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졸산방에서 대경구 육계

경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제4회 세계차문화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루었다. 그것도 유료라는 구조를 가지고 진행되었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차문화계 역사상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76개의 부스가 손님들에게 정성껏 차를 내고 방문객은 유료 티켓으로 마시고 싶은 곳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것, 이날의 행사는 지금까지 차 행사장에서의 차는 늘 공짜라는 인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특별석 73청병

4회를 이어오면서 특별석 10만원과 일반적 1만원의 가치에 따른 구분된 찻자리의 형식도 정착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특별석에서 73청병과 특급 목책철관음을 내는 자리는 두 팽주가 각각 독립적인 자리를 가지고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내면서 손님을 맞이한 것은 이번 차회에서 특별한 이벤트로 보였고 손님 입장에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일반석에서는 부스에 따라서 왜 이런 자리가 일반석일까 하는 생각도 들만큼 기획과 실행이 좋은 찻자리, 외국인이 내는 찻자리 같은 흥미로운 자리가 많았다.

 

대만 손님이 자신이 만든 오룡차를 내는 모습

본 행사를 마치고 다음날 외국인을 위한 이벤트로 이복규 교수의 작업실에서 가진 라쿠다완 체험과 본인의 다완에 말차를 한 잔씩 마시는 것은 외국인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이복규 교수의 특강과 중국 사람이 내는 찻자리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맘갤러리에서 국악밴드 나릿

이날 또 하나의 이벤트는 작업장이 있는 갤러리가 청도의 대표 예술놀이터이면서 청도를 대표하는 여가문화향유 명소로 인정받은 맘갤러리”에 이벤트 전문 기업에서 무대를 만들어 국악 밴드 나릿 팀의 연주와 공연이 있었다. 이 시간에 예상 외로 손님들에게 축제의 분위기를 안겨주었다.

 

대만 다도 시연, 채옥채 회장

30일 오전 아사가차관

오전 1050여명의 외국 손님이 아사가차관 1층을 가득 메웠다. 3줄의 탁자에 모두 앉고 한국인은 옆이나 뒤에서 서서 행사를 지켜볼 정도다. 여기서는 첫날 행사 공연을 보지 못한 한국과 외국인들을 위한 자리로 중국 1팀 대만 1팀 그리고 장취호 연출을 하였다. 다법 연출은 모든 사람이 가까이서 손동작 하나하나를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 작년에 이어서 이번 행사도 이 부분은 모두 만족하였다.

박종현 대금 연주자는 장취호 연출자에게 대금 선물

 

황용골 차회 참석한 중국. 대만 차인

30일 오후 황용골 차회

필자는 늘 생각한 것이 황용골 차회만으로도 전국에서 손님을 유치할 수 있는 행사가 될 것으로 믿고 있는 데, 이번에는 외국 손님을 중심으로 한 차회가 되었다. 경주국제차문화축제가 성공적으로 될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신 외국 분들에게 답례와 같은 차회다.

연하지실에서 73청병

모두 7개의 장소에서 7가지 차를 내었다.

특별히 순번은 없지만 5명 또는 6명씩 조를 짜서 방마다 다니며 차를 마시는 것인데 이 방식은 오래전부터 전국에서 많이 하고 있는 형식이다.

김이정 대표 차실, 92년 안계철관음

하지만 황용골 차회가 다른 곳과 다른 점은 집 주인이 다른 한옥 세 곳에서 서로가 문을 활짝 열고 7개의 찻자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국내외 적으로 만나기 어려운 토픽감 차회다.

 

매죽헌에서 녹차

이 집의 중심으로 볼 때는 강선생 집(수졸산방)에서 홍선생님은 무이암차를 이재란 선생님은 우리나라 녹차를 내는 방에서 차를 내었다.

삼쾌정에서 말차
윤지헌에서 2012년 노반장

김이정 관장의 집에서는 두 자리가 있는데 윤지헌에선는 박임선 선생이 2012년 노반장을 내었고, 아사가 김이정 대표 차실에서는 92년 철관음을 내었다.

유암에서 83년 동정오룡

그리고 뒷집에서는 김은호 회장님의 연하지실에는 73청병을 내고 차실 유암에서는 83년 동정오룡을 내었다. 세 집이 문을 모두 열고 차회를 하였다. 6시가 넘어서자 주변이 어두워졌는데, 마당에서 본 마지막 찻자리의 불밝힌 방들은 마치 차실의 기운이 넘실대는 듯 하였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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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4회 경주세계차문화축제

4회 경주차문화대전이 928일 경주 보문단지내 호반 일원에서 개최 된다. 행사장 내의 찻자리는 보이차석(70년대)과 일반차석으로 나누어진다. 상세한 안내는 다음과 같다.

 

4경주 세계 문화 축제

 

일시:2019.9.28()

장소:경주 보문관광단지내

시간:10:30~18:00

 

<찻자리>

1. 특별석: 보이차석 (70年代) 73청병,

              2009년 춘차 목책철관음 '특등': 향산재, 호중거

보이차석(73청병 찻자리) 2018년 자료사진

2.일반차석

해외차석(중국.대만.일본.스리랑카 태국)25

국내차석(경주.부산.울산.대구.포항.김해.진주)35

 

<시연및 연주, 공연>

당일 무대시연 및 연주, 공연

.한국:불수선차,정립가루차행다례

숙우회선차

.일본:말차

.중국:장취호,다예연출

.대만:고금연주 및 다예연출

.연주:가야금.대금.피리.해금.타악

 

보문호반을 중심으로 대명리조트~스타벅스 입구까지 찻자리배치 (해외와 현지인들윽 찻자리 소개)

 

차 종류에따라 입식과 좌식으로 배치

 

티켓판매

70年代 보이차석 ''73청병''

2009년 목책철관음 '특등'

₩100.000

 

.일반차석

10,000

(티켓 한장으로 60차석중 3

에서 차를 드실수있습니다)

 

티켓판매및문의처:아사가차관

054-741-1218

.운영위원장 010-2813-2050

.부위원장. 010-6535-6251

 

업체부스

1.남촌도예 (서무성)/도자기

2.모동도예 (윤관영)/도자기

3.상명요 (이효림)/도자기

4.수도예 (김승일)/도자기

5.양인학공방(양인학)/도자기

6.예전도예 (김서진)/도자기

7.대왕도예(김종대)/도자기

8.도계요(강준호)/도자기

백암요/청학도방=찻자리

 

.한국금당=서울/은제품

.상선암=하동/녹차

.선돌마을=하동/대용차

.무애산방=하동악양/후발효긴압차

.감산다향=경주/발효차

.혜수옻칠연구소=경주/옻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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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창 23g

                                

한 달 전 한국 보이차 마니아의 세계에서 골동보이차 차회가 열린다는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유는 차회에 참석하는 비용이 260만원이라는 고액인 점과 보이차 중의 최고 왕좌격인 복원창과 홍인을 시음하는 차회라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810일과 11일 이틀간 이루향서원에서 열린 차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차회를 위해 준비한 차탁

 

차회 이름이 골동보이차 차회인데, 2018년 현재 국제적이면서 공개적인 차회로는 가장 비싼 차를 마시는 차회로서 참석자는 대부분 정품 홍인의 맛은 어떤 맛인가?

 

복원창은 구경도 하기 어려운 차의 내비를 확인하고 맛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대단한 기대를 하고 참석하였다. 그래서 명성에 어울릴 만큼 찻자리의 격으로 살펴보는 것은 뒤로 하고 차와 찻물을 끓이는 도구와 찻잔이라는 최소한의 범주에서만 보겠다.

 

10일 차회 팽주 순서는 김경우, 정진단

11일 차회 팽주 순서는 정진단, 김경우

 

진화생물학 박사이면서 <맛의 과학> 저자인 밥 홈즈(Bob Holmes)는 그의 저서에서

맛에 관심을 가진다고 부자가 되진 않지만 삶이 깊이 있어진다. 왜냐하면, 맛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차 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1920년대 복원창 자표(紫票) 내비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늘 맛이 어떠한가를 다섯가지 맛으로 비유한다. 홍인의 맛이 어떠한가?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은 필자로선 다행스럽게도 정말 고급지게 잘 익은 차, 잘 익었지만 산화가 좀 진행된 차 등으로 오랜 기간 전국에서 여러 소장가의 배려로 다양한 맛을 익혀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름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최상급의 차와 중간까지 맛에 대한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복원창은 이때 까지 두 곳에서 세 번을 마셨는데, 가장 맛있게 마셨던 경험이 10년이 넘도록 맛을 기억하게 했던 것은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차회를 위해서 복원창을 매입하는 것은 공동주최자인 '골동보이차' 김경우 저자가 오랜기간 복원창을 마시면서 소장한 분께 양도 받은 차였기에 차회를 알리는 글에서 필자의 이름을 걸고 힘을 실을 수가 있었지만, 차회가 다가올수록 필자가 온 몸으로 느낀 그 맛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했다.

 

10일 첫날 1830

 

7582, 73청병 내는 시간

 

k증권 김해준 대표와 함께 참석한 임원 9명과 함께 기록자로서 중국에서 온 다도 잡지 기자와 같이 시음할 수 있었다. 홍인은 무지홍인에서는 만날 수 없는 고유의 장향을 체험할 수 있었다.

 

김해준 대표

 

찻잔에서 베어나온 향을 서로 확인하며 즐기는 그 모습은 평소 골동보이차를 마셔왔었던 팀들의 모임이라서 맛의 이해도가 달랐다. 또한 자신들의 차와 비교해서 맛과 향을 즐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차 맛을 한층 더 돋우었다.

 

홍인과 복원창 내는 시간

 

차꾼들이 선수 소리를 들으려면 오랜 기간도 필요하고 경험도 중요하다고 본다. 특별한 경험은 일상에서의 경험보다 비중이 다른데, 사실상 트레이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특별한 경험은 상당히 그 비중이 크다. 그러한 트레이닝을 통한 신청자들은 스스로도 골동보이차를 수집하고 또 나누며 차회를 진행해 오는 팀이기에 선수들끼리 만난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좌중의 기대하는 기분으로 복원창을 만나 노차의 진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달까? 모두 감탄하면서 이런 시간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스스로의 위안과 대화의 내용도 한 몫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평소 차에 대해서 만큼 높은 수준의 차를 체험하고 다른 분야에서도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전반적인 대화의 내용 속에는 노차를 10년 이상 소장하면서 즐기는 맛을 서로 공유하는 모습이 나타나니 서로 배운다는 말이 어울리는 그러한 자리가 꾸며졌다.

 

중국에서 참가한 분

 

11일 두 번째 날에는 중국에서 온 두 분의 소개를 먼저 하겠다.

 

정진단 원장이 위쳇으로 골동보이차 차회를 알린 것을 본 보이차 애호가 한 분이 참석희망을 알렸을 때 금요일은 이미 예약이 끝나 자리를 마련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왕강 회장에게 연락이 가서 함께 온 분인데, 처음 금요일에는 정원이 찾다고 하니 참석하여 차는 마시지 않고 참가비만 내고 분위기만 보고 가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진실로 일반 차꾼을 넘어선 선수 입장의 의미였다. 그렇게 모시는 것은 중국에서는 가능할지 모르나 이곳은 대한민국이라서 결코 그렇게 모실 수는 없다하는 와중에 아주 다행하게도 토요일 저녁 비행기가 확인되어 토요일 참석자로 배정 받은 분이다.

 

극과 극이 만난 자리

 

복원창을 소장한 분도 참석하였다. 노차를 늘 마셔온 분이기에 내비에 따른 다른 맛을 볼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했는지 모른다. 그 외 한 분을 제외하고는 골동보이차에 대한 이해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런 참석은 선수들보다도 오히려 용기가 더 필요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공인받은 자리에서 정확한 차품을 특별한 경험으로 체득할 수 있기에 늘 즐기며 차품을 논하는 분들의 처음 시작이 바로 경험코자 하는 용기였기에 솔직히 반가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참석자 두분을 제외하고는 이 골동보이차를 처음 만나는 특별한 경험의 장이 되었고, 이름만큼 유명한 차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 그 날의 시간적 공간적인 명제였다.

 

7582, 73청병 내는 시간

 

그래서 차를 내는 분들이 마음의 여유를 조금은 가지고 상세한 설명을 하면서 차를 마셨다.

 

처음 두 가지는 워밍업으로 마셨다. 워밍업으로 마시는 차는 세세한 가치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차의 장점을 살펴보고 평소 자신이 마셔온 차, 또는 다른 곳에서 이름만 듣고 마신 차와 비교하면서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시간이다. 보관의 장소, 시간 등등이 모두 보이차를 이해하는데 공부하면서 겪어야 하는 과정의 차일 수 있다. 그래서 고급 차회에 이런 차들이 워밍업 용으로 나온다는 점도 이해를 하면 좋겠다.

 

홍인과 복원창 내는 시간

 

중요한 것은, 이날의 홍인과 복원창인데 두 번째 날의 분위기는 정말 말로만 들었던 홍인의 맛을 확연하게 기억하고 복원창의 그 장렬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그 모든 감평을 눈과 입으로 맛을 기억할 수 있었던 행운의 날이었다.

 

평소 말로만 들어온 노차의 진미가 이런 것인가에 대한 그 모든 찬사를 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될 뿐, 몸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필자도 정말 오랜만에 그래 이 맛이야!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지막히 흘러 나왔다.

 

다행스럽게로 이번 차회가 가장 빛날 수 있게 보이차 중에 최고가 복원창이라고 하는 말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고 할 만큼 최상의 차품을 참석자 8명 기록자 2, 특별 손님 왕강 회장 등이 다 함께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한 즐겁고 오랜 기간 이 시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복원창 21.99g

 

중요한 것은 골동보이차 저자와 함께한 시간, 차회 참석자 대부분이 홍인과 확연하게 다른 맛과 향, 엽저를 만져보았을 때의 손맛 아직도 튼실해 보이는 엽저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주었다. 다호 안에서 올라오는 향기는 홍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농익은 차의 향기가 더욱 익고 익어서 나오는 향이다.

 

차를 마시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상 하나는 알 수 없는 열감과 온 몸이 젖어 감을 느낄 수 있다.

 

기록자로서 하고 싶은 말은 골동보이차라고 하는 차의 가장 좋은 맛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노차의 진미는 하나다. 보관 상태에 따른 단단한 맛과 느슨한 맛의 차이는 있다. 이번에 마신 복원창과 같이 단단하면서 장열한 맛은 순도가 좋은 물질이 몸속에 들어오는 순간 세포가 알아서 잠긴 문을 스스로 열어주었기에 가능한 현상을 필자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50년 이상의 세월이 가면서도 꺾이지 않는 맛의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홍인, 동흥호, 경창호, 동창황기 등등의 차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서 그 세세한 맛이 나온다는 점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새롭게 생겼다.

찻물을 어떤 도구로 끓이고 우려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이 있었다면, 차를 마시기 위한, 찻잔의 규격 통일의 필요성은 조금 간과한 것 같다는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 찻잔의 아름다움 만으로 궁극의 맛, 그 차이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회를 마치고 기념 촬영

 

같은 차를 이틀 연속으로 팽주가 다른 차 맛 까지도 비교하면서 시음한 이번 차회는 매우 오랜만에 경험한 자리로서 소중하고 특별한 기회를 얻은 시간이었다.

 

보이차의 깊고도 넓은, 세상의 산물과 시간의 결과물을 눈으로 보고 우려서 맛을 탐구하면서 매우 숙련된 차인의 손에서 얻을 수 있는 차 맛의 최상급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그 자리에 초대되어 기록의 기회 더 나아가 차를 시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기에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석우.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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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싹차인 2018.08.20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대단한 찻자리였을 것 같습니다.
    차회 기록을 남겨주신 덕분에 그 자리의 생생함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 합니다...! 공들여 기록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 수미산 2018.08.21 0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부러운일인입니다.
    차회를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했는데 고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또 온다면 참석해보고싶네요~~~-((()))-

  3. 다원 2019.07.28 0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회를 열고 싶은데 회원부족으로 아직 미지정입니다ㅠㅠ
    국산수제차를 매넌 만들어서 즐기고 있습니다 ㅠㅠ

사진(73청병과 88청병)

 

9월 25일 저녁, 오랜만에 안국동차관에서 K 증권 임원들과의 차회가 열렸는데 필자도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이런 자리에서는 늘 잘 보관된 노차의 향미를 볼 수 있어서 즐겁고, 또 이런 마니아들의 손에서 나온 차가 반가워서 같이 자리 함에기꺼울 뿐이다.

 

처음엔 차관에서 내는 차로 무이암차를 마셨다. 두 번째부터 K 증권에서 준비한 소장품으로 마셨는데, 처음에는 88청병을 두 번째는 73청병을 마셨다. 이날은 평소와 다르게 중국의 차인들과 함께 하는 자리였다. 정진단 대표의 친구인 이슬님과 그의 제자들이 함께 했는데, 인원이 20명이라서 양쪽에서 차를 내었고, 정 대표와 이슬님이 각각의 다호에 차를 우렸다.

 

안국동차관 마당에서 20명의 차회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이 차에서 나타나는 이런 맛을 우리는 좋은 맛, 깊은 맛으로 구분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고, 또 그 향과 맛에 대하여 제각기 자신의 관점을 말하던 중에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기고 했다. 혹여 이 자리에 같이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런 차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거나 마셔본 경험이 적을 경우 우리와 같은 기분으로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또 새로운 세계를 함께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또 다른 차의 찻잔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마신 차는 김해준 대표 소장품으로, 60년대 운남성 찻잎으로 만든 광운이다. 이차는 필자도처음 마신 차다. 60년대 광운이 좋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운남성 찻잎으로 만든 것을 처음 만났다.  

 

필자가 앉은 방향에서는 오른쪽에 앉은 이슬님이 내는 차를 먼저 마시게 되었는데, 이슬님은 차를 내기 전 차호 안에 차를 넣고 흔들어 차향을 맡게 해주었다. 그 향기가 광운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노차의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각 분야에서의 마니아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들의 식견과 대화의 내용이 맛을 또 한 가지씩 이어 만들어가기도 한다.

 

유행이 되기 전에 경험한 사람은 외롭고, 유행 중에 바라보며 자신이 높은 곳에 홀로 있다는 외로움도 있다. 유행 후에는 스스로 외로운 것이 마니아인데, 그들이 자진해서 공유하면서 즐기는 시간은 과연 무엇과 비교할수 있을까?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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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회장, 소녹인칠자원차(73청병)을 준비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

 

아사가 차회에서의 특별한 만남, 이날 100회 기념 차회를 마치고 뒷풀이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게 되면서, 아사가 차회는 경주라는 지역성을 벗어나 한국을 대표할 차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제부터는 한국에서 유료 차회의 기준은 2015516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질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차를 마시는 모임이 100회 달성했다면, 다음부터는 100회 이전과 이후의 차회 모습을 기대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100회 기념 차회를 위한 특별 연주, 고쟁과 얼루 연주(동영상)

 

이것이 좋은 모델이 되어 한국의 차관문화를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게도 된다. 또한 차관 문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차 한 가지만으로는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이날 차회를 모두 마치고 김은호 회장은 아사가 차관의 김이정 대표에게 ㅡ회원 일동의 이름으로 공로패를 수여했는데, 비록 상업성 차관이지만 차관 운영을 문화적으로 발전시킨 공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사가차관의 회원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차인의 한 사람으로 마음속 깊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한국향도협회 정진단 회장 찬조출연(향도 체험)

 

이날 차회는 서울, 대전, 천안, 대구, 울산, 부산, 포항, 청도 등에서 모두 108명이 설레는 마음으로 모였다.

한국향도협회에서는 정진단 회장과 이사(장정희, 전재분, 이경숙, 최송자) 님과 정숙영, 이채로아, 이향지 님이 참석했다. 부산에서 김봉건 교수, 강옥희 금당차문화회 회장 등이 참석하였다

참석자는 크게 A조와 B조로 나누었고, 시작하는 팀도 10시부터 시작하는 A조와 1시부터 시작하는 B조로 나누었다. 그런데 A1차가 일찍 도착하여 940분부터 김은호 회장의 73청병 찻자리가 시작되었다. 김은호 회장은 개인 소장품과 소녹인칠자원차(73청병)의 한통에서 꺼낸 차를 보여주고 보이차의 장점에 대한 충분한 해설을 겸하여 공부가 되는 차회를 열었다.

 

차관 2층, 향도체험과 악기 연주, 말차시음

 

자사차통, 향통, 향합, 상아차측, 은향합, 주전자

호반길에서 봉황단총 찻자리, 선지원, 이슬기 모녀 <문사차회>

 

이슬기 학생의 차 내는 모습

 

두 번째는 차량으로 이동하여 호반길 봉황단총 찻자리에 갔다. 풍광이 아주 좋은 곳에서 현수막을 치고 선지원 씨와 그의 딸 이슬기 씨가 <문사다예>를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이번 다예를 하는 목적과 방법에 대한 설명을 어머니 선지원 씨가 하고, 이슬기 학생은 개완으로 봉황단총 송종을 우려내었다. 그 사이에 선지원 씨가 탄배향이 나는 봉황단총 송종으로 시원한 냉침을 준비하여 먼저 마시게 해주었다. 이 모녀의 차사랑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어머니의 차 생활을 보고 자란 대학생이 중국 품평사와 다예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동양의 차가 서양인들과 융합될 수 있는 찻자리를 연구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문사다예 동영상

이재란 씨의 말차 접대

이재란 씨의 말차 방, 동영상

세 번째는 다시 차관으로 가서 팀별로 움직이는데 필자는 이때부터는 자유롭게 다녔다. 2충에는 말차 방과 향도 체험 방이 있는데, 향도는 한국향도협회 정진단 회장이 찬조 출연으로 108명 전원에게 팀별로 향도 체험을 할 수 있는 자리였다. 네 번째는 2층 햇살이 잘 들어오는 방에서 말차를 마시는데 일본식 차실로 준비된 방이다.

이곳에서 이재란 씨가 로에서 물을 끓여 말차를 준비하고 시자 역할을 하는 분이 손님께 차를 가져다 놓는 역할을 하면 손님은 말차를 마시는 자리다. 다식은 송화다식과 무우정과다. 지난해 100인 차회와는 다르게 대기 조의 휴식 공간의 찻자리가 준비되었는데, 그 자리는 경주 이영주 선생님이 자리를 잡고 손님을 맞이해 주었다. 

 

이영주 선생

용정차 우리는 모습

 

 자유석으로는 마당에 탁자로 준비했는데 용정차, 황차, 동정오룡을 준비하여 손님을 편안하게 대하여 차를 마시며 지인들과 담소하면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자리로 이번에 이 자리가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황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모습

인도 홍차 시킴을 마시면서 이야기 하는 김은호 회장 가족

홍윤숙 씨의 홍차 찻자리

 

마당 잔디에서는 좌식으로 자리와 방석을 깔고 손님께 차를 내는 자리가 있었다. 홍차는 입식으로 준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좋은 차를 맛있게 마셨다고 소문난 자리가 되었다. 필자가 마신 차는 인도 시킴 홍차다. 바쁜 와중에도 잔 하나하나를 모두 예열하여, 수제로 만든 호도파이, 마카로니, 포도, 치즈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무일스님과 소천 선생

 

1층에서 김은호 회장과 같은 차인 73청병을 내는 곳이 하나 더 있었다. 그곳은 정해사 무일스님과 소천 선생과 함께 손님을 맞이한 자리로, 좋은 보이차 뿐만 아니라 소천 선생의 차에 대한 인문학적 설명을 들으면서 차와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다.

그동안 고생 많이한 수석팽주

찻자리에서 만난 학교 동창의 밝은 미소

 

마지막으로 녹차를 마시는 찻자리인 보문정 정자로 가는 팀과 동승해서 갔다. 그곳에는 우리가 차회에서 늘 보는 수석 팽주가 도곡 정점교 백자 다기 세트를 준비하여 우리를 미소로 맞아 주었다. 이곳에서는 하동녹차를 준비했다고 한다. 우리 녹차를 고백자 다기로 우려내는데, 수석 팽주와 학교 동창이라고 하는 분이 참 곱게 나이 들었다며 미소 지으며 차를 내었는데, 팽주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대금연주

 

정자 내에서 울린 박 선생님의 대금 연주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찻자리에서 빠지면 안 될 음악을 선사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차회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참석자의 공정한 경품 추첨까지 끝마쳤다.

아사가 차관의 모든 회원은 봉사하는 자세로 자신의 역할이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이 참가한 많은 분들께 마음으로 다가갔기에 성공적인 차회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아사가 차관 김이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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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하루 전날에 도착한 일행들은 황용골에서 잠자기 전에 강 선생님이 내어준 70년대 보이 산차와 다음날 아침 630분에 마셨던 용정차 맛을, 아사가 차회의 특별한 찻자리와 함께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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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오늘날 인급 호급차를 제외하면 보이차 매니아에게는 아주 고급차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가격 또한 인기만큼 높다. 그런데 이 차의 출생을 두고 여러 말이 분분하다. 73청병이라는 이름을 두고 연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이들이 여러모로 말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현재 일부에서는 80년대차라고 하는 추측과 확신이 어우러진 상태이다. 여기에 김 경우 씨는 정식으로 반박하는 입장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김경우 씨의 논거에 보편적인 동의를 하고 실제 제작 연도에 대해서는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김경우씨가 정리한 자료를 석우연담에 올린다. - <석우>

 

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홍콩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이며 대만 옥호헌(玉壺軒)에서 통째로 매입하여 유통한 차이다. 옥호헌에서 수입한 차는 7542(501)이라고 한다. 다음은 옥호헌 대표 황슬금(黃瑟琴, 72)씨의 구술 내용이다. “1973년 가계 오픈 후 처음에는 자사호를 수입하여 싱가포르, 태국 등지를 역 수출하는 영업을 하였다. 자사호 때문에 중국 의흥을 가기위해 늘 홍콩을 경유하였다. 1980년을 전후하여 홍콩을 드나들 때 당시 대만은 오룡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후 발효차인 보이차가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당시는 오래된 호급이나 인급의 보이차가 창고에서 나오기 전이였기 때문에 홍콩에서는 주로 10년 전후의 세월이 지나 약간의 발효가 진행된 생차 내지는 숙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1980년 무렵부터 조금씩 가져다가 판매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8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날 의안차장에 있는 7542(501)가 눈에 들어왔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돈과 친구에게 빌린 돈을 합쳐 2000천만원(대만돈)을 투자하여 7542(501)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수입할 당시 자료가 부족하여 홍콩에서도 정확한 연도는 몰라 본인 생각과 홍콩 의안차창에서의 말을 종합하여 70년대 초반차라는 결론을 내리고 단순한 생각에서 생차 계통이니 73청병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현재 시중에서는 73청병의 생산 연대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한 때 73청병이 싸여진 바닥에 신문지가 있었는데 신문지의 날짜가 민국 73(서기 연도로는 플러스 11년을 하면 됨)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기 1984년 생산 된 차로 언급되면서 인터넷이나 단행본에서 1984년 생산된 차로 사실로 기정사실화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왜곡된 정보이다. 황슬금씨의 구술에 의하면 신문지와 민국 73년이란 말은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알 순 없으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라고 한다.

 

73청병은 대만 옥호헌에서 홍콩의 의안차창에서 나온 차를 수입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부산의 녹백다장에서 수입하였다. 녹백다장 최윤석 대표의 구술에 의하면 “73청병을 수입하기 위해 통표를 살펴보니 7542(503)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73청병은 7542(503)이며 최윤석 대표는 73청병의 발음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073청병(공칠삼청병) 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영남지역에서는 73청병을 073청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73청병을 1975년에 만든 차로 추정하는 이유로는 황슬금 대표와 최윤석 대표의 구술 내용뿐만 아니라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근거에 의해서이다.

 

내비에 표기된 글씨가 이를 뒷받침한다. 맹해차창에서 생산 된 차의 내비에는 서쌍판납태족자치주 맹해차창출품(西双版納傣族自治州 勐海茶廠出品)이라고 표기되어져 있다. 여기에서 출()자의 위쪽의 산()자가 아래쪽의 산()자 보다 좁아 뾰족하다. 이런 출자를 우리는 첨출(尖出)이라고 한다. 첨출 내비는 1970년대 생산된 차에서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위쪽의 산()자와 아래쪽의 산()자의 넓이가 같은 것을 평출(平出)이라고 하며 평출내비는 1980년대 이후 생산된 차에서 나타난다.

 

종이질감이 1970년대에 사용된 격문지(格紋紙)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격문지로 포장한 보이차의 종류가 없다.

포장지 중앙의 녹색 차()자의 인쇄 방법이 도장으로 직접 찍은 수인이다. 이렇게 직접 자를 수인으로 찍는 방법은 1980년대 차에선 볼 수 없고 오로지 1970년대에 생산된 차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73청병을 1986~1987년 무렵에 수입하였다. 당시 보이차는 10년 정도 발효된 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고 황슬금 대표 역시 이런 종류의 차를 선택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975년에 생산 된 7542(501)인 것이다. 하지만 큰돈을 투자하면서 1984년에 만든 차라면 만든 지 2~3년 밖에 안 된 차를 10년 이상 된 차와 구분하지 못하여 수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몇 가지 사실들을 근거로 73청병의 생산 연대는 1975년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7542로서는 최초로 생산된 차에 속하며 1975년 이후 7542는 계속해서 생산 되었을 것이다.

73청병은 홍콩의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로서 다른 차에 비해 높은 습도에서 보관된 차이다. 그러다보니 차에 따라 습기에 노출된 편차가 큰 차이다. 의안차장의 보관창고는 홍콩에서도 대표적으로 습도가 높은 창고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보관이 양호한 차와 습기에 노출된 차의 편차가 크고 바닥에 눌러져 있든 차는 매변이 심하게 발생한 차도 있다. -<끝>

 

1970~1980년대 생산 된 차들 대부분은 홍콩 보관창고에서 입창이 된 차들이다. 다만 입창의 정도에 따라 습기에 노출 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73청병은 대표적으로 입창이 강하게 된 차이다. 그래서 인지 습기에 노출된 차들이 많고 병면이 깨끗한 차들은 드물다. 습기에 노출됐더라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하게 거풍이 된 차는 농익은 맛으로 마시기에 편안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보관이 양호하고 병면이 깨끗한 차만 건창차로 인정되며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시장 질서이다. 체질에 따라서 마셔야 될 차가 다르고 선호하는 차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다는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10일 황슬금 대표와 김경우 대표

 

현재 보이차가 역 수출 되는 시점에서 가격 형성으로 본다면 73청병은 대표적으로 1970년대에 생산된 차가 분명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저평가된 차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현재 보이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중국 유통상인들의 이해 부족과 73청병을 마셔보지 못해 객관적으로 품질대비 가격을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접 마셔 본다면 동일한 연대에 생산 된 다른 종류의 차 보다 맛이 절대 뒤떨어지진 않고 오히려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에 따라 품질대비 가격 평가를 제대로 못하는 현실 속에서 다른 종류의 차에 비해 평가 절하된 안타까운 차이다.

 

73청병의 병면 외형 찻잎을 살펴보면 1980년대에 생산된 7542 계열의 차보다 찻잎의 크기가 작다. 오히려 7532 계열의 차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는 숫자급 보이차의 병배방식을 1974년부터 만들어 적용하였지만 생산 초창기이다 보니 기술적으로 완성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차의 무게와 찻잎의 크기가 7542라고 보기에는 작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 생산 된 7432, 7452, 7542, 7572, 7582 등등에서 대부분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며 찻잎의 크기에서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생산 10년을 전후하여 홍콩으로 들어 온 차[보이 생차, 숙차]들은 위 말처럼 당시 대만의 주요 차류로 인정받고 시장에서 판매가 되었던 것이며 그 중에서 80년 중반의 시기에 들어와 있던 7542(501)가 연도를 따져 73청병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니 지금 시중에 퍼져 있는 80년대 차라는 인식은 충분히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옥호헌 대표의 구술 내용처럼 직접적인 판매상의 증언이 있는 기록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김경우 씨의 보이차 관련 지난 기사

2015/03/25 - [인터뷰] 골동 보이차 유통의 전문가 김경우

2015/02/15 - 다미향담(155) 73청병과 97년 7542를 함께 즐기다

2015/02/02 - 다미향담(152) 황인 숙차와 1990년대 맹고의 조합

2014/02/20 - 대익보이차 영웅준마 런칭

2014/01/18 - 중국 대익보이차 서울 여의도점 오픈

2010/09/17 - 다미향담(2) 맛으로 승부하는 차

2010/08/09 - 말복에 마신 보이차와 오동단총

2010/04/15 - 혜산초당에서 만난 김경우 대표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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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보이맨 2015.04.10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3청병에 대한 종결판을 본 것 같습니다. 예민한 사안임에도 용기있게 발표해 주신 김경우 대표에 감사드리며 석우연담 독자로서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 Favicon of https://seoku.com BlogIcon 석우(石愚) 2015.04.11 1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이차에 대해서는 원천적인 자료가 중국에 있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자료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큰 거래를 하면서 뒷이야기를 듣게 되고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논거에 힘이 실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가까이에서 그런 점을 확인하고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2. BlogIcon 무지개 2015.04.11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간과하는 유통의 역사를 짚은 글이어서 공감이 됩니다.
    생산지인 중국도 중요하지만 소비와 유통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홍콩과 대만을 지나쳐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이런 뒷이야기들을 더 많이 취재,발굴하여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BlogIcon 하늘 2015.04.12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비자로서 73청병이 어떤 진실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하는 상인에게 저는 한표 던집니다

  4. BlogIcon 다담 2015.04.14 1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3청병이 70년대 차인가?
    ①첨출 내비는 1970년대 생산된 차에서만 보이는 특징이 있다. --- 첨출내비가 80년대 차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석우님 글에도 있습니다.

    중국 보이차 포장의 특징이라는 글중에 尖出、平出 첨출,평출 : 맹해차창의 차품 내비에 "서쌍판납 태족자치구 맹해차창 출품"이라 적혀 있는데,
    출(出)자중 위와 아래 山자의 크기가 같으면 평출, 위의 산자가 작으면 첨출이라 한다.
    첨출은 조기 맹해 차창의 차품 특징으로 칠자황인부터 73청병이 모두 첨출로 기간은 1973~80년대 중기까지이며 후에 2001년부터 차상인들의 주문제품시 다시 출현하였다.

    ② 종이질감이 1970년대에 사용된 격문지(格紋紙)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격문지로 포장한 보이차의 종류가 없다.--- 격문지 80년대 차에서도 존재를 합니다.

    ③ 포장지 중앙의 녹색 차(茶)자의 인쇄 방법이 도장으로 직접 찍은 수인이다.
    이렇게 직접 茶자를 수인으로 찍는 방법은 1980년대 차에선 볼 수 없고 오로지 1970년대에 생산된 차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수인도 80년대 차에서도 존재합니다.

    ④ 마지막으로 73청병을 1986~1987년 무렵에 수입하였다.
    당시 보이차는 10년 정도 발효된 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고 황슬금 대표 역시 이런 종류의 차를 선택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975년에 생산 된 7542(501)인 것이다.
    하지만 큰돈을 투자하면서 1984년에 만든 차라면 만든 지 2~3년 밖에 안 된 차를 10년 이상 된 차와 구분하지 못하여 수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1,2,3번은 사실적인 근거로 가능하지만 4번은 단순 추측일뿐입니다. 73청병이 최초의 건창보관차라는 이름으로 고가에 팔았다는 사실도 생각을 해봐야 하구요.
    상인이 자신의 차를 년도를 속여 늘리는 경우는 허다해도 줄이는 경우는 희박합니다. 바로 돈과 연관이 되기때문이죠..이것 또한 저의 생각일뿐입니다.

    한가지씩 해당하는 차품은 많이 존재합니다. 3가지 모두 해당하는 80년대 차품을 하나들자면
    진지동의 책중에 80년대 청병 가운데-격자문 포장지-수공개인-첨출자-3가지 요건을 충족하는차 = 칠자소녹인 소비표준판이라는 차가 있습니다.

    • 초정 김경우 2015.04.15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다담님!
      저는 보이차 유통을 하는 서울 "명가원"의 김경우 입니다. 다담님이 아닌 일부에서는 제가 73청병을 팔기 위해서 글을 쓴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셔서 말씀 드립니다.
      제가 보이차 유통을 하지만 저는 73청병을 단 한편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73청병을 띄우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글을 쓰겠습니다.

      1번에 대한 답변은 석우연담에 80년대에도 첨출 내비가 있다는 부분은 각자의 견해이기
      하지만 첨출내비의 거의 대부분은 70년대 차임을 전문 유통인들은 인정을 합니다..
      이부분은 아래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2번에 대한 답변은 격문지는 80년대 차에서도 존재하지만 73청병에서 보이는 70년대 차의 격문지와는 종이질감에서 차이가 나며 다릅니다.(이야말로 많은 유통의 경험이 뒷받침된…)

      3번에 대한 답변은 80년대 차에서 보이는 수인과 73청병에서 보이는 수인은 엄연히 다릅니다. 73청병 수인의 특징은 차자 바깥쪽에 사각형의 테두리가 있습니다. 이점이 80년대 수인과의 차이점입니다.

      4번에 대한 답변은 단순 추측이지만 이것보다 정확한 고증은 없겟지요. 더 정확한 고증이라면 맹해차창에서 73청병에 대한 생산 기록이 있으면 누구나 인정할수 밖에 없지만 아쉽게도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또 한가지 85년 전후에 생산된 차 중에서 73청병과 엇비슷하게 발효된 차가 없습니다. 저는 유통을 하면서 많은 차를 보고 마셔봤지만 단 한가지라도 85년 전후에 생산된 차 중에서 73청병과 견줄 수 있게 발효된 차를 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결론에 대한 답변은 진지동 저 심수적칠자세계에 의하면 80년대 첨출내비로 표기된 차는 말씀하신 칠자소녹인 소비표준판은 80년대 초기로 표기되어 있지만 종이재질이나 병면 상태 차의 맛으로 보아 앞페이지에서 언급하는 70년대 차와 동일한 시기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통표에서도 503으로 되어 있는데 그럼 다담님이 생각하시는 1985년 생산품이 되는데 앞페이지에서 소개된 중비표준판도 1985년 차로 표기되거나 80년대 초기로 표기되어야 일관성이 있을것입니다. 또한 503으로 표시되어져 있으니 1975년 생산품 아니면 1985년 생산품이 되는데 실제 차 연도 소개에서는 80년대 초기로 되어 있다는 것은 오류라는 증거입니다.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때는 85년은 초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수적칠자세계에 의하면 80년대 중반까지 첨출내비로 표기된 차는 7572 소구중 두 종류입니다. 두 종류는 80년대 초기 중기로 표기되어 졌지만 이 또한 80년대 차라고 단정 내릴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당시 맹해차창에서 생산직후 바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합니다. 당시는 크게 차가 팔리지 않은 시기인지라 차를 생산하였지만 바로 포장하지 않고 이후에 포장한 차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차로 황인 계열에서 팔중황인(녹자황인, 팔중황인은 60년대 말 모차로 70년대 초반에 긴압한 차로 알고 있습니다.)도 예가 됩니다. 또한 온전한 한통속에 7572를 해체하면 대구중과 소구중이 섞여 있다는 것은 7572를 만져본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대구중은 70년대 말 차로 소구중은 80년대 차로 알려졌지만 한통속에 두 가지가 섞여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홍콩에서 재포장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맹해차창에서 처음부터 섞어서 포장했을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지동저 심수적칠자세계에 표기된 80년대 초기 소구중 7572 첨출내비는 제다법이 조수발효 시킨 차입니다. 조수발효시킨 차는 80년대 차 중에서는 이 한 종류 밖에 없습니다. 이 점이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80년대 초기 중기로 소개된 7572지만 70년대 차로 추정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을 말씀 드리면 지난달에 진지동씨와 인터뷰 하면서 본인이 했던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온지가 2005년도이다. 당시 자료가 부족했던 시기인지라 일부 오류가 있다는 점 본인이 알고 있다. 그리고 심수적칠자세계에 나오는 차를 모두 마셔본 후 결론에 따라 연도가 표기되지 않았기에 오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심수적칠자세계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차가 자신이 소장한 차가 아니기에 연도에 대한 정확한 검증은 할 수 없었다는 점 등이 서로의 대화 내용이였습니다.

      심수적칠자세계의 오류 한가지를 더 예로 들겠습니다. 심수적칠자세계 184p 칠자황인대병은 1950년대 차로 표기 되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포장지 상단에는 "운남칠자병차" 하단에는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로 표기되어져 있습니다. 이 차는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로 회사 명칭이 바뀐 1972년 이후로 봐야 맞지 않을까요?

      책을 저술하면서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류에 관한 부분을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대만이나 중국에서는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검증하지 못하고 우리 나름대로의 소신이 없다는 점이 늘 보이차를 접하면서 아쉽게 생각합니다.(참고로 90년 이전의 차를 가장 많이 소비하며 마신 나라는 한국입니다.)

      제 생각과는 견해 차이가 있는듯 하여 짧은 식견으로 몇 자 적어 보았으나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다담 2015.05.02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경우님 반갑습니다.
      먼저 기존의 널리 인정되는 내용도 틀린게 많다는 부분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이시라면 좀 더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어야만 기존 설을 덮을 수가 있다 봅니다.

      댓글 내용을 보면 객관적인 내용이라기 보기 어려운 부분들입니다.
      저도 주변에 10년, 20년,30년 보이차를 드신 다우분들이 존재하며 저또한 73청병을 높이 보지 않는 편입니다. 한번식 73청병 마시려면 전 말립니다. 다른 차 먹자고.... 상술에 의하여 높여진 대표적인 차중에 하나로 보는 편이죠.
      그러나 차의 진기가 70년대 차라고 하기는 어렵다는게 중론입니다.
      저 도한 70년대 중반 제품으로 보기에는 삽과 여러 미감이 맞지가 않습니다.

      서로의 의견은 다를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위의 댓글로는 73청병이 70년대 중반 차라는 것을 인지하기에는 자료나 너무 자의적이라 판단됩니다.

      진지동시 분만이 아니라 여러 책들이 잘못된 정보가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차인은 알고 잇습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틀린 건 아니죠.

      그리고 그런책도 사실 판매를 위한 상술의 하나로 보는 저에게는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제가 마셔보고 느껴보고 좋은 차가 좋은 차니까요.

      73청병, 88청병 저에겐 사실 좋다 말하기 힘든 차입니다.
      차라리 2000년 정도의 건창차 한편이 더 좋다는 입장이죠.

      40년정도 지난 좋은 이름없는 노차를 마셔보고 감탄을 연발하며 몇일식 차기를 느끼던 차와 비교하니 이건 가격도 말이 아니고...

      그냥 그들만의 리그구나 생각 합니다.

      이름 있으신분들이 한말은 건증을 통하지 않고 진실이되는 곳이 인터넷이며 무작위로 날라져 고착화 되는 곳이 이곳이죠.

      저 뿐만이 아니고 여러 다인들이 이해하기 충분한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해 주신다면 더욱 올바른 정보가 유통되는 인터넷이 될거라 봅니다.

      의견이 다르나 차를 좋아하는 마음은 같다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차 한잔 같이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요...
      저와는 상반된 의견들이 많으셔서 재미난 자리가 될거도 같습니다.

  5. 초정 김경우 2015.05.03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다담님.
    먼저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논담을 해주시는것에 감사드립니다.

    우선 73청병을 좋아하고 안하고는 개인적인 호불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여기서 논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물론 88청병도 건창차로서 가격을 너무 높게 평가시켜 놓았기 때문에
    여기서 논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되고요. 그리고 모두가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자료는 없습니다.

    첫째 가장 객관적인 자료는 맹해차창에서 나와야 하지만 맹해차창은 7542통표에서 (501), (503)나와 있을뿐 더 이상의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둘째로는 애초 차를 주문한 곳은 홍콩 의안차창인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료 추적은 어렵습니다.
    지금은 둘째 아들과 넷째 아들이 가계를 이어받아 영업하는데
    73청병이 창고에서 나왔던 당시 아들들의 나이가 열살 전후였으니
    현재의 구술은 크게 신빙성이 없습니다.

    셋째로는 73청병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유통하였던 옥호헌의 황슬금 사장의 구술 내용일것입니다.
    저는 두번째와 세번째 모두 직접 만나서 구술내용을 종합한 결과와 평소 제 소신에 따라 추론을 한 것이었습니다다.

    다담님 여기는 어디까지나 토론이기 때문에 크게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하고 몇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첫째 73청병을 몇 편이나 드셔보셨고 73청병을 몇 편이나
    만져 보셨는지 말씀해 주실수 있을까요.
    드신 차가 습기에 많이 노출된 차, 적당히 노출된 차, 습기에 노출되지 않은 차 세 종류를 골고루 드셔 보셨는지요?
    전 참고로 50편 전후의 73청병을 마셔 보았고 500편 이상의 73청병을 직접 만져버며 거래를 하였습니다.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로 객관성을 유지하자는 차원에서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맹해차창에서 처음 주문한 의안차창 가보시고 만나보시고 토론해 보셨는지요. 또 73청병 이름을 지었고 유통시킨 옥호헌 황사장님을 만나보셨는지요?

    마지막으로 다담님이 맞을 수도 제가 맞을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누가 맞든간에 왜? 라는 의문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라는 의문을 통해 관심과 연구를 통해 학문적 발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담님이 말씀하신데로 생각은 누구나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제안을 드릴까 합니다.

    첫째 제 글이 논리적이지 못하고 근거가 약하다면 이러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다담님 생각하신봐 데로 73청병이 80년대 차라는 가정하에
    누구든 이해 가능하게 근거에 의해 논리적인 글을 석우연담에 올리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아마 석우 연담에서도 반박의 글을 흔쾌히 올려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둘째 다담님이 주장하시는데로 차의 연대를 이야기 할때는 진기와 논리적 근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기를 이야기 할때는 실제 차의 발효정도가 진기를 판단하는 조건중 가장 우선인 것은 누구든 공감할겁니다.
    그래서 73청병이 80년대 차라는 가정하에 80년대 차 중에서
    73청병의 발효 정도와 견줄 수 있는 차를 한 가지만 선택하여
    같이 블라인딩 테스트를 해보면 어떨까요?
    그래서 73청병과 엇 비슷한 발효정도가 진행된 차가 있다면 저도
    80년대 차라고 인정하겠습니다.
    (저나 다담님이 인정한다고 변할것은 없지만요....)

    참고로 73청병의 현재 시장 가격은 80년대 차와 엇 비슷하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생산된 7572보다 싸고 80년대 초반에 생산된 설인보다 쌉니다. 80년대 중반에서 생산된 8582
    와는 가격이 엇 비슷합니다. 80년대 중반에 생산된 7542 보다는 조금 비싸고요. 80년대 후반에 생산된 88청병보다는 훨씬 쌉니다. 그리고 88청병이야 말로 중국사람들이 가격을 올려 놓은 차인 것은 분명합니다. 품질대비 가격면에서요.......

  6. 아리랑 2015.05.07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에서 오랜만에 좋은 글 봅니다.
    김경우 대표의 73청병에 대한 내용은 옆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관전 포이트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성의 있는 댓글에 독자는 감동합니다. 감사...

  7. 쿠쿠 2015.05.1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3청병에 대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김경우 선생님께 문의합니다. 선생님은 이 차를 많이 만져보고 유통도 많이 하셨다고 하는데 이 차는 입창한 차는 아닌가요? 7542는 입창차라고 하는데 73청병도 같은 계열입니까. 참 어렵습니다. 일일이 맛을 확인할 수도 없고. 아무튼 입창차와 습창는 조금은 다른 것 같은데요...

  8. 초정 김경우 2015.05.19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쿠쿠님
    73청병이 입창차냐 아니냐에 대한 답변을 먼저 말씀드리면 전부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유통되는 73청병 대부분의 차들은 입창이 된것이 맞습니다. 다만 차에 따라 습기에 좀 더 노출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뿐입니다.

    입창이냐 습창이냐는 시대에 따른 사용하는 용어만 변했을뿐 궁극적으로 차의 빠른 발효를 위해 창고 환경에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였다는 전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50년대에 차를 보관하든 방식은 의도하지 않고 당시 지는 집 구조의 구조에 따라 보관한 창고의 환경에서 높은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1970년대 이후로 넘어서면서는 그 동안 창고 보관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창고 환경에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이후에는 입창의 환경에서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 좋았든 단점을 보완 발전시켜 더 진보하였다고 보면 됩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입창을 시대별로 구분해보면 첫째 1950~1970년대까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입창의 조건에서 차를 보관하게 됩니다.
    둘째 1970~2000년까지는 의도한 입창으로 차를 보관하게 됩니다.
    셋째 2000년 이후에는 그 동안 경험을 통해 입창의 단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입창 보관하게 됩니다.

    73청병의 정확한 차 이름은 7542가 맞습니다. 7542지만 유통과정에서 73청병이라고도 명명이되었고 다르게는 소녹인대구중이라는 이름도 생겨난 것입니다.

    1970~80년대 사이에 생산된 대부분의 차 들은 입창이 시켰습니다.
    다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창고에서 보관된 위치에 따라 좀더 습기에 노출 된 차, 습기에 노출이 덜 된 차, 습기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차로 구분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크게 보이차가 시장에서 소비가 많지 았았든 시기인지라 홍콩의 몇몇 창고에서 대동소이하게 보관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습기에 노출되어서 맛이 부드럽게 변한것인지 아닌지는 차 병면 외형의 색상으로 구분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참고로 입창차와 습창차는 서로 맛이 다른것은 아닙니다. 차 마다 만든 연도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환경이라도 창고에 묵혀진 기간이 다르므로 습기에 노출된 편차의 차이에 따라 발효의 정도가 달라 서로 맛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예로 온도30도 습도85% 의 동일한 환경이지만 1년 있었든 차와 3년 있었든 차는 습기를 먹은 정도가 다르다 보니 발효 정도가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주셔도 됩니다. 연락처는 석우님께 물어 보시면 됩니다.

  9. tiaru 2015.07.15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3청병에 대해서는 이 이상의 내용을 만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 기고문도 좋았지만 댓글과 답변을 통해서 더 상세한 공부를 했습니다.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궁금해서 여쭙니다.
    이제 장마철이 다가오는데, 약간의 습을 먹은 차는 장마철에 어떻게 보관하면 좋은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병차의 표면에 흰곰팡이라고 할 수 있는 허연게 있어요 저는 이런 차를 많이 마셔왔기에 괜찮은데 요즘은
    좀 더 좋은 방식으로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에 문의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습을 먹은 차(90년대 후반에 만든 차) 흔히 말하기를 입창은 했는데 습이 많아서 포장지에 누른 자국이 있는 차입니다.

    • 초정 김경우 2015.07.15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흔히 입창차가 지니고 있는 습기는 너무 건조한 곳에 두어 한번에 빼낸 차는 차의 맛이 맹맹하면서 싱거워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습기를 빼내기 위해서 너무 건조한 곳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입창을 한 차들은 차가 습기를 지니고 있더라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서서히 빠져 나가면서 지니고 있는 습기에 의해 미생물이 활동하면서 발효가 진행되는 것과 습기가 빠져 나가는 시간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흔히들 이야기 하는 백상은 아직 정확히 과학적으로 규명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백상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주로 인용하는 자료는 2000년대 후반 광동에서 무작위로 샘풀 수거한 차를 검사 하였더니 아플라톡신이라는 독소 곰팡이가 검출되었다는 한가지 자료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샘풀 수거한 차의 공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정도 매변이 발생한 차인지 사진 또는 샘풀이 공개되야 하는데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기에 객관성이 결여됬다고 볼수 있습니다. 또한 아플라톡신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메주에도 검출이 되었다고 예전에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보이차 보관에서 특히 여름 장마철에 주의를 많이 기울이시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관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백상이 있는 차는 특이하게도 습한 곳에 두어도 습기를 인위적으로 공급하여도 더 이상의 매변 또는 백상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너무 빨리 습기를 빼내려고 하지 마시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서히 자연적으로 발효의 속도와 함께 습기가 빠져 나가도록 신경 써 주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차 73청병에 97년 7524를 중차(重茶)해 내는 모습(명가원 김경우 대표)

 

보이차를 섞어서 마시는 부분에서 명가원 김경우 대표가 아주 재미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29일 오전에 일찍 만나서 977542를 마시다가 맹해차창에서 생산한 73청병을 마시자고 했다. 약간의 습을 먹은 차이지만 맛이 좋다고 하면서 자사호에 73청병을 넣고 그 위에 977542를 섞는게 아닌가?

 

다시 이야기를 하면 필자는 73청병을 그대로 마시지 않고 왜 섞어요 했다. 그런데 김경우 씨는 내가 마시는 방법으로 한 번 마셔보지요 하면서 977542를 넣었다. 이러한 방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칫 잘 못하면 무슨 맛으로 보이차를 마시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가게 된다. 달리 표현하면 보이차를 아무 것이나 섞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김경우 씨에게 73청병과 같은 좋은 차를 그냥 마시지 않고 977542와 섞는 이유를 물었다. 그의 답변은 이렇다.

 

차라는 것은 타고난 본성이 제 각각이다. 지역에 따라, 찻잎을 따는 시기와 차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차의 본성이 결정된다. 하지만 우리는 차가 좋다 나쁘다라고만 할뿐 차를 다스려 마시는 경우는 드물다. 당연히 좋은 차는 비싸다. 잘 보관되어 충분한 발효가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그 차를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적은 돈을 지불하고도 얼마든지 차의 맛을 끌어올려서 마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섞어서 마시는 재미다.

 

오늘 마시는 73청병은 차가 습을 많이 먹었다고 볼 수 있는 차이다. 이런 차의 특징은 발효가 많이 이루어져 농한 맛은 있으나 쌩한 맛은 약하다. 차 마시는 시간이 오전이라 몸을 일깨우고 싶었다. 그래서 농한 73청병에 쌩한 90년대 후반 75422:1 비율로 섞었다. 이렇게 해서 마시면 80년대 초반 정도의 발효가 잘 된 차의 맛이 나온다고 한다.

 

차를 마시는 방법을 규범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 요즘과 같이 차가 귀한 시기에 좋은 차를 좀 더 농한 맛으로 즐기고자 한다면, 그만한 가치의 대가를 금전적으로 치루어야 한다. 그래서 그러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일 수 있지만 농한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다소 부족한 차를 서로 섞어서 단점을 보완하여 저렴하게 자신의 기호에 맞는 차 맛을 즐길 수 있다.

 

필자는 차를 마실 때 스스로 그렇게 해서 마시는 경우는 없다. 워낙 차를 마시는 취향의 폭이 넓어서 그런지 몰라도 되도록 어떤 차라도 그 차의 특성을 이해하며 즐기는 편이다. 이날도 손님의 입장에서 두 가지 차를 섞어서 마시는 효과를 경험한 것이다. 이렇게 마시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오늘같이 같은 두 종류의 청병을 보관

73청병을 먼저 놓고 97년 7542를 넣는 모습

 

상태에 따라 각각의 차로서는 좀 부족한 맛을 서로 섞어서 그 맛을 상승시켜 마신다는 부분에서는 개인적으로 여간 내공이 있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것이다. 이런 방법이 음식 메뉴 같이 레시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가 가진 세계는 무궁무진한 맛의 예술 세계를 경험하는 것과 같다. 김경우 씨는 자신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차란 즐기는 사람의 몫이다. 즐기는 사람이 그날 마시는 찻자리 분위기와, 시간에 따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 중요하다. 부족하면 채우면 되고 넘치면 비우면 된다. 차의 진정한 전문가라면 차를 잘 감평하는 것이 최고가 아니다. 감평을 할 줄 안다면 이것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즐기는 것의 주체는 내가 아니다. 상대방인 것이다.”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중요한 핵심은

차를 몰라서나 차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과정을 전부 겪고 난 후의 입장에서 김경우씨는 경제적으로 차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 이렇게 보이차를 섞어서 마시는 법을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혹여 독자의 잘못된 오해가 생길 것이 우려되지만 이런 방법도 있다는 점을 필자도 공유하기에 김경우 씨의 양해를 구하고 포스팅 한 것이다.

 

차를 내는 수준이 높고 내공이 쌓이면 개인적으로 맛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그 집에서만 맛보는 차, 그 만의 맛이라고 한다. 오늘 맹해차창 샌산의 73청병과 977542의 조화로운 맛은 김경우 씨가 주장하는 80년대 초반의 맛과 연계한 차 맛을 함께 공유하지는 못한다. 이유는 보이차를 섞어서 내는 차를 마시면서 80년대 차맛 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 만큼 수준이 안된다. 김경우 씨는 현재 보이노차를 국제적으로 거래를 하는 전문가로서 보이차의 품질 특성을 잘 아는 프로이기에 자신의 취향을 뚜렷하게 맛으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보이차를 종류별로 1020년 이상 발효된 차들을 섞어서 마시며 80년대 차 맛이라고 확정할 수 없지만 후발효차로서의 보이차 맛을 더욱 폭넓게 경험하는 의미에서는 아주 귀한 시간이었다.

 

다미향담에서 김경우 씨와 함께한 보이차 관련 지난 기사

2015/02/02 - 다미향담(152) 황인 숙차와 1990년대 맹고의 조합

2015/01/30 - 다미향담(151) 노차의 농밀한 맛, 황인 숙차와 함께

2014/12/31 - 다미향담(143) 다미향담 정리

2010/09/17 - 다미향담(2) 맛으로 승부하는 차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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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남성 곤명의 보이차 시장에서는 보이차 판매의 호황은 끝났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보이차의 보관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특히 2008년 부터는 보이생차 작업을 위해서 중국 상인들은 차의 보관과 판매에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한국 상인들은 고유 상표를 자신있게 알리거나 다른 상인들과의 구분을 위해서 비슷한 중량으로 비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별도의 규격으로 만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훗날 판매가격에서 높고 낮음에 대해 피해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전 보이차 규격을 기초로 하여 357g을 전후로 400g, 500g 중량으로 만들고 있으며, 특별하게 고수차라고 하여 1kg, 2kg 짜리까지 만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 복년차장(福年茶莊)에서 기고한 글을 죽천향실 블로그 운영자 죽천향(박창식) 선생이 번역한 글이 최신 중국 자료이기에 올려본다.

普洱茶的包裝與特征  作者:福年茶莊 작자:복년차장


傳統普洱餅茶規格單位,坊間亦稱”支”。一件十二筒,一筒七餅共八十四餅,整件;爭重30千克。近年普洱茶風盛行,茶餅重量與包裝多樣化,整件重量也隨之改變。

件건: 전통 보이병차의 규격단위로 민간에서는 "支(지)"라고도 한다. 1건은 12통이며 1통은 7편, 해서 총 84편인 1건의 무게는 약 30kg이다. 최근 보이차의 성행으로 차병의 중량과 포장이 다양화해지고 따라서 1건의 무게도 바뀌고 있다.

*** 1편 100g, 200g, 250g, 357g, 400g, 500g등, 또한 1통도 5편, 7편, 8편,10편 등 다양화 되고 있으며 1건도 전통적인 12통 1건이  아닌 6통을 1건으로 하기도 한다.


傳統普洱餅茶規格單位,一筒七餅茶,淨重2.5千克。2000年,昌泰茶行開始大量生產石模400克/餅,開啟茶品規格上另一新風格。

筒통: 전통 보이병차의 규격단위로 1통은 병차 7개, 무게는 2.5kg이다. 2000년 창태차행이 석모를 이용하여 1병 400g 규격의 차품을 대량생산하면서 새로운 풍조를 만들어내었다.

***현재 1통 5편, 7편, 8편, 10편 등 다양화 되고있는 추세이다.

竹殼包裝
又稱”竹箬”,20世紀60年代以前普洱茶傳統筒身包裝,早年采用雲南天龍竹、香竹殼做爲筒身包裝,此類竹殼較爲柔軟無剛毛。近年因銷售量大增,竹殼相對不足,以其他質地較硬、剛毛較多的竹殼替代。

竹殼包裝죽각포장 :竹箬죽약(대껍질)이라고도 함. 20세기 60년대 이전의 전통보이차 통 포장은 운남 천룡죽, 향죽의 껍질로 만들었는데. 이 종류의 竹殼죽각 포장은 비교적 부드러워 뻣뻣하지 않다. 최근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죽각이 부족하여 질이 다른 단단한 죽 껍질을 사용하거나 뻣뻣한 죽각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竹簸
將竹皮削成軟條狀,用以包紮筒身。20世紀60年代以前,爲傳統工藝印級古董茶所使用。1999年開始,在昌泰茶行”易昌號”開始大量使用後,又爲市場所認同。

竹簸죽파: 대나무 겉껍질(竹皮)을 부드럽게 하여 차를 담는 통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20세기 60년대 이전의 인급골동차의 전통공예에 사용되었다. 1999년 창태차행이 이창호에 사용하면서 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다.

牛皮紙包裝
最早應於1973年開始,國營下關、猛海茶廠用以外銷之茶品包裝,配合牛皮紙筒裝,成件包裝則改以紙箱(七子黃印、七子鐵餅、中茶簡體字、廣雲貢餅等等) 代表性早期茶品如七子黃印、中茶簡體字、七子鐵餅、中茶繁體字8653等等, 後期則以1997年茶商訂制茶品”老樹圓茶”。

牛皮紙包裝 우피지 포장 : 1973년부터 사용한 것으로 국영 하관, 맹해 차창 에서 수출 차품을 포장시 우피지로 1통을 포장했고 1건 포장은 종이 박스로 했다(칠자 황인, 칠자 철병, 중차 간체자, 광운공병 등)대표적 조기차품은 칠자황인、중차간체자、칠자철병、중차번체자8653등, 후기 1997년 차상 주문차품 인 ”노수원차”가 있다.

大票
廠方標示茶品品名、數量、規格、編號、重量等等,如同茶品說明書。

大票 대표: 차창에서 차품의 품명, 수량, 규격, 편호(일련번호), 무게 등을 표시한 것으로 차품에 대한 설명서이다.

直式大票
1984年以前計劃經濟時代,采用統購統銷制度,省公司旗下所有茶廠茶品居均交由省公司出貨,所以茶品大票均爲省公司名義,下書寫”中國土產畜產進出口公司雲南省茶葉分公司”,市場稱之”直式大票”

直式大票 직식 대표: 1984년 이전, 구매와 판매에 통일적인 제도를 실시하는 계획경제시절, 성공사 에 속한 모든 차품을 성공사에서 출하 시켰다. 때문에 차품의 대표에는 모두 성공사 이름으로 되어있고 아래부분에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라고 적혀 있다. 이를 시장에서는 "직식대표"라고 한다.

橫式大票
1985年以後,省茶司終止統購統銷的模式,廠方可自行接訂單,以致從此時開始大票由以前直式”中國土產畜產進出口公司雲南省茶葉分公司”,改爲廠別”猛海茶廠出品”、”下關茶廠出品”的橫式大票。大票上主要標示商標、茶品、嘜號、毛重、淨重、總箱數、廠別。

橫式大票횡식 대표: 1985년 이후 성차사에 의한 통일적 구매, 판매방식이 사라지고 각 차창별로 구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직식대표의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라는 명칭이 맹해 차창출품 , 하관차창 출품 등의 횡식 대표로 바뀌게 되었다. 대표에는 상표、차품、마호(마크번호)、모중(毛重 순수 차엽무게)、정중(총 중량)、총 상수(상자 갯수)、창별(차창명)이 표시되어있다.

外包紙
茶餅外包紙,坊間亦稱外飛。從外包紙質、印刷、印色、板模等等,可約略推測茶品制作概略時間。

外包紙 외포지: 차병의 바깥포장지로 외비라고도 부른다。외포의 지질、인쇄、인쇄색、판모등등으로 차품의 개략적인 제작시기의 추측이 가늠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筒票
早期茶品較多,置於筒內,每一筒一張。介紹茶品產區、品種、制作方式、功效或廠方說明等等。

筒票통표: 조기 차품에 많이 있다. 매 1통 안에 1장이 들어있는데 차품의 생산구역、품종、제작방식、효능 혹은 차창의 설명 등이 적혀있다.

內票
可能由筒票演變而來,內容類似筒票,每一餅均有,置於外包紙內。一般分爲大內票與小內票,大內票約15厘米×10.5厘米,小內票約13厘米x10厘米。

內票 내표 : 통표가 변화 된 것으로 ,내용은 통표와 유사하며 매1병의 외포지에 들어있다. 일반적으로 대내표와 소내표로 나누는데, 대내표는 약15mm×10.5mm, 소내표는 약13mmx10mm이다.

內飛
壓在茶菁中的廠方或訂制者標記,可作爲辨識依據。

內飛내비: 압재된 차청안에 차창이나 주문제작자를 표기함으로, 판별의 근거가 된다.

草紙
七子黃印、中茶簡體字、七子鐵餅、73青餅、早期紅帶青餅等等所使用的外包紙張。手工制作,條紋明顯,有厚薄之分,薄者居多。

草紙초지: 칠자황인, 중차간체자, 칠자철병, 73청병, 조기홍대 청병등에 사용한 외 포장지. 수공 제작이며 문양이 분명하고 두꺼운 것과 얇은 것이 있으며 얇은 것이 더 많다.

厚棉紙
以早期8582爲代表,跨期從20世紀80年代中期開始,直至1992年最後一批厚棉紙。其間生產厚綿紙7542、7532、8582、8592、7572等。其特色爲於工制作、單面油光、條紋不明顯,稍有厚薄之分。於1996年開始亦有廠家生產厚棉紙,然紙質差異甚大,容易辨識。

厚棉紙 후면지: 조기 8582가 대표적이며 20세기 80년대 중기에 시작되어 1992년 까지 이다. 이 기간 동안 생산된 후면지를 사용 차품은 7542, 7532, 8582, 8592, 7572 등으로 특징은 수공 제작이며 한 면에만 유광이 있는데 문양이 분명하지 않고 후박지와는 두께 차이가 있다. 1996년부터 다시 후박지를 사용하는 공장이 나타났는데 종이의 질 차이가 커서 분별하기 쉽다.

網格紙
應較厚棉紙稍晚出現,大約出現在1987_1992年間,8582、8592、7532、7542、7572等猛海茶廠常規茶品均有使用這類紙張,下關茶廠代表性茶品則爲1986_1987年間之86530其特征爲手工制作,紙張有明顯之網格點狀。

網格紙 망격지: 그물지(원고지). 두터운 면지 보다 늦게 나타났는데 대략1987_ 1992년간에
8582,  8592, 7532, 7542, 7572등 맹해차창에서 생산한 정규 차품은 모두 이런 종류의 종이를 사용 하였다.

하관차창의 대표적인 차품은 1986_ 1987년간에 생산된 8653이다. 특징은 수공제작이고 종이에 분명한 그물 모양(원고지 줄모양)이 있다.

手工薄棉紙
較網格紙稍晩出現,期間在1990_1994年間,以7542、7572爲代表茶品。其特征在於不規則紙漿紋路,厚薄差異較小,更較網格紙薄,易破損。

手工薄棉紙수공박면지: 얇은 수공면지로 그물지 보다 조금 늦게 나타났는데 1990_ 1994년간의 7542, 7572등의 차품이 대표적 이다. 특징은 불규칙적인 무늬가 있으며 두께 차이가 작고 그물지 보다 얇아 파손이 쉽다.

機器薄紙
大量出現在1995年開始,國營廠時代多數常規七子餅茶品均使用。主要特色爲短細纖維紙漿均勻而無不規則纖維條索。

機器薄紙 기기박지: (얇은 기계지) 1995년부터 대량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국영공장시대의 칠자병차에 많이 사용했다. 주요특징은 짧고 세밀한 균일한 섬유지질로 불규칙적인 섬유질이 없다.

外包薄油紙 (黃、白)

專指磚茶外包紙,從1973年之73厚磚開始,至1994年昆明茶廠最後一批7581時期,所使用的磚茶外包紙張均爲亮面油紙,有黃、白色之分,亦有橫條紋紙張。

外包薄油紙 (黃、白)외포박유지: 얇은 기름지 외포장 (황,백) 전차 전용의 외 포장지로 1973년의 73후전 부터 1994년 곤명차창의 7581까지 사용한 전차의 외포장지 모두가 기름기가 도는 종이인데 황색, 백색이 있으며 가끔 횡(가로)무늬 종이도 있다.

薄油紙細字內飛

爲雲南七子餅早期茶品內飛特色,七子黃印以至1995年等猛海常規茶品。主要特色在單面薄油紙,以及不明顯之網格紋。1996_1997年亦出現薄油紙張,然與1995年以前之特色不同。

薄油紙細字內飛 박유지세자내비: 얇은 기름지 가는 글자 내비. 운남칠자병의 조기 차품 내비의 특징으로 칠자황인 부터 1995년 맹해 정규차품 까지 이며 주요 특징은 얇은 단면 기름지 그리고 명확하지 않은 그물 무늬이다. 1996_ 1997년에도 이런 박유지가 나타났지만 1995년 이전 것과는 다르다.

朱砂紅
印級茶品部分茶品外包紙張印刷色料十分鮮豔,市場稱之朱砂色。另一朱砂印刷爲早期8582、7542、7532內飛印刷亦十分鮮紅,尤以早期7532(雪印)爲代表。

朱砂紅주사홍: 인급 차품과 몇몇 차품은 외포장지의 인쇄 색채가 선명한데, 시장에서 주사색이라 불리었다. 다른 주사인쇄는 조기 8582, 7542, 7532의 내비인쇄로 역시 색채가 선명하며 특히 조기 7532 (설인)가 대표적이다.

尖出、平出
雲南七子餅猛海茶廠茶品內飛上注”西雙版納傣族自治州、|勁海茶廠出品”,其”出”字下端”山”字較上端”山”字爲寬者,是爲”尖出”,若上下端”山”字爲相同大小則爲”平出”"。尖出”爲早期猛海茶品特色從七子黃印以至73青餅均爲”尖出”,期間爲1973年直至20世紀80年代中期,後於2001年開始由茶商訂制茶品始再出現。

尖出、平出 첨출,평출 : 맹해차창의 차품 내비에 "서쌍판납 태족자치구 맹해차창 출품"이라 적혀 있는데, 출(出)자중 위와 아래 山자의 크기가 같으면 평출, 위의 산자가 작으면 첨출이라 한다. 첨출은 조기 맹해 차창의 차품 특징으로 칠자황인부터 73청병이 모두 첨출로 기간은 1973~80년대 중기까지이며 후에 2001년부터 차상인들의 주문제품시  다시 출현하였다.

美術字內飛
尖出、粗字體印刷版本內飛,分爲二版本。早期7572生餅、7452熟餅印刷較爲模糊而色料較淡;少數73青餅、少數早期8582、泰國菁水藍印等內飛,印刷色料較爲鮮紅,部分字體有差異。

美術字內飛미술자 내비 : 첨출과, 굵은 글자체 인쇄판 내비, 2개의 판본으로 나뉜다. 조기7572생병과 7542숙병의 인쇄는 색깔이 연하여 분명하지 않다. 약간의 73청병과 소수의 조기 8582, 태국 차청 수남인 등의 내비는 인쇄색깔이 비교적 선명한데 부분적인 글자체에 차이가 있다.

粗字體繁體廠內飛
接續於薄油紙細宇內飛之後,爲粗字體印刷,色料較爲淡而模糊不清,薄油紙質。使用時間約爲1995_1996年間。

粗字體繁體廠內飛 조자체번체창내비: 굵은 글자체 번체 廠(창) 내비 : 얇은 기름지(박유지)에 가는 글자체 내비 이후 나타난 것 으로 굵은 글자체 인쇄의 색이 비교적 옅어 분명하지 않으며 지질은 얇은 기름지로 사용기간은 1995~1996년 이다.

簡體廠內飛
接續於粗字體繁體廠之後,字體較大。使用時間約爲1996_1999年間,1996_1997年爲薄紙,1998_1999年爲厚紙。

簡體廠內飛 간자체창내비 : 굵은 글자체의 번체 廠(창)이후에 나온 것으로 글자체가 비교적 크다.사용 기간은 대략 1996부터_ 1999년간이다.1996년_ 1997년간은 얇은 종이, 1998년_ 1999년간은 두터운 종이이다.

傣文內飛

接續於簡體廠內飛之後,字體變小,於右下角出現傣文。簡體廠、厚紙質。生產時間,原先爲1999年開始至2002年初,2003年底因猛海茶廠接受訂制茶品使用特殊內飛,從此開始至2004茸猛海茶廠改制前都有生產傣文內飛。

傣文內飛 태문(태족문자)내비 : 간자체 내비 이후 나타났는데 글자체가 작아지고 오른쪽 아래에 태문이 있다. 간체厂(창), 두터운 지질이며 생산기간은 1999년부터 2002년 초 까지 인데. 2003년 말 맹해 차창에서 차의 제작 수주를 받아 사용한 특수 내비는 2004년 맹해 차창의 체계가 바뀌기 전까지 모두 태문 이였다.

小七(丁勾七)、大七

專指雲南七子餅外包紙印刷中,”雲南七子餅”中的”七”字印刷版本。”七”字較爲細,字狹長者爲”小七”,較爲寬扁者爲”大七”"。小七”出現時間從七子黃印至1994年止,後於1996年開始又重新制作印刷,然版本與紙質差異甚大。”大七”起至於1993年。

소七(칠),대七(칠) : 운남칠자병차 바깥포장의 “운남칠자병”이란 인쇄글자 중 七자의 인쇄 판본에 대한 것으로 七자의 글씨가 가늘고 긴 것이 소七, 넓은 것이 대七 이다. 소七의 출현 시기는 칠자황인부터 1994년까지이다. 1996년 다시 인쇄하기 시작하였는데 지질의 차이가 너무 난다. 대七은 1993년 부터 시작 되었다.  

죽천향실 원문보기 http://blog.daum.net/36254598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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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정 2010.02.24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전향실 임자님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많은 도움이 되였습니다,늩 해박하 신 글 정확한 정보 감사합니다.

  2. 2010.04.03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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