’ 등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고형차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명대에 들어와서 송대의 점차법(點茶法)이 사라졌지만, 조선시대에는 가례(家禮)에서 차를 올리는 헌다(獻茶)의식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에 고형차의 음다풍속이 여전히 성행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가례에서 점차하여 차를 올리는 풍속은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었는데, 차를 구할 수 없을 때에는 헌다의식에서 끓인 물에 숟가락으로 밥알을 풀어서 올리는 것으로 점차의 형식을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풍속이 오늘날 까지도 계속해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헌다의식에서 점차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차를 약용으로 음용하는 음다풍속은 이목(李穆)의 『다부(茶賦)』, 이운해(李運海)의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 이덕리(李德履)의 『기다(記茶)』 등의 다서와 허준(許浚)이 편찬한 『동의보감(東醫寶鑑)』, 그리고 차를 소재로 한 시문의 내용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기다』에서는 작설차를 약재로 사용하는 것이 풍속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동의보감』의 편찬은 당시 조선에서 재배되고 생산되는 약재인 향약을 백성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동의보감』에서는 향약으로서 차의 활용이 잘 나타나 있는데, 차를 복약 · 처방 · 단방 · 외용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동의보감』에서 약재로 활용한 차가 고형차였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고형차를 약재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고형차의 음다풍속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기에 고형차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 차를 약용으로 음용하는 음다풍속이 성행하였던 이유는 차가 약재로 사용될 만큼 약리적인 효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으며, 국가적으로도 차를 향약으로 인식하고 백성들에게 널리 사용하도록 장려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난 차의 약리적 활용 사례들을 수집하여 오늘날 과학적인 연구 분석을 통해서 밝혀진 효능과 비교하여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선현들은 오랜 시간동안 경험적인 체험을 통해서 차의 약리적인 효능을 체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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